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천사란 말이 유행이다. 기업가도 있지만 보통 유명 연예인이 벌이는 공익재단에 대한 기부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구체적으로 기부금이 어떤 식으로 전달되는지는 모르지만, 천사가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지옥이 만원인 듯한 현실을 감안하면, 천사가 많아야 천국의 문이 녹슬지 않을 듯하다.
미국에서는 모든 기부천사에 관한 정보를 스포츠 경기 기록처럼 외부에 공개한다. 일목요연하게 전부 공개한다. 절대량으로 본 액수 기준, 총재산에 대한 기부금 비율, 전년도에 비해 증가한 비율 등 온갖 입체적 자료가 제공된다. 자료를 제공하는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니라 수십, 수백 군데에 달한다. 랭킹을 발표하는 곳이 많은 이유를, 기부천사를 본받아 지상과 천국을 살 만하고 활발하게 만들자는 의도라 보기 쉽다. 하지만 다른 목적도 빼놓을 수 없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이다. 기부천사 랭킹을 발표하는 곳은 기부금 받기를 희망하는 단체나 사람을 위한 곳이다. 기부천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가서 기부금을 받아내는 노하우를 ‘판매하는 곳’이다.
대부분의 기부가 org로 대변되는 공익 재단을 통해 이뤄지는 것은 물론이다. 개인 이름이 나오지만, 그 뒤에는 org로 이어지는 재단이 있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미국은 세계 최고로 투명한 금융실명제 국가이다. 비자금 같은 성격의 돈이 생길 수가 없다. 기부천사를 다루는 최고의 악어새로 필렌스로피 닷컴(www.philanthropy.com)을 빼놓을 수 없다. 기부에 관한 360도 전방위 정보를 만들어낸다. 절대액수를 기준으로 한, 2012년 미국 내 기부천사 6인의 리스트를 살펴보자.
1위워런 버핏-31억달러
현재 82세인 워런 버핏(Warren Buffeft)은 하워드버핏재단(www.theHowardgBuffetFoundation.org)을 비롯해 전부 3개의 대형 org를 갖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글로벌 투자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의 대표이다. 기부금은 주로 깨끗한 식수, 가난 퇴치, 성인 교육, 어린이 조기 교육과 같은 곳에 제공되었다. 15개 초등학교의 학생 개개인에게 1만2000달러를 기부해 조기 비즈니스 학교를 오픈하기도 했다. 가난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돈 버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버핏의 지론이다. 부인인 제니퍼와 딸 수전도 org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한국에도 들른 버핏은 마음씨 좋은 기부천사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org를 통한 기부 활동의 원년은 70세가 됐을 때부터이다. 70세 이전까지 공헌한 기부금의 총액은 놀랍게도 거의 제로에 가깝다. 돈의 노예로 살다가 70세에 들어서면서부터 갑자기 기부천사로 나선 것이다. 그러나 기부 금액으로 수억달러를 약속했지만 곧바로 집행되지는 않았다. 실제 지급된 것은 신문 방송으로부터의 비난이 쇄도하고 나서부터이다. 기부에 관련한 버핏의 초기 활동은 보통 ‘뻥’으로 받아들여졌다. 싸구려 운동화를 신고, 길거리 음식을 사먹는 절약형 투자가로 알려져 있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구두쇠 스크루지가 버핏의 이미지였다.
2위
마크 저커버그와 프리실라 챈-4억9800만달러
28세의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와 부인인 27세의 프리실라 챈(Priscilla Chan)이 기부한 곳은 실리콘밸리커뮤니티재단(www.siliconvalleycf.org)이다. 챈의 아버지는 공산 베트남을 탈출해 미국에 정착한 베트남계 난민이다. 실리콘밸리 주변의 환경 의료·교육·지원에 나서는 org이다. 페이스북의 주식 180만주를 기부했다. 저커버그의 기부활동은 2010년 처음 시작됐다. 뉴저지주 뉴와크(Newark)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1억달러의 기부금을 낸 것이 시초였다.
