2013년 6월 10일 월요일
의사 되려 적성에 안 맞는 공부하던 아들, 아버지가 나서서
이무석 정신과 전문의의 자녀교육 철학은 ‘저마다의 소질과 적성을 잘 살려 교육한다’는 인재시교의 전형이다. 그는 아버지와 형을 따라 의사가 되겠다는 막내아들에게 화가가 될 것을 권유했다. 그것도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예술가가 되겠다는 아들을 뜯어말리는 경우는 많아도 그 반대의 경우는 흔치 않다. 아버지는 “아들아, 넌 아무리 봐도 의사가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 창의적이고 예술적이니 어릴 적 소질을 살려 화가가 되는 게 어떠냐?”라며 설득했다. 아들은 세 시간 동안 고민 끝에 부모의 뜻을 받아들였다.
자연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뒤늦게 미술에 뛰어들었고, 결국 서울대 조소과를 나와 화가가 됐다. 아들은 서양화가 이성수(38). 일본 니카타 북방문화박물관 초청 개인전, ‘동화적 상상력’을 주제로 kids 12 등에서 초청 개인전을 했다.
이무석 박사와 이성수 화가 부자를 지난 5월 23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갤러리 153’에서 만났다. 갤러리 153에서는 5월 15일부터 2주간 이성수 화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 주제는 ‘우유’. 이무석 원장은 우유를 온몸에 듬뿍 뒤집어쓰며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하는 아기 그림을 가리키면서 “저 아기가 바로 성수”라며 미소 지었다. 이성수 화가는 “우유는 모성의 치유 코드가 있다. 우유는 엄마의 사랑이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아기는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그 아기 뒤에는 우유가 모자라 빨대로 쪽쪽 빨아먹면서 질투 어린 시선으로 아기를 째려보는 아이들이 주르르 있다.
이무석 박사는 40여년간 정신분석학 전문의로 활동했다.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청담동 ‘이무석정신분석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그는 최근 아버지를 따라 정신과 전문의가 된 큰아들 이인수 원장과 함께 ‘내 아이의 자존감’이라는 책을 냈다. 책에서 내내 강조하는 것은 자존감의 중요성이다. 책은 말한다.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 넘어져도 일어날 힘이 생긴다’고.
자존감은 이무석 박사가 자신의 세 자녀를 성공적으로 길러낸 교육 철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큰아들 이인수 원장은 청담동에서 이인수정신분석연구소를 운영 중이고, 딸은 패션마케팅을 전공해 디자이너가 됐다. 현재 패션 브랜드 ‘드맹(DEMAIN)’을 론칭해 46년째 운영하고 있는 어머니 문광자씨를 도와 서울 본사를 맡고 있다. 여기에 화가가 된 막내아들 이성수씨까지. 세 자녀는 각자 길은 다르지만 행복도 면에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이성수씨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에게 있어서 자존감은 생명이다. 사회가 나를 받아들여 주지 않을 때 좌절감이 큰 직업이 예술가인데, 나는 부모님이 깊이 심어준 자존감이 큰 에너지가 된다. 또한 예술가의 자존감은 팬으로부터 비롯된다. 마음으로 이해해주는 팬이 단 한 명만 있어도 그 직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나에게 그 팬은 부모님이다.”
이성수씨는 어려서 공부를 잘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반에서 3~5등을 유지했다고 한다. 의사나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큰 고민 없이 고등학교 때 자연계를 택했다. 그러다 고2 때 슬럼프가 찾아왔다. 활발하던 아이는 기운을 잃어갔고, 잠을 제대로 못 잤고, 성적이 뚝뚝 떨어졌다. 무엇보다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성수의 활기 찾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원인 분석 결과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어려서부터 창조적이고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는 자연계 공부에서 흥미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진정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아들의 예술 감각을 기억 속에서 끌어냈다.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찰흙으로 손을 만든 미술 숙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정교하지는 않았지만 느낌이 살아있었다.
이무석 원장은 “내가 보기에는 흙장난 같았는데, 아내는 성수의 작품이 필링을 준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아들의 미술작품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 진열장을 장만해 조르르 진열해 두었다. 어머니는 “성수가 로뎅 같은 조작가가 되면 사람들이 초기 작품을 찾을 것”이라며 아들에게 ‘너는 특별하다’는 자존감을 심어주었다. 그 진열장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고 한다.
전문가의 검증이 필요했다. 부모의 판단은 편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박양선 조각가를 불러 아들의 점토 작품을 보여주었다. 박양선 조각가는 깜짝 놀라면서 “천재적이다. 조각 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조각 기법을 선보일 수 있느냐”라며 적극 밀었다. 아들의 소질을 찾아낸 부모는 설득 작업에 나섰다. 아버지는 “아들아, 아무래도 넌 의사보다 화가가 맞는 것 같다. 소질에 맞는 일을 찾아서 해야 인생이 행복하다”며 설득했고, 어머니는 “예술가의 삶은 아름답고 가치 있다. 너는 성경을 좋아하니 성경 조각 동산을 만들면 얼마나 의미 있겠느냐”며 설득했다.
