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6일 일요일

마음을 유전자에 담을 수 있을까

 










서정선 서울대 의대 교수는 “DNA는 우주가 시간에 대항하는 물질로 선정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초기 지구가 처음부터 DNA를 선택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처음의 원시 생명체는 DNA 이전에 RNA를 먼저 선택했으리라는 예측이 있다.
이것이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에 대중화된 ‘RNA 세계’ 가설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생명체는 최초에 RNA와 지방 막으로 구성된 어설픈 형태였다.
이후 유전물질을 DNA로 갈아타서 현재의 DNA 중심의 세계가 됐다.
현재 대부분의 생명체는 DNA를 유전물질로 하고 있고 레트로바이러스 등 극히 일부만 RNA를 활용하고 있으므로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왜 생명체는 RNA 세계를 버리고 DNA 세계로 넘어오게 됐을까.
“RNA는 한계가 있었죠. 안정성이 떨어지는, 오류가 많은 시스템이었어요.”
서 교수에 따르면, RNA 시스템은 생명을 크게 확장하는 데 문제가 많았다.
RNA를 복제하는 RNA 중합효소(폴리메라아제)는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대략 염기서열 1만 개를 복제하는 데 1개꼴로 오류를 일으킨다.
이 말은 유전물질의 염기서열 수가 만 단위를 넘기 어렵다는 뜻이다.
바이러스 정도의 작은 생명체라면 모를까, 커다란 생명체의 유전물질이 되기는 어렵다.

“반면 DNA 중합효소는 오류가 월등히 적습니다. 약 10억 개 중 1개꼴로 오류가 있어요.
오류를 자체 수정하는 능력도 강력하지요.”
따라서 RNA와 달리 DNA는 십억 개 단위까지 염기서열을 늘어놓을 수 있다.

현재 23쌍의 염색체를 지닌 사람의 염기서열 수가 1벌에 30억 개다(한 쌍 있으므로 총 60억 개).
DNA 중합효소가 오류 없이 복제할 수 있는 서열 수 단위와 비슷하다.
사람을 포함, 동식물이 나타날 수 있던 것도 어느 정도는 DNA 중합효소 덕분이다.
이쯤 되면 생명의 주인공을 DNA가 아니라 DNA 중합효소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그렇다면, DNA가 RNA보다 더욱 우수하고 진일보한 형태의 유전물질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DNA의 강점인 견고함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경직성이다.
유전정보를 안전하게, 그리고 많이 오래 보존하는 체계일 뿐 이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합성생물학 전문가 조병관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DNA는 그저 하드디스크일 뿐”이라고 비유한다.
정보가 담겨있다고 해서, 컴퓨터에서 정수에 해당하는 장치가 하드디스크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DNA 역시 마찬가지다.




22번째 단백질에서 인공 DNA로
합성생물학자로서, 조 교수는 또다른 관점에서 DNA를 바라본다.
“이미 인류는 DNA를 완전히 인공적인 방법으로 합성해 박테리아 안에 이식한 경험이 있습니다(미국의 생물학자 크레이그 벤터가 2010년
박테리아 인공 게놈 합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DNA 외의 세포 기구들은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그건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조 교수에 따르면, DNA 합성은 이미 쉬운 일이 됐다.

염기서열 1000개(1kbp)의 DNA는 수십만 원 정도면 합성할 수 있다.
하지만 세포의 나머지 부분은 아직 ‘신의 영역’이다.
“이제 합성생물학에서 관심을 갖는 대상은 DNA 자체가 아닙니다.
목적도 DNA 합성이 아니라, DNA를 이용해 정보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지요.”

DNA의 정보가 표현된 것이 단백질이다.
달리 이야기하면, 정보(유전자)를 바탕으로 새로운 단백질을 합성하는 것이 합성생물학의 다음 관심사라는 뜻이다.
기존에도 DNA를 조합해 원하는 단백질을 얻는 연구를 했다.
하지만 그 수준을 넘는 합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DNA는 4개의 핵산을 3개씩 조합한 정보로 20개의 부호로 된 아미노산을 합성한다.
만약 21, 22번째 아미노산을 더 도입한다면 다양성은 더 커질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원래 DNA에는 전사(단백질 합성)를 끝내도록 하는 종료 코돈이 3개 있다.
만약 이 가운데 1개만 전사를 끝내는 원래 용도로 쓰고 나머지 두 개를 새로운 아미노산을 합성하도록 조작하면 된다.

최근에는 유전물질로 DNA 대신 새로운 구조물을 만들려는 시도도 있다.
DNA의 구조를 보면 인산기가 붙은 핵산이 견고한 이중나선의 골격을 이루고 그 사이를 A, T, G, C 네 개의 염기 중 두 개가 맞물려 채우고 있다.

그런데 이런 구조의 일부를 다른 물질로 대체한 새로운 DNA 물질을 만들 수 있다.
인공 DNA, 일명 ‘XNA’다.
이 분야에 도전하는 대표 과학자는 필립 홀리거 영국 분자생물학연구소 의학연구위원회 교수다.
홀리거 교수는5개의 탄소와 산소가 고리 모양으로 결합한 DNA의 구조에서, 원자를 조금씩 바꾸거나 고리 모양을 변형한 분자를 6개 만들었다(아래 그림).

