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식 교육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동안 엄격한 자녀 훈육법을 쓰는 타이거맘(Tiger mom, 호랑이 엄마)이 대세였다면 이제 자녀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는 북유럽의 ‘스칸디맘·스칸디대디(Scandi Mom·Daddy)’가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북유럽의 학교 교육 시스템도 최근 한국에서는 모범답안처럼 입에 오르내린다. 이달 초 노르웨이 바룸시의 한 공립 중학교와 스웨덴 스톡홀름 나카구의 교육담당부서를 방문해 한국 교육과 북유럽 교육의 차이점을 알아봤다.
노르웨이 바룸시에 위치한 ‘비욘네고르드 중학교(BJORNEGÅRD SKOLE)’에는 10~13살 아이들 300명이 다니고 있다. 학교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1층 카페테리아 앞 로비에 3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쉬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바닥에 그려져 있는 체스판 위에서 낑낑거리며 거대한 말을 옮기고 있는 학생들이나, 당구, 탁구를 치는 학생들이 보였다. 10~15분의 쉬는 시간이나 1시간30분의 점심시간에 학생들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실내 체육활동을 즐긴다고 했다. 당구나 탁구에는 교사들도 종종 참여해 학생들과 실력을 겨룬다. 로비에서는 밴드 공연이 열릴 때도 있다.
노르웨이 교육시스템은 6세에 초등학교가 시작돼 중학교까지 10년간 의무교육이다. 이후 일반고등학교 3년, 전문고등학교 4년 과정을 수료한 뒤 졸업하게 된다. 사립학교는 극소수의 아이들만 진학하고 대부분 공립학교에 간다. 사교육은 음악이나 미술에 한정돼 있고, 입시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청소년 클럽이 활성화돼 있어 학생들끼리 모여 밴드나 운동을 함께한다.
노르웨이 바름시의 비욘네고르드 중학교에서 음악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전자음악의 원리를 익히고 있다.(위) 이 학교의 교사가 매주 금요일 ‘빵 굽는 날’에 학생들이 만든 브라우니를 시식하고 있다.(아래)
▲사교육은 음악·미술에 한정… 입시학원은 존재하지 않아
▲학생마다 왕따 등 상담교사… 학습부진 학생 별도로 지도
현재 비욘네고르드 중학교는 오전 8시15분부터 일과를 시작해 오전에는 1시간30분짜리 수업 2개, 오후에는 1시간짜리 수업 2개가 편성돼 있다. 오후 3시쯤이면 학교 수업이 끝난다. 과목수로는 11과목, 주당 수업 시수로 환산하면 일주일에 23시간의 수업이 이뤄진다. 한국의 주당 수업 시수가 36시간인 것에 비하면 13시간이 적다. 10학년부터 구두·쓰기시험을 보고, 그 전에는 시험을 보지 않는다. 점수는 1~2점은 ‘평균 이하’, 3~4점은 ‘평균’, 5~6점은 ‘평균 이상’으로 나눠 매긴다. 특히 성적을 내는 방식이 독특하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를 혼합한 형태다. 학생에 대해 교사가 개별적으로 갖고 있는 채점기준을 참고해서 점수를 매긴다. 오올라시오게르 비욘네고르드 중학교 교장은 “한 학생을 평가할 때 특성이 다른 학생들과 일괄적으로 비교하는 건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채점기준을 사용한다”며 “각각의 교사들이 평소에 학생을 지켜보며 개별적인 학습도달 목표나 수준을 파악한 뒤 그 기준에 맞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학습부진 학생에게는 별도의 보조교사를 배치해 공부를 따라올 수 있게 도와준다. 또 학생마다 개인적인 문제나 왕따 등을 상담할 수 있는 담당교사(contact teacher)가 있다.
이 학교가 추구하는 것은 ‘사회 속에서 타인과 교류를 잘할 수 있는 교육’이다. 아니따 플램 비욘네고르드 중학교 교감은 “좋은 사회적 환경과 좋은 학습환경은 맞닿아 있다”며 “특히 북유럽에서는 교사가 학생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교육이 이뤄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설명했다.
노르웨이 바름시 비욘네고르드 중학교의 여학생이 카페테리아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학교 매점의 일손을
돕는다.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운영되는 이 학교 카페테리아에서는 아침을 무료로 제공한다. 점심은 샌드위치 등을 따로 싸온다. 한국에서 매점 운영자는 학교 외부의 일반인이 공개입찰을 통해 운영권을 따는 방식이지만 이 학교의 카페테리아 운영자는 학교 직원(social worker)이다. 운영자가 직접 장을 본 뒤 이곳에서 피자나 샌드위치 등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카페테리아에 가서 봉사활동 명목으로 일을 돕기도 한다. 실제로 기자가 학교에 방문했을 당시 학생 2명은 수업시간을 빼고 카페테리아에서 일하고 있었다. 가끔 아이들에게 상담을 해줄 정도로 운영자와 학생들은 친분이 두텁다. 매주 금요일 ‘빵 굽는 날’에는 학생들이 직접 브라우니나 과자 등을 만든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수업시간이지만 카페테리아에서 봉사활동을 한다고 해 빼줬다”며 “아이들이 빵을 구워오면 다 같이 나눠 먹는다”고 말했다. 학교매점 운영이나 음식을 함께 만들어보는 것도 교육의 일환이라는 가치관이 묻어났다.
스웨덴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인성교육’이다. 학교에서 따로 인성교육이라는 과목을 배우진 않지만 0세부터 인성교육을 한다고 말할 정도로 스웨덴은 존중, 배려, 책임, 민주주의 교육이 배어 있다. 가정환경, 경제적 배경, 젠더 등에 관계없이 공평한 교육기회를 주자는 것을 목표로 교육정책을 펴고 있다.
대학원까지 모든 교육과정에 해당되는 스웨덴의 무상교육은 현재 ‘학교의 자율성’과 ‘투명한 회계’를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다. 학생에게 세금으로 형성된 ‘학교바우처(school voucher)’가 부여되고, 학생이 특정학교에 진학하면 학교바우처를 토대로 한 ‘계좌(budget)’가 학교에 제공된다. 학교는 이 계좌의 돈을 학교예산으로 사용하는데 따로 정부가 학교에 지원하는 돈이 없어 학생수가 많을수록 학교예산이 늘어나는 식이다. 나카구의 경우 학생 1인당 학교바우처 액수는 1만8000달러(약 2034만원)다. 무상급식, 교사 급여 등 한 학생의 교육에 필요한 모든 비용이 여기에 포함된다.
학교가 학교바우처와 계좌를 관리하는 만큼 회계 관리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물론 스웨덴에서는 이와 같은 학교선택제에 대한 찬반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학교예산과 학생수를 연결해 학교들끼리 경쟁하도록 한 것이 교육에 있어서의 평등을 해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학생들을 모으지 못해 학교예산이 부족한 학교들은 극소수지만 폐교 위기에까지 처하는 부작용도 있다.
에이나르 프란센 나카구 교육기획국장은 “교장 평가를 할 때 학부모·학생·교사의 설문조사가 포함되는 것은 물론 회계 관리에 문제가 없었는지도 중요하다”며 “학교예산이 학생들의 학교선호도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학교들이 스스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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