아들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집을 나갔고, 친구 집에서 세 시간 동안 깊은 생각 끝에 집으로 돌아왔다. “화가가 되겠다”고 선언하면서 단서를 달았다. “공부가 싫어서 미술 하는 것이 아니고, 미술 하면서 돈을 벌 자신이 없고, 정돈된 삶을 살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허락하신다면 미술을 하겠다”고. 부모는 흔쾌히 동의했다. 이무석 원장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사치하고 남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이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아들의 고교 생활은 한층 더 고단해졌다. 주중에는 전남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와 미술학원을 다녔다. 학기 중에는 광주에서 지내고 방학 때는 서울에서 지냈다. “공부하기 싫어서 미술을 하는 게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남보다 두 배의 노력을 했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해 화가가 된 이성수씨. 그의 작품세계는 밝고 따뜻하다. 강렬한 색채로 표현한 작품은 선명하면서도 자유분방함이 넘실댄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인 ‘우유’는 순수한 이미지와 섹슈얼한 이미지를 함께 지녀 성과 속이라는 복합적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화가가 된 지금, 참 좋다”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국에서 자라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나 자신도 알고 주변 사람도 알지만 사회와 교육 시스템을 한 사람이 바꿀 수는 없지 않나. 부모님이라는 시스템이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을 커버해 준 것 같다. 나는 참 행운아다. 정신과 전문의인 아버지의 철학과 따뜻하고 긍정적인 어머니의 성품이 내 자존감의 기반이 됐다.”
이무석 원장은 정신분석학을 연구하면서 좋은 부모에 대한 고민과 공부를 많이 했다. 그는 “좋은 부모란 아이가 가진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존중해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이의 타고난 기질을 휘게 해서 틀 안에 가두려 하면 불행이 시작된다. 마음의 병이 깊어 고통받는 내 환자의 대부분은 성장과정에서 생긴 부모와 아이 관계의 후유증 때문이다. 부모의 취향과 욕심대로 아이를 만들려 하면 그 아이는 사회적 성공을 이루어도 행복하지 않다. 부모의 기대치에 맞추기 위해 자기를 억누르면서 성장한 사람의 무의식에는 ‘내면의 판사’가 산다. 늘 자신을 채점하고 감시하는 어머니 아버지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아이가 순하고 난폭한 것도 부모 하기 나름”이라며 개 이야기를 꺼냈다. 마루 밑에 묶어 놓고, 끈을 짧게 하고, 먹을 것을 적게 주고, 약을 많이 올리는 주인집 개일수록 사납다는 것. 사람도 마찬가지다. 타고난 기질을 억누르고 억압하면 아이는 억울해하고 노여워하면서 점점 사납고 난폭한 아이가 되어 간다고 한다.
아들 이성수씨는 ‘작은 결혼식’으로도 화제가 됐다. 가족과 친지들만 초대해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배우 차인표는 그의 결혼식을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결혼식”이라고 표현했다. 그에게는 다섯 살, 세 살 배기 두 딸이 있다. 좋은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 역시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 그는 “아버지와 형이 쓴 책(내 아이의 자존감) 내용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다. ‘완벽한 부모는 없다. 좋은 부모이면 된다’는 대목이다. 좋은 부모란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고,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를 관심 갖고 지켜봐 주는 사람이다. 나머지는 아이 스스로 하게끔 기다려줘야 한다.”
이무석 이성수 부자/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이무석 박사의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려면?” tip
1. 귀가 후 첫 5분을 아이에게
: 연구 보고에 의하면 엄마가 퇴근 후 집에 들어왔을 때 첫 5분이 특히 중요하다. 아이는 하루 종일 엄마의 사랑에 굶주려 있다.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 아이는 ‘엄마 고픈’ 상태다. 엄마는 퇴근하자마자 아이와 충분히 스킨십을 갖고 눈맞춤을 하며 아이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여줘라.
2.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는다
: 아이들은 각자 고유한 청사진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고유한 청사진대로 살아가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장경동 목사는 “부모의 역할은 아이와 함께 배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배의 등대가 되는 것”이라 했다. 아이가 고유한 청사진대로 배의 속도와 방향을 정하되 길을 잃지 않도록 등대 역할을 해주는 것, 그게 부모의 역할이다.
3. 아이에게 명령할 때에는 따라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 시카고대에서는 학업 능력과 가정의 부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중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아이에게 명령할 때 부잣집 엄마들은 이유를 충분히 설명했지만 가난한 집 엄마들은 그냥 명령만 했다. 예를 들어 “조용히 해라”라고 명령할 때 부잣집 엄마들은 “네가 떠들면 동생이 깬단 말이야. 그러니까 조용히 해라”라고 했지만 가난한 집 엄마들은 그냥 “조용히 해”라고만 했다.
4. 아이에게 완벽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 부모가 짜놓은 완벽한 스케줄, 점수에 아이가 미처 따라오지 못하면 아이는 죄인이 된다. 완벽하지 못하면 죄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자존감이 낮다. 시험을 못 보면 아이는 이미 스스로 괴롭다. 여기에 부모가 한 술 더 얹어 비난하면 아이는 갈 곳이 없다. 완벽하지 않아도 노력을 인정해 주고 그 마음을 공감해 주면 아이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자존감이 생긴다.
5. 아이의 감정 표현을 아이와 소통하는 기회로 삼는다
: 아이의 감정은 아이에 대해 많은 것
을 알려주는 통로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기쁨,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은 아이의 의식과 무의식에 대해 많은 것을 얘기해 준다. 아이의 감정을 알아주면 아이는 부모의 말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공감받지 못한 감정은 아이의 내면을 오랫동안 지배한다. 아이의 감정은 공감을 받아야 할 소중한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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