‘ANA, FANA, TNA’ 등으로 이름 붙인 이 분자는 DNA와 거의 비슷하다.
최고의 정확도를 자랑하는 DNA 중합효소조차 이들을 DNA로 착각하고 끼워 넣을 정도다.
2012년 4월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 중 고리형 핵산 구조를 한 CeNA라는 분자를 포함한 DNA는 99.6%의 정확도로 복제가 가능했다.

정확도만 따지면 더 뛰어난 인공 DNA도 많다.
2011년 ‘미국화학학회저널’에 발표한 스티븐 베너 미국 응용분자유전재단 박사의 인공 DNA가 포함된 DNA는 99.8% 정확도로 복제할 수 있었다.

히라오 이치로 일본 이화학연구소(리켄) 박사는 99.92%까지 복제가 가능한 물질을 선보였다.
2012년 7월 플로이드 로메스버그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박사가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한 인공 DNA는 99.99%까지 정확하게 복제했다. 하지만 99.99%는 RNA 중합효소의 정확도에 불과하다.
로메스버그 박사는 2012년 11월 ‘네이처’에서 “우리의 최고 성과가 이제 자연의 가장 못난 성과에 근접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연구는 왜 하고 있을까.
새로운 물질을 만들기 위해서다. 새로운 재료나 치료제를 만들려면 체내에서 쉽게 분해되지 말아야 한다.
목표 조직이나 기관에 가기도 전에 분해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만약인공 DNA를 넣는다면 체내 분해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의 근원을 탐색하는 순수한 과학적 관심 때문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자.
최초의 생명체가 되고자 시도한 유전물질이 과연 RNA밖에 없었을까.
무수히 많은 유전물질 후보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이후 어떤 이유에선지 경쟁에서 탈락하고, 오로지 RNA만이 선택돼 생명체로 진화했을 수 있다.
RNA는 DNA에 유전물질의 자리를 물려준 대신, 보다 유연하고 다양한 기능을 하는 조절자로 역할을 바꾼다.

그렇다면 지금 과학자들이 탐구하고 있는 독특한 인공 DNA는 어쩌면 최초의 지구가 실험하던 숱한 유전물질 후보 중 일부일지 모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학자들은 원시 지구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게 아닐까.












마음 유전자? 사회적 DNA의 탄생
일단 생겨난 DNA 또는 RNA는 거친 경쟁을 뚫고 생명체로 진화했다.
2004년 잭 조스탁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팀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는 이 과정이 어떻게 이뤄졌을지 상상했다.

물이 있는 환경 속에서 지방 막으로 된 기포가 있다.
대개 이 막은 그냥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만약 안에 유전물질이 있다면?
삼투압을 발생시켜 막을 팽팽하게 만들어 오래 견딜 것이다.

유전물질이 스스로 복제해 많아진다면 삼투압은 더 커지고, 큰 지방 막 기포는 보다 팽팽해진다.
안에 유전물질이 충분히 많으면 분리해 두 개로 나뉠 수 있다.
미생물이나 세포가 복제를 통해 증식하는 것과 유사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경쟁이 순수하게 물리적인 이유(삼투압)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최초의 생명체인 원시적인 단세포 생명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몸집 크기를 무기로 물리학적인 경쟁을 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경쟁 속에서 협력이라는 사회적 행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유전물질 사이의 협력이다.
많이 모여 있어야 그 지방 막 기포가 다른 지방 막 기포를 누르고 생존할 수 있다.
유명한 말대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유전물질이 생명체가 되기 위해 시도한 최초의 행위가 협력과 경쟁이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초협력자’의 저자인 마틴 노왁 옥스퍼드대 교수는 2006년 사이언스 논문에서 진화를 위해서는 인간 사회뿐 아니라 동식물, 다세포 생명체, 조직, 세포 심지어 단백질과 핵산 수준에서도 협력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핵산이 바로 유전물질인 DNA와 RNA다.

오늘날 생존을 위한 경쟁, 그 속에서 유전자를 최대한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DNA는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전자가 오로지 이기적인 마음을 지닌 유전물질이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초의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에 경쟁에서 살아남은 유전물질은 적절히 협력을 한(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협력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질이다.
RNA 세계 가설이 맞다면 RNA가 그랬을 것이고, RNA를 계승한 DNA 역시 서로 돕는 마음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그 모습을 우리는 세포 안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유전정보를 담은 견고한 하드디스크 DNA와 다채로운 기능으로 새롭게 주목 받는 RNA, 그리고 아직 인류가 합성하지 못하고 있는 세포 내 기관 단백질들이 서로 정교하게 협력하고 있다.
이중나선 구조가 발견된 이후 DNA는 생명의 설계도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유일한 주인공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60주년을 맞은 오늘날, 이런 관점은 바뀌고 있다.
네오 DNA 시대에, DNA는 서로 도우며 조화롭게 생명을 유지시키는 수많은 주역의 하나가 됐다.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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