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순 이지출판 대표 & 안상욱 母子
인재시교(因材施敎)는 획일적이 아니라 저마다 타고난 소질에 맞게 교육해야 한다는 뜻으로, 공자의 논어(論語)에 나온 말이다.
교육철학을 연재한다.
▲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
이지출판 서용순 대표와 동국대 생명과학과에 재학 중인 안상욱(25)군 이야기다. 안상욱군은 지난 8월에 치른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TT)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국내 최고 수준의 약대에 진학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들 모자를 지난 9월 초에 만났다. 이지출판은 허태학 전 삼성석유화학 대표이사의 ‘마음을 얻어야 세상을 얻는다’, 이종규 전 롯데햄 대표이사의 ‘나는 하루하루를 불태웠다’ 등을 펴낸 인문사회 분야 전문 출판사다. 30년째 출판계에 몸담고 있는 서 대표는 8년 전 이지출판을 창업해 안정적으로 꾸려오고 있다.
이들 모자가 보여주는 건 일하는 엄마가 외아들을 키우면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찾아간 과정이다. 유년 시절, 사춘기, 고3 등 인생의 굵직한 갈림길에서 맞닥뜨리는 난관이 얼마나 많은가. 모든 부모가 예외없이 겪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뒤늦게 해법을 알아차리고 애석해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 지나간 시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시행착오가 허용되지 않는 자녀교육, 후회나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서용순 대표는 그 해답을 ‘인생의 롤모델이 되는 멘토’에서 찾았다. 각계 각층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은 경륜 있는 인생 선배들. 그들의 금과옥조 같은 조언은 아들뿐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해답 없는 인생살이에 나침반이 돼 주었다. 그는 “엄마 아빠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고비고비마다 힘에 부쳤다. 누구나 그렇지만 엄마 노릇이 처음이었기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 부모 자격증 있는 사람이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 우연히 책에서 ‘롤모델’이라는 단어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인생에 롤모델이 있으면 방향타가 돼 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롤모델 군단을 꾸리는 데에는 30년 동안 출판계에서 다져온 인맥이 큰 자산이 돼 주었다. 특히 저마다의 성공드라마를 다져온 필자들은 한 명 한 명 멘토가 될 자격이 충분했다. “좋은 지인들 모시고 식사 대접하고 싶다. 아들도 데리고 가니 좋은 말씀 부탁드린다”는 그의 요청을 거절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같이 흔쾌히 응했다. 식사자리에 초청된 멘토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상욱군을 위한 덕담’이라는 주제로 응집력 있는 대화가 오갔다. 각기 해당 분야에서 내로라할 만한 멘토들은 경험과 연륜에서 우러나는 진심 어린 덕담을 아끼지 않았고 이 덕담들은 차곡차곡 상욱군의 몸과 마음에 쌓여갔다. 한 번에 초청된 멘토 군단은 7~8명. 상욱군이 중학교 1학년 때 시작해 고2 때까지 이어져 그간 30명 정도의 멘토가 초청됐다. 멘토는 고정된 게 아니라 매년 바뀌는데, 개중에는 5년 내내 한 번도 빠짐없이 초청된 멤버도 있다.
서 대표는 “한 번 멘토는 영원한 멘토”라고 했다. 한 번이라도 상욱군의 멘토 자격으로 식사자리에 초청된 이들은 늘 상욱군의 성장 과정에 관심과 애정을 보인다는 것. 상욱군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 고등학교를 입학할 때, 대입 수능을 앞둘 때 등 인생의 크고 작은 분기점마다 멘토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준다고 한다. 서 대표의 30년지기이자 회사의 CEO인 한 멘토는 상욱군에게 종종 이메일을 보내고 손편지도 써준다. 그 멘토에게 오늘 인터뷰 이야기를 하자 “캬~ 인터뷰거리 된다” 하면서 메모 한 장을 써서 서 대표에게 건넸다고 한다. 그가 5년간 상욱군에게 건넨 조언을 요약한 말이었다. 메모에는 ‘너는 할 수 있다는 무한 신뢰’ ‘성과는 노력의 양과 정비례’ ‘어머니는 Think helper의 역할을 해야. 지시 강요보다 더 효과’ 등이 적혀 있었다. 서 대표는 “연세도 많으시고 노출을 꺼리실 것 같다”며 멘토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상욱군이 약사로 진로를 정한 후에는 약사로 재직 중인 멘토가 든든한 지원군으로 나섰다. 약사의 길에 대한 실질적 조언을 해 주고,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을 앞두고 출제경향 분석 자료를 구해다주기도 했다고 한다.