저커버그가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역시 교육이다. 아직 독자적인 재단을 만들어 기부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다. 곧 대형 재단이 탄생하겠지만, 아직은 부부 차원에서 이뤄진다. 재단, 즉 org와 개인을 통한 기부는 각각 장단점이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세금감면 문제에 관한 부분이다. org가 아닌 개인 차원의 기부 활동에서는 세금면제의 결과는 개인에게 돌아간다. 대형 org를 만들어 자신의 재산을 재단 소유로 할 경우, 세금감면의 대상은 개인이 아닌 org가 된다. 저커버그 부부는 개인 차원의 기부를 통해 자신들의 재산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을 누리고 있다.
3위
존·로라 아널드-4억2300만달러
존 아널드와 로라 아널드(John and Laura Arnold)는 헤지펀드와 에너지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텍사스주 휴스턴 출신의 백만장자 부부이다. 두 사람이 운영하는 org인 아널드재단(www.arnoldfoundation.org)을 통해 기부가 이뤄졌다. 교육과 연금제도와 관련된 곳을 중점적으로 지원했다. 특히 미국 남부지방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교육 수준이 낮은 남부는 비만아가 많은 것으로도 악명 높다. 비만 개선을 위한 교육에도 주목한다. 텍사스주 석유재벌로서, 남부를 대표하는 org에 해당한다. 아널드재단이 한국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국제 문제에 무심하기 때문이다. 텍사스주나 루이지애나주와 같은 남부지역 org의 대부분은 전적으로 국내 문제만 주목한다.
4위
폴 앨런-3억900만달러
폴 앨런(Paul Allen)은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MS)를 만든 인물이다. MS 전성기에 일찌감치 주식을 팔고 나와 기부 활동을 정력적으로 펼치고 있다. 올해 3월 기준으로 전 세계 53위에 오른 부자이다. 전공을 살려 IT를 중심으로 하면서 생명과학, 농업 종자 개량, 뇌질환 연구 등에 기부금을 쏟아붓고 있다. 자신이 설립한 org인, 앨런재단(www.alleninstitute.org)을 통해 활동한다.
5위
세르게이 브린과 앤 보이치키-2억2200만달러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은 구글 설립자 중 한 명이다. 부인인 앤 보이치키는 유전자와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생물학자이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의 주인공 마이클 J 폭스 재단에 대한 기부 3200만달러를 비롯해, IT와 유전자·생명공학 분야에 기부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이 운영하는 브린보이치키재단이 창구이다. 브린은 1970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이민을 온 이민 1세대이다. 보유한 구글 주식을 통해 약 220억달러의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인류를 위한 계몽주의자(Enlightenment Man)’란 별명을 가진 인물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기도 하다.
6위
모티머 주커먼-2억달러
모티머 주커먼(Mortimer Zukerman)은 부동산 재벌이자 일간지 ‘뉴욕 데일리 뉴스’, 잡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의 소유자이다. 총자산은 24억달러 정도이다. 이름에서 보듯 유대계이다. 뉴욕 출신으로 사업 기반도 뉴욕, 기부 활동의 대상도 뉴욕 컬럼비아대학이다. 신경질환 관련 연구소에 기부를 했다. 컬럼비아대학은 뉴욕 북쪽 할렘 방면으로 뻗어가는 뉴욕에 남은 몇 안 되는 재개발 구역에 있다. 돈과 관련된 모든 활동이 그러하듯 결코 공짜는 없다. 앞서 강조했듯이 장기적으로 볼 때 org의 기부 활동은 비즈니스로 연결된다. 세금 감면만이 아니라 장래를 위한 포석이 org를 통한 기부이다. 컬럼비아대학 주변의 재개발을 둘러싼 부동산 재벌의 야심을 읽을 수 있는 기부이다.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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