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5일 목요일

애매한 것, 수학이 정리해준다고? 퍼지이론

'예쁘다' '못생겼다'같은 주관적 개념… 여러 단계로 나눠 구분하는 퍼지이론

'켜고' '끄고'만 있던 기기에 적용
속도 조절 단계 세분화한 지하철… 덜컹거림 줄어 편하게 탈 수 있고, 밥솥 온도 조절로 밥맛 유지하죠


"와! 아빠 저 사람 좀 보세요. 키가 정말 커요."

농구 선수처럼 키가 아주 큰 아저씨를 본 효성이가 깜짝 놀라 아빠께 말했어요.

"정말 크구나. 나도 작은 키는 아닌데 저 사람 옆에 서면 어린이처럼 보이겠네."

"아빠 키가 180㎝이니 작은 키가 아니잖아요. 남자 어른 평균 키는 173㎝라고 들었어요."

"그럼 평균 키 173㎝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172㎝인 사람은 키가 작은 사람이고 174㎝인 사람은 큰 사람이겠지? 190㎝인 사람도 174cm보다 26㎝나 차이가 나지만 똑같이 키가 큰 사람에 속하는 것이고. 뭔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네, 딱 하나의 기준으로만 나누니 거기에 조금 못 미치는 사람은 억울할 것 같네요. 기준에 조금 못 미치거나 겨우 넘어선 사람들은 '조금 작다' '조금 크다'라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기준보다 훨씬 큰 사람은 '매우 크다'라고 하고요."

"그래. 그렇게 구분하는 단계를 더 나누는 방법이 바로 퍼지(fuzzy)이론의 기초란다."

[신문은 선생님] [개념쏙쏙! 수학] 애매한 것, 수학이 정리해준다고?
/그림=이창우
"퍼지이론? 처음 들어봐요."

"집합 A에 5 이하의 자연수가 들어 있고, 집합 B엔 7 이하의 홀수가 들어 있다고 하면, 두 집합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수는 뭐니?"

"집합 A 원소는 1·2·3·4·5이고 B는 1·3·5·7이니까 공통으로 들어간 수는 1·3·5지요."

"맞아. 그럼 집합 A를 너희 학교의 잘생긴 학생들, B는 못생긴 학생들이라고 한다면, 두 집합의 관계를 구해볼 수 있을까?"

"잘생겼다 못생겼다를 어떻게 수학적으로 나타내요? 집합이 될 수 없죠."

"그래. 수학에서는 구분을 정확히 할 수 있는 것을 다루지. 그런데 미국 버클리 대학의 어떤 교수는 '예쁘다' '똑똑하다' 등 기준으로 삼기에 애매한 내용도 수학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했어."

"이해가 안 돼요. 수학은 답이 분명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교수가 그렇게 제안했을 때 많은 수학자가 너처럼 반응했단다. 수학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 효성아, 네가 지난주 집에 초대한 혜인이 좋아하니?"

"예?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그냥 친한 친구예요."

"예와 아니오로만 답해 보렴."

"아…. 싫은 건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하. 지금처럼 '예'나 '아니오'로만 답하면 오히려 진실을 제대로 설명해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단다. 퍼지이론은 이렇게 주관적이고 불분명한 개념을 수학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 그 방법 중 하나가 구분 단계를 여러 개로 나누는 거야. 예전에 전기밥솥은 스위치가 온(on)이면 열선에 전류가 흘러 뜨거워지고 오프(off)가 되면 열이 식는 두 가지 방법으로만 작동했어. 그러다 보니 불의 세기와 시간을 조절해 밥을 짓는 방법보다 밥맛이 뒤떨어졌지. 지금은 퍼지 기능을 담은 전기밥솥이 나와 온도를 올리고 내리는 단계를 여러 단계로 조절해 밥을 지을 수 있게 됐지.

기존의 구분과 퍼지이론 적용.
"우와. 세탁물 양과 더러운 정도에 따라 세탁 통이 도는 방향과 속도가 달라지는 세탁기도 퍼지이론을 응용한 것이군요."

"역시 하나를 가르쳐 주면 두세 개를 깨닫는구나. 퍼지이론이 적용된 예는 생활 속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어. 지하철도 퍼지이론 덕분에 출발할 때와 멈출 때 덜컹거림을 최소화할 수 있는 거야. 예전에는 지하철이 작동과 정지 방식으로만 운행되다 보니 덜컹거리는 경우가 많았단다. 가로등도 정해진 시간에 켜지고 꺼지는 단순한 방식에서 빛의 세기를 여러 단계로 감지해 작동하는 식으로 바뀌었어. 옛날 방식은 계절마다 낮과 밤의 길이가 달라지기 때문에 일일이 시간 설정을 다시 해줘야 했지. 지금은 퍼지이론 덕분에 에너지도 절약하고 안전성도 높아졌어.

"퍼지이론이 불분명한 것을 분명하게 만든 셈이군요. 그러고 보니 사람의 외모도 다양한 정보를 토대로 여러 단계로 구분하면, 숫자로 나타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 물론 외모를 점수화하는 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 각국 사람들의 나이별·성별·직업별 선호도 등을 분석해 자기 외모가 어떤 환경에서 경쟁력이 있는지 알아볼 수도 있겠지. 실제로 이런 방식을 통해 서로 어울리는 짝을 찾아주는 서비스도 나왔단다.

또 퍼지이론은 인공지능 발달에 한몫하고 있어. 주어진 명령어에 따라 계산을 빠르게 하는 기존 컴퓨터는 인간의 지적인 능력을 따라오지는 못해. 하지만 다양한 정보를 활용해 답을 찾아내는 과정을 아주 세분화하면, 컴퓨터도 상황에 맞춰 다양한 답을 구할 수 있지. 지금의 인터넷 검색 기술은 수많은 정보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찾아내는 데 도움을 주고 있어. 이것 역시 퍼지이론이 적용된 예로 볼 수 있지. 이런 식으로 컴퓨터의 지능이 발달하다 보면, 컴퓨터로 제어되는 로봇이나 자동차 등 각종 첨단 기술 수준도 더욱 높아질 거야.

"마치 사람이 배우면 배울수록 똑똑해지는 것과 비슷하네요."

"그러니 우리도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야해. 인간이 만든 기계보다 뒤떨어지면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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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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