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학년도부터 서울대 의대에 문과생 지원 가능해지자
가톨릭·이화 "교차지원 허용" … 연·고대 관망
외고 주가 뛰어 … 이과 상위권은 불만
일반고 유불리는 의견 엇갈려
“인문계열이지만 의대나 자연계열에 진학하려는 친구가 많아요. 서울대가 문과 학생도 의대에 지원할 수 있게 허용하면 다른 대학도 따라가지 않을까요.”(서울외고 2학년 김량훈군)
“일반고 이과 학생들이 다들 아주 불안해하고 있어요. 결국 의대 합격선만 올라갈 것 같아서요.”(서울고 2학년 박모군)
서울대가 현재 고 2가 치르는 2015학년도 대입에서 인문계열 학생(수학 A형·사회탐구 응시)도 의대·치의대에 지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입시안을 발표하자 학교 현장에서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대가 발표한 입시안에는 정시모집 인원을 늘리되 논술과 구술면접을 폐지하고 수능만으로 선발하는 내용도 담았다. 정시에서 내신 영향력이 줄고 이과 최상위권이 가는 의대 문호가 열리자 당장 외국어고 주가가 오르고 있다.
강북청솔 박종수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서울대 의예계열에 문과생 교차 지원을 허용하는 것은 서울대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며 “다른 대학이 따라간다면 문과 최상위권이 의대로 빠지면서 서울대는 물론 고려대·연세대 중하위권 학과의 합격선까지 요동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벌써 가톨릭대 의대와 이화여대 의대는 2015학년도 입시에서 문과 교차 지원을 허용하기로 했다. 반면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 등은 2015학년도에는 문과생의 의대 지원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연세대 박승한 입학처장은 “교육부가 고교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을 내놓겠다고 했는데 그게 시행되면 자연스럽게 의대 교차 지원이 실시될 것”이라며 “2015학년도에는 변화를 주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성균관대 김윤배 입학처장도 “정신과 의사에게 문과적 소양이 필요한 건 맞지만 고교 교육체제가 아직 바뀌지 않았는데 대학이 먼저 나서는 건 반대”라며 “고교 현장에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지 살펴보고 점진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만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학생은 별로 없기 때문에 의대 진학할 생각으로 외고로 몰리지는 않을 것”(최성수 타임교육 대입연구소장)이란 반응이 나오는 건 이렇게 명문대들이 서울대와 다른 방향을 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지가 서울외고 1, 2학년 5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의대 진학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이 상당수였다. 외고 입학 당시 의대 계열을 염두에 뒀다고 밝힌 학생은 3명에 불과했지만 이번 서울대 입시안 변경 이후 의대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학생은 12명(24%)에 달했다. 이 학교 2학년 박현민(17)군은 “문과지만 의사를 꿈꾸는 친구도 있는데 기회를 준다는 것 자체가 반갑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외고 입시설명회에 학부모 방문이 늘고 있다. 중3인 오모(15)군은 “자사고에 지원하려다 외고로 마음을 돌렸다”며 “내가 대입을 치르는 2018학년도에는 서울대뿐 아니라 다른 대학도 문과생에게 의대 문호를 개방할 것 같다”고 했다.
하늘교육 임성호 대표는 “안양외고는 올해 33명을 의예계열에 보내는 등 경기도권 외고는 이미 자연계열 진학을 염두에 둔 학생이 많았다”며 “서울대 발표 다음 날 열린 소규모 외고 설명회에 70명을 예상했는데 200명이 몰려왔다”고 소개했다.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 중에는 “이과 계열 학과로 진학할 예정인데 이제 외고 가도 손해 볼 게 없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다는 것이다. 임 대표는 “이번 의대의 문과 개방으로 서울대 문·이과 교차 지원 가능 학과의 비율이 89%에 이르게 된다”며 “2015학년도 대입에선 일부 이과생이 현행 국어A+수학B형 대신 전략적으로 학습 부담이 작은 국어B+수학A형을 선택해 수능을 치를 가능성도 높다”고 예상했다.
이과생 일부, 학습 부담 적은 '국어B+수학A'로 갈아탈 조짐
“서울대 정시 내신 제외해 특목고·재수생만 유리”
서울대는 2015학년도 입시에서 정시모집 선발인원을 17.4%(2014학년도)에서 24.6%로 늘리기로 했다. 정시 인문계 논술과 자연계 구술면접은 폐지하고 수능 성적만으로 뽑는다. 지역균형선발에 적용하던 수능 최저학력 기준도 2개 영역 2등급에서 3개 영역 2등급 이내로 강화하기도 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일반고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고 자연계열 2학년인 박모(17)군은 “이과 학생들 불안감이 매우 크다”며 “문과 교차 지원 때문에 합격선이 올라가 우리만 손해 보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그는 “수학B형이 A형에 비해 분량이 두 배나 많기 때문에 벌써 수학A형으로 바꿔 만점을 받는 게 낫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일반고의 이모 교사는 “2015학년도 서울대 입시안은 특목고와 재수생을 위한 것”이라며 “정시에 내신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1년 내내 수능만 준비하는 재수생과 내신 불리에 상관이 없어진 특목고생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서울대가 연세대·고려대에 빼앗겨 온 특목고생을 잡겠다는 계산을 하는 게 아니냐”고 덧붙였다. 임성호 대표는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은 그동안 일반고 전유물이었는데, 수능 최저학력 기준이 강화되면 지역 자사고에서 내신 1~2등 하던 학생들이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서울고 장천 교장은 “일반고는 어차피 서울대 정시보다 수시모집을 노리는 학생이 많기 때문에 서울대 입시안이 일반고에 불리하다고 단정짓기 어렵다”며 “정시 논술을 폐지한 게 오히려 일반고에 도움이 된다”고 풀이했다. 장 교장은 “지역균형선발 최저학력 기준이 강화됐지만 서울대 지원할 학생 정도면 3개 영역 2등급은 무난히 나온다”고 했다. 결국 서울대의 입시안 변화가 어느 정도 연쇄효과를 낼 것인지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
외고에 학생들이 몰리는지를 따져 보려면 현재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 내신 성적을 매기는 중 2가 외고에 지원하는 2015학년도를 주목해야 한다. 외고가 절대평가 성적을 어떻게 입시에 반영할 것인지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임성호 대표는 “서울지역 자사고 입시안도 절대평가 성적을 매기되 졸업시점에 총점을 내 등수를 산출한 뒤 내신 상위 50%를 가른다는 쪽으로 정리되는 듯하더니 아예 2015학년도부터 내신 반영 없이 무조건 추첨 후 면접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외고 전형안이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3 자녀를 둔 안모(49)씨는 “교육정책이 이렇게 자주 바뀌어서야 불안해 살겠느냐”며 “지난해 정책에 맞춰 준비한 게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일반고 2학년 박모(17)군은 “외고 가려다 내신 생각해 일반고에 왔는데 서울대가 갑자기 입시안을 중간에 바꾸니 화가 난다”며 “입시안 3년 예고제는 왜 대학에는 적용을 안 하는 거냐”고 하소연했다. 그는 “서울대 의대 교차 지원 허용은 문·이과 교육과정 통합안과 비슷한데 교육부가 유보하지 않았느냐”며 “고교 과정을 바꾸지 않고 입시만 바꾼 것은 강제적으로 변화를 주려는 것 같은데 피해를 보는 건 수험생뿐”이라고 불쾌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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