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고고학자들이 공동으로 문화재 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는 개성 만월대에서 최근 고려시대에 주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속활자가 출토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발굴을 주도하고 있는 남북역사학자협의회의 최광식 위원장은 “전문가들의 검토 결과, 발굴된 금속활자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하면서 “그 시기는 최소 만월대가 소실된 1361년 이전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개성에서 발굴된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
만월대에서 발굴된 금속활자에 대해 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는 1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인 ‘구텐베르크 활자’보다 최소 1세기가 앞선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의 제작년도가 1377년이므로, 만월대에서 출토된 금속활자가 전문가들이 추정한대로 1360년대 이전에 제작된 것이 맞다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도 바뀌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금속활자의 발굴에 이처럼 전 세계가 주목하는 까닭은 바로 금속활자의 발명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준 100대 사건 중 1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21세기를 맞이하기 직전인 1999년, ‘타임’지나 ‘월스트리트 저널’ 같은 세계적인 언론사들은 지나간 1000년의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발명 100개를 조사하여 발표한 바 있다.
당시 100개의 항목들은 언론사별로 조금씩 차이를 보였지만, 첫 번째 자리만큼은 모든 언론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이구동성으로 ‘금속활자 인쇄술’을 꼽았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금속활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책이 많이 없어서 문명의 발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지만, 금속활자의 등장으로 책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인류의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손으로 직접 써서 책을 만들었는데, 그 시간이 2~3개월 정도가 소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손으로 직접 쓰다 보니 오자나 탈자를 하는 실수를 피할 수가 없었다.
물론 당시에도 목판 인쇄술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나무를 깎아서 글자를 만들어 찍는 방식이어서 목판이 닳거나 갈라지게 되면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고, 그런 이유로 인쇄 수량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는 일단 활자가 만들어지기만 하면, 500권 분량의 책을 인쇄하는 시간이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시작된 이후 50여 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는 2000만 권이 넘는 책이 인쇄되면서 정보의 대폭발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귀족이 아닌 평민들도 책을 구해 읽을 수 있게 됨으로써, 그때까지 소수만이 지식을 독점하던 시대의 막을 내릴 수 있게 된 계기가 모두 금속활자의 탄생 때문 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금속활자 인쇄술의 고향은 고려?
금속활자란 ‘문자나 기호를 네모 형태로 이루어진 각각의 금속 조각 윗면을 양각, 즉 볼록 튀어나오도록 주물로 만든 것’을 말한다. 금속활자는 목판활자에 비해 경도와 내마모성이 뛰어나야 하고, 낮은 변형률과 비수축성도 월등해야 한다.
이 같은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구텐베르크는 수 없이 많은 실험을 통해 납(Pb)과 주석(Sn), 그리고 안티모니(Sb)의 합금으로 금속활자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구성비는 납 60~70%, 주석 10~20%, 안티모니 20~30%였는데, 오늘날 일반적인 활자 합금비율이 납 80%, 주석 3%, 안티모니 17%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구성비를 자랑한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금속세공사에 불과했던 구텐베르크가 어떻게 이처럼 뛰어난 주물 기술을 익혔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혹시 누구에게 전수받은 것은 아닐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해 단서를 제공한 사람이 있다. 바로 미국의 전 부통령인 앨 고어(Al Gore)다.
그는 지난 2005년 국내에서 열린 행사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하여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기술이 고려를 다녀간 교황사절단을 거쳐 전파된 기술”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얼마 뒤 스위스의 인쇄박물관도 고어 전 부통령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여 화제를 모았다.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서양의 교황 사절단이 고려를 방문한 뒤 얻어 온 기술이라는 것. 사절단이 고려를 방문하고 돌아올 때 금속활자의 그림과 설명도 같이 갖고 왔는데, 구텐베르크가 그들로부터 금속활자에 정보를 얻었음이 확실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내용이 아직 학계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상당히 파격적인 주장임에는 틀림없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고려의 금속활자를 모방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어 앞으로의 향방이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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