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4일 금요일

평면적이지 않은 평면 이야기


 

제가 어떤 모습인지 처음 알려준 사람은 유클리드였어요. 유클리드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수학교과서 <원론>을 쓴 수학자이기도 하죠. 이 책에서 유클리드는 간단한 정의로 기하학을 설명한답니다. <원론> 제1권에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정의가 담겨 있는데, 저에 대한 설명도 여기에 들어 있어요! ‘평면은 직선이 고르게 펼쳐진 면이다.’ 지금도 익숙한 평면의 정의죠. 유클리드는 아예 저를 만드는 조건까지 못 박아놨어요.


여러분도 평면이란 무엇일지를 생각하면, 이런 조건부터 떠올릴 거예요. 그만큼 유클리드의 설명은 논리적이고 직관적이죠. 평면에서 시작한 유클리드는 우리 사는 세상을 딱딱한 3차원 공간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심심해졌어요. 이젠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보였거든요. 그렇게 20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죠.

그러던 어느 날 제 심장을 콩닥거리게 만드는 사람이 나타났어요. 해석기하학의 아버지 르네 데카르트였어요. 데카르트는 제 얼굴 곳곳에 숫자를 쓰더니 좌표라고 불렀어요. 숫자와 식을 쓰니 굳이 저를 말로 길게 설명할 필요가 사라졌어요. 그림을 그려가며 풀던 도형문제도 간단한 계산문제가 됐죠. 기하학을 대수학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이를 해석기하학이라고해요. 정확한 지도를 그리는 일에서 날아가는 대포알의 궤적을 구하는 일까지, 좌표평면의 활약은 눈부셨어요.

자유로워지자!

실은 전 유클리드가 정한 제 모습이 좀 불편했어요. 항상 똑같은 자세여야 했고 지켜야 할 조건도 너무 많았거든요. 하지만 유클리드 공간은 너무 당연해보였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유클리드 공간 개념을 갖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죠.


사실 완벽할 것만 같은 유클리드 기하학에도 약점은 있었어요. 바로 ‘평면 위에 위치한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면서, 원래 직선과 만나지 않는 직선은 단 하나뿐’이라는 ‘평행선 공리’였죠. 한 번만 읽어도 이해가 가는 다른 공리와는 달리 복잡하고 어려웠기 때문이었죠. 게다가 다른 공리로 ‘평행선 공리’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어요.

마침내 수학자들은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면서, 원래 직선과 만나지 않는 직선이 꼭 하나가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평면이 구부러지면 되는 거예요. 이건 단순히 ‘평행선 공리’ 하나가 잘못됐다는 의미가 아니예요. ‘기하학=유클리드’라는 등식이 깨져버린 거에요. 자신만의 기하학으로 세상을 그릴 수 있는 자유가 찾아온 거죠.




변하지 않는 모습이 중요하다

아예 절 추상적인 기호로만 표현할 수도 있게 됐어요. 여기엔 독일의 수학자 펠릭스 클라인의 도움이 컸어요. 클라인은 ‘변화를 거쳐도 그대로인 성질’이 기하학의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림자를 비추거나 비틀어도 그대로 남아 있는 특징이 도형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한거죠. 덕분에 전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게 됐어요. 예를 들어 위상평면은 거리도 원점도 없는 무한한 고무판과 같아요. 마음껏 잡아당기고 비틀어도 똑같은 평면이에요. 저는 유클리드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이 됐답니다.

제가 자유를 얻은 덕분에 우주도 진정한 모습을 찾을 수 있었어요. 아인슈타인은 친구인 수학자 그로스만의 도움으로 새로운 기하학을 만나게 됐어요. 아무도 딱딱한 뉴턴의 공간을 의심하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아인슈타인은 여기서 벗어나 중력에 의해 휘어진 시공간을 생각해냈죠. 아인슈타인이 자유로운 평면의 모습을 몰랐다면, 여러분도 인터스텔라를 만나지 못했을 거에요.




 수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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