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7일 토요일

포병은 왜 수를 이상하게 셀까?

소리 듣기 어려운 전투 상황 때 정확히 신호 전하기 위한 '포병 숫자'
옛날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 전달
18세기 샤프의 신호탑 구조물, 196가지 모양으로 움직여 신호 보내
15분 만에 250㎞ 떨어진 곳까지 알려


"하나, 둘, 삼, 넷, 오…."

"하하하. 또 틀렸다, 또 틀렸어~."

수민이는 연예인들이 군대 체험을 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연예인들이 포병 숫자를 자꾸 틀리게 외치는 모습이 재미있는지 깔깔대며 웃었어요.

"아빠, 왜 포병은 수를 이상하게 세는 거예요? 보통 사람들이 세는 방식으로 세면 헷갈리지도 않고 훨씬 쉬울 텐데 말이에요."

"그건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란다. 일상생활에서는 일과 이, 삼과 사, 다섯과 여섯 등을 쉽게 구분하여 들을 수 있지만, 전투 상황에서는 주변 소음 때문에 소리를 잘 듣기 어려워서 헷갈릴 수 있거든. 특히 포병은 포탄을 목적지에 정확히 떨어뜨려야 하는데, 만약 사격 거리 '사일육삼'을 '삼이육사'로 잘못 알아들으면, 목적지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포격하여 오히려 아군이 피해를 볼 수도 있지."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이창우
"아, 그렇군요. 이제 왜 수를 이상하게 세는지 알겠어요. 어라? 그런데 아빠, 저건 뭐예요? 이번엔 군인들이 숫자를 몸으로도 표현하는데요?"

"전투 상황에서는 소리로 신호를 보낼 수 없을 때도 잦아.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든 신호가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몸짓을 이용한 신호를 만들었단다. 신호를 전달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만 하면 되니까, 아주 먼 거리에서도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단다."

"가만 생각해 보니 전투 상황에서는 말보다 몸짓이 훨씬 유용한 것 같아요. 꼭 시끄러운 상황이 아니더라도 적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용히 움직여야 할 때도 몸짓을 이용하는 게 유리할 테니까요. 또한 많은 사람에게 한꺼번에 신호할 수도 있고요."

"맞아. 지금은 통신 기술이 발달해서 지구 반대편에서 보내는 정보도 빛의 속도로 받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이러한 시각적 신호가 가장 유용했지."

"아빠, 그럼 통신 기술이 없던 시대에는 멀리 떨어진 곳에 어떻게 정보를 전달했어요?"

"대표적인 방법은 멀리서도 잘 보이는 불과 연기를 이용하는 것이었어. 연기는 낮에, 불은 밤에 사용했지. 이런 신호체계를 '봉화(烽火)'라고 하는데, 높은 산 위에 봉화대를 만들어 상황마다 다른 신호를 보냈어. 예를 들어 평상시에는 불이나 연기를 하나만 피우고, 적이 가까이 접근할 때마다 불이나 연기의 개수를 늘리는 방식이지."

"아하! 그렇군요. 그런데 불이나 연기를 피우는 개수만 가지고는 몇 가지 내용밖에 전달할 수 없겠어요."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폴리비우스는 봉화 신호로 알파벳을 나타내기도 했단다. 가로 5칸, 세로 5칸의 표를 만들면 모두 25칸이 되는데, 여기에 각기 다른 알파벳을 넣고 가로줄과 세로줄의 번호로 그 알파벳을 찾는 방식이야. 예를 들어 (1, 1)이라고 한다면 1행 1열에 있는 알파벳이 되는 거지. 하지만 봉화는 구름이나 안개가 짙게 끼는 등 날씨가 좋지 않으면 잘 전달되지 않는 단점도 있었어. 그래서 '파발(擺撥)'이란 것을 만들기도 했지. 파발이란 쉽게 말해 사람이 직접 뛰거나 말을 타고 가서 전달하는 것을 의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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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그 먼 거리를 직접 뛴다고요? 정말 힘들었겠어요. 전 100m 달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은데…."

"물론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달린 건 아니야. 정보를 빨리 전달할 수 있도록 중간에 이어받아 달리는 사람들을 두었지."

"그래도 직접 달렸으니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겠어요."

"그랬겠지. 그런데 17세기 후반에 로버트 후크라는 사람은 신호를 이어받아 전달하는 방식을 응용해 파발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빠른 통신 체계를 만들었어. 한 건물에서 기호 깃발을 올리면 망원경으로 깃발을 확인한 사람이 자신의 건물에 똑같은 깃발을 올리는 거야. 이런 방식으로 아주 먼 곳까지 빠르게 정보가 전달되는 거지. 18세기 후반에는 클로드 샤프라는 사람이 이 방식을 더욱 발전시켜 신호탑에 설치된 구조물의 모양으로 문자나 숫자를 표시했어. 샤프의 신호탑에는 T자 모양의 구조물이 있는데, 가로 막대 양끝에 달린 팔이 7가지 각도로 움직이고, 가로 막대 자체도 시소처럼 4가지 각도로 움직일 수 있었대. 그래서 이 구조물은 196가지(=7가지×7가지×4가지)나 되는 모양으로 신호를 보낼 수 있었지. 하지만 이 신호탑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500개 이상의 신호탑이 필요했다고 해. 그래도 샤프의 신호체계는 15분 만에 250㎞ 떨어진 곳까지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지?"

"네, 정말 신기하네요. 지금의 전화나 인터넷에 비교할 순 없지만, 굉장한 발전이라 할 수 있겠어요."

"맞아. 그리고 19세기 중반에 '모스의 전신기'라는 혁명적인 발명이 이루어졌어. 전신기의 기판을 누르고 떼는 신호를 빛의 속도로 전달할 수 있었으니까. 모스는 신호체계를 연구하다가 '길게 누름'과 '짧게 누름'의 두 신호만으로 모든 문장을 만들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신호체계를 만들어냈단다. 물론 일반인은 모스 신호를 해석하기 어렵지만, 훈련받은 사람들이 대신 전송하고 해석해 주면서 일반인도 먼 곳에 빠르게 소식을 보낼 수 있게 되었지."

"그러고 보면 전화는 정말 놀라운 발명품인 것 같아요.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직접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 우리가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사랑하는 가족, 친구와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땀과 노력이 있었단다."
[함께 생각해봐요]
다른 색깔의 깃발 두 개만으로 친구들과 신호체계를 정한 후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짧은 문장을 전달하는 놀이를 해 보세요. 예컨대 한글은 자음 14자, 단모음 10자로 구성되었으니, 색이 다른 깃발 2개로 24개의 패턴을 만들어 보는 거예요. 패턴은 한글의 모양과 비슷하게 만들수록 쉽게 익힐 수 있답니다. 여러 명의 친구와 동일한 문장을 누가 더 빨리 전달하는지 시합하면 더욱 재미있을 거예요.


[관련 교과] 6학년 2학기 '경우의 수와 확률'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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