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7일 일요일

"'슈퍼맨'이 아니라 '장애인'이 지구를 구한다" '계산과학 연합전공' 만든 이상묵 서울대 교수

"1년 남았다던 삶, 어느덧 10년"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 말한다


"흔히들 슈퍼맨이 지구를 구한다고 하잖아요. 우리의 모토는 장애인이 지구를 구하는 거예요. 지구환경변화나 자원오염, 질병확산, 경제위기 등 공공분야에서 계산과학 전공이 굉장히 많이 쓰여요. 그런데 이런 건 어렵고, 힘들고, 돈도 별로 못벌어서 일반인들이 꺼리거든요. 사회에서 도움을 받는 장애인이 이를 공부해서 우리가 세상을 구해 보답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유명한 이상묵(53)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새로운 삶을 살게된 지 10년을 앞두고 소회를 밝혔다.
(이상묵 서울대 교수 제공) © News1
(이상묵 서울대 교수 제공) © News1
이 교수는 지난 2006년 7월 연구조사를 위해 학생들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 데스벨리에서 야외 지질 조사를 하다 차량이 전복돼 얼굴을 제외한 목 아래 부분이 마비되는 사고를 겪었다. 당시 차에 타고 있던 6명의 제자들 중 1명은 이 사고로 숨졌다.
이 교수는 21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사고 당시 남은 생을 1년, 3년, 5년, 10년으로 나눠 계획을 세웠는데 내년 7월이면 10년이 된다"며 "숙제를 하지 못한 채 개학이 다가오는 학생과 같은 마음"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늘에 굳이 변명을 하자면 유명해져서 이래저래 다른 일을 너무 많이 벌렸다고 변명하고 싶다"며 "노벨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교육상은 받았으니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 않느냐고 어필해보려고 한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서울대는 5년 이상 재직 교수 중 수준 높은 강의와 교육 방법을 개발하거나 학생 지도에 열정을 보인 교수에게 2005년부터 교육상을 수여해왔다. 이 교수는 지난달 '2015학년도 서울대 교육상'을 수상했다.
이 교수는 "사고 당시 저와 일면식도 없던 서울대 공대 이건우 교수가 당시 경암학술상 상금 1억원을 제게 줬다"면서 "나 역시 누군가 다른 교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면 이번 교육상 상금을 기꺼이 내주고 싶다"고 밝혔다. 당시 이 교수는 이 교수로부터 받은 돈 일부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제자 이름을 딴 장학금을 만들기도 했다.
앞서 이 교수는 사고 6개월 만인 2007년 3월1일 다시 강단으로 돌아와 '바다의 탐구' 강의를 맡았다. 전동 휠체어에 앉은 채였다. 이 같은 사실이 2008년도에 언론에 공개되면서 이 교수는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란 별명을 얻었다.
지난 2일 교육상 수상 특별강연 중인 이상묵 교수. (이상묵 교수 제공) © News1
지난 2일 교육상 수상 특별강연 중인 이상묵 교수. (이상묵 교수 제공) © News1
그 후 이 교수는 2010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장애인 산업기술 전문인력양성(Quality of Life Technology·QoLT)' 사업을 총괄했다. 이공계에서 장애인 롤모델을 만들어 장애학생들의 이공계 진출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다.
또 2011년 봄에는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실험이 어려운 자연현상을 계측하는 학문인 '계산과학 연합전공' 과정을 서울대 학부에 신설했다. 자유롭게 실험과 관측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미래를 예측하는 계산과학 분야가 적합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벌써 11명이 졸업하고 21명이 등록해있다.
그렇지만 장애학생들만을 위한 과정은 아니다. 공학과 금융, 경제는 물론 문화재의 디지털 복원과 영화의 특수효과 등 문화분야에도 적용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위한 건축 개념인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언급하며 "장애학생들을 위해 만든 학습자료가 장애가 없는 학생들에게도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한다고 했지만, 학생들이 컴퓨터 공학과에 들어가지 않으면 해당 내용을 다 잊어버릴 것"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자기 전공에 컴퓨터를 더하는 '계산과학 연합전공'이 중요한 모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의 제자는 '지구환경과학부'와 '계산과학 연합전공'에만 있지 않다. 음성을 인식해 자동으로 타이핑 되는 소프트웨어의 잦은 오류로 해마다 서울대 내 사회봉사 과목을 통해 이 교수의 문서작업을 돕는 학생들이 있다. 벌써 60여명에 달한다.
뿐만 아니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를 바꾸는 데는 너무나 큰 비용이 들지만 교육에 관한 한 극성 맞기 때문에 장애인 한명이 과학고 그리고 서울대에 들어오는 것만 보여줘도 우리사회는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교육감에 출마한 문용린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에 요청해 과학고에 장애인 학생이 정원 외 특례입학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도 열었다.
이 교수는 "조희연 교육감도 이 뜻을 이어받아 계속 시행중이지만 사람들이 잘 모른다"며 아쉬워하며, 세상을 바꿀 미래 제자들의 도전을 기다렸다.
1년일 줄 알았던 삶이 10년이 되는 것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이 교수는 "경쟁자들로부터 '정말 훌륭한 과학자였어'라는 인정을 받고 싶고, 또 내가 아는 것을 오피니언 리더로서 세상에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뉴스1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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