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지난 8월 ‘패러다임 전환형 과학 연구와 노벨상’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지난 30년 동안의 노벨상 패턴을 분석하고 각국의 관련 정책과 비교해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노벨상 수상의 지름길을 제시한 것이다. 보고서가 도출한 지름길은 △고위험·고보상 연구의 정책적 지원 △패러다임 창출을 위한 다학제 연구 지원 △유연하고 지속적인 지원체제 도입 △ 국제적 연구 네트워크 구축 등 4가지다. 노벨상 선정 기간이 다가올 때마다 기대에 찬 전망을 내놓지만 매번 고배를 마셔야 하는 입장에서는 곱씹어볼 만한 지적이다. 아시아 지역 수상자 40여 명 중 한국은 단 1명 아시아 지역의 노벨상 수상은 인도, 중국, 일본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 3개국 국민뿐만 아니라 타 지역으로 이민이나 귀화를 한 사람까지 합치면 40명을 넘을 정도다. 아시아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는 1913년 문학상을 받은 인도의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다. 인도는 지금까지 문학상 3명, 평화상 2명, 경제학상 1명, 물리학상 2명, 화학상 1명, 생리의학상 2명 등 모든 분야에서 총 1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중 5명이 인도 국적이고 6명은 인도 출신이다. 중국도 1957년 상하이 출신 리쩡따오(李政道) 박사의 물리학상 수상을 시작으로 물리학상 6명, 화학상 2명, 문학상 2명, 평화상 1명 등 총 1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중 9명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해외 거주자들이고 중국 국적자는 2010년 평화상을 받은 류샤오보(劉曉波)와 2011년 문학상을 받은 모옌(莫言)이 유일하다. 경제학상과 생리의학상은 아직 없다. 일본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박사의 물리학상 수상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19명의 수상자를 냈다. 문학상 2명, 물리학상 7명, 화학상 7명, 생리의학상 2명이다. 평화상과 경제학상은 없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제외하고는 아직 추가의 수상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문학상이나 경제학상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아시아인의 수상이 어렵다 해도 과학 부문 3개 상의 수상자가 전혀 없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노벨 과학상을 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분야에 중점을 두어야 할까. STEPI는 최근 30년 동안의 과학 분야 3개 노벨상 수상 패턴을 분석해서 공통되는 유형을 찾아냈다. 핵심은 ‘패러다임 전환형 연구’였다. 새로운 패러다임 만드는 ‘창출·전환형 연구’가 대세 수많은 과학적 발견 중에서 널리 인정을 받는 것은 사회와 학계의 패러다임(paradigm)을 변화시키는 연구들이다.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연구는 검증과 적용을 통해 기존의 이론과 실험의 간극을 좁혀 ‘패러다임을 명료화하고 확장시킨 연구’와 새로운 이론·개념·실험·기구·방법을 창안해 ‘패러다임을 창출하거나 전환시킨 연구’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 노벨상을 가져온 연구는 대부분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연구’에 속한다.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등 3개 과학 부문의 수상 내역을 살펴보면 ‘패러다임 창출·전환형 연구’가 87.1퍼센트인 반면에 ‘패러다임 명료화·확장형 연구’는 12.9퍼센트에 불과했다. 노벨 물리학상을 종합하면 지난 30년의 수상 연구는 ‘창출·전환형 연구’가 80퍼센트를 넘고 ‘명료화·확장형 연구’는 19.7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물리학상 수상 내역을 10년 단위로 끊어서 살펴보면 최근의 동향을 명확히 알 수 있다. 1983년에서 1992년까지는 실험·이론·개념·기구 등 창출·전환형 연구가 76퍼센트였고 ‘명료화·확장형 연구’는 24퍼센트에 불과했다. 이후 1993년부터 2002년까지는 창출·전환형이 65퍼센트로 약간 줄고 명료화·확장형이 35퍼센트로 늘어났다. 그러나 최근 2003년부터 2012년까지는 명료화·확장형으로 상을 받은 사례가 한 건도 없었고 모두 창출·전환형 연구로 수상했다. 화학상의 경우도 비슷하다. 전체 중 ‘명료화·확장형 연구’는 19퍼센트에 불과하고 나머지 81퍼센트는 ‘창출·전환형 연구’에 속한다. 명료화·확장형은 1983~1992년 중 22퍼센트, 1993~2002년 중 12퍼센트, 2003~2012 중 23퍼센트 등 전체의 4분의1을 넘지 못했다. 반면에 창출·전환형은 각각 78퍼센트, 88퍼센트, 77퍼센트 등 4분의3이 넘는 수상자를 배출했다. 생리학은 더욱 심하다. 과거 30년 동안 ‘명료화·확장형 연구’로 수상이 결정된 예가 없었고 모두가 ‘창출·전환형 연구’였다. 그중 4분의3 이상이 새로운 현상을 창조하거나 새로운 실험 방법을 고안해낸 연구였고, 나머지 4분의1의 대부분은 새로운 측정 방법이나 도구를 만들어낸 연구였다.
기존 과학계의 반대로 ‘패러다임 전환’ 쉽지 않아 그러나 과학 선진국이 아니면 ‘패러다임 창출·전환형 연구’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장하는 연구는 기존의 입장과 부딪혀 격렬한 반발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재료과학자 댄 셰흐트만(Dan Shechtman)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1980년대에 결정과 비결정질의 중간인 ‘준결정’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가 과학계의 반발에 부딪혔고 연구그룹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연구결과 덕분에 2011년 노벨 화학상을 거머쥔다. 패러다임 전환형 연구는 장래가 불확실하고 과학적 중요성을 가늠하기도 어렵다. 연구비 지원을 받기도 힘들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출신의 유전학자 마리오 카페키(Mario Renato Capecchi)는 선천성 유전자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특정 유전자만을 파괴하거나 재조합하는 유전자 적중법(gene targeting)을 연구해 2007년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앞서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연구비 지원 심사에서 탈락한 바 있다. 지난 2010년 미국 실험생물학회지(The FASEB Journal)에 발표된 ‘노벨상 수상작의 연구비는 누가 지원했나(Sources of funding for Nobel Prize-winning work: public of private?)’라는 논문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그리스 이와니나 의과대학교 연구진이 2000년에서 2008년 중에 노벨 과학상을 받은 논문 중 93개를 추출해 조사한 결과 70퍼센트인 65개만이 지원기관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30퍼센트는 제대로 된 연구비 지원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0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호비츠(Robert Horvitz) 교수도 “노벨상을 받은 연구의 상당 부분은 아마 전문가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거절당했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안전하고 확실한 연구에만 지원을 하는 국가들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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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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