멘토 초청 식사 대접은 상욱군의 성장 과정에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 1년에 단 한 번, 총 다섯 차례에 불과한 자리였지만 상욱군에게 끼친 영향력은 컸다. 우선 엄마에 대한 무한 신뢰를 갖게 됐다. 상욱군의 말이다. “식사 자리에 모인 분들의 면면이 대단했다. ‘와~ 이렇게 대단한 분들을 어떻게 한자리에 모으셨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엄마가 존경스러웠다. 또한 엄마에 대한 서운함도 줄었다. 책임감이 크시고 일을 즐기면서 하는 엄마를 존경은 했지만 한편으로는 일에 몰두해 있는 엄마를 보면서 서운했다. 그런데 멘토 분들이 ‘너희 엄마는 일을 하시면서도 늘 네 생각이 우선이야’ 하는 식으로 말씀해 주셨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내 생각을 하신다는 걸 알게 됐다. 엄마한테 직접 듣는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또 하나, 엇나감 방지 효과도 있었다. “쟁쟁한 분들이 나의 성장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막 나갈 수 없었다”는 것. 멘토라는 존재 자체가 어긋나지 않게 하는 보이지 않는 자력이 된 셈이다. 엄마 서 대표가 아들의 인성을 특히 높이 사는데, 이 부분 또한 멘토의 역할이 컸다고 말한다. 서씨는 “어려서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을 강조했다. 멘토들과의 만남을 통해 강화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상욱이는 어딜 가나 ‘외동 같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꿈의 크기도 커졌다. 엄마 서 대표는 멘토 초청 식사를 위해 최고의 식당을 골랐다. 강남의 고급 한정식 전문점일 경우가 많았다. 식비가 만만치 않았지만 서 대표는 “이것보다 더 멋지게 돈을 쓰는 경우가 또 어딨냐?”며 기분 좋게 웃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상욱군은 “그 고급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고 회상했다. 겉으로는 태연한 듯했지만 자신만을 위해 마련된 식사 자리가 부담스러운 것은 당연했다. “식사를 끝내고 나오면 강남의 고층빌딩 숲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엄마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기억이 특별하다. 고급 음식을 먹으면서 성공한 분들이 해 주시는 좋은 말씀을 듣고 나오면 가슴이 벅차 올랐다. 성공한 멘토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잘 자라서 누군가의 멘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멘토 초청 식사 대접은 아이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서 대표 본인에게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됐다. 그는 “아이도 나도 큰 도움이 됐다. 좋은 멘토를 초청하려면 내가 좋은 사람이 돼야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에게 롤모델이 될 만한 사람을 만나게 해 주려면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나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하고 그 분야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 깊은 분이어야 한다. 그런 분을 식사 자리에 초청해 ‘내 아이를 위한 조언 한마디’를 부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수락하려면 평소 관계가 잘 다져져야 한다. 원론적으로 부모의 삶이 중요하다. 나 역시 멘토 초청 식사 자리를 마련하면서 더 꽉 찬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 일찍 이런 자리를 마련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런 뒤늦은 깨달음 때문에 그는 ‘멘토 초청 식사’ 전도사가 됐다. 사석에서 자녀교육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멘토와의 식사 자리를 마련해줘라. 어릴 때 시작할수록 좋다. 멘토가 되는 롤모델을 일찍 만나게 해 주면 그 사람의 인생을 보면서 빨리 적성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주위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그를 벤치마킹한 지인이 여럿이라고 한다. 멘토로 왔던 사람이 자신의 아이를 위해 비슷한 자리를 마련한 경우도 있다. 초청된 한 지인은 “너무 좋은 아이디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나. 나도 진즉 이렇게 했으면 우리 아이를 다르게 키울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며 눈물까지 보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서씨가 자녀교육에서 중시하는 것은 엄마가 ‘Think helper(생각 도우미)’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가 내린 결론으로 ‘이래라 저래라’ 식으로 지시나 강요하지 말고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생각을 이끌어주라는 말로, 상욱군의 멘토가 내내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씨는 아들에게 공부로 달달 볶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거의 안 하고 팽팽 노는 아들을 그저 기다려주었다고 한다. 서씨는 “좋은 대학 진학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삼는 극성엄마들을 보면 불안했지만 결국은 내 교육법이 맞았다”고 했다. 군대에서 약제병을 하면서 뒤늦게 간절히 하고 싶은 것을 찾은 상욱군은 약학 공부에 무섭게 몰두했다. 그는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미친 듯이 공부했다. 태어나 처음이었다. 원래 계획적인 편이 아닌데 ‘계획의 왕’이 됐다. 내 스스로 정한 일간 계획을 단 하루도 어긴 적이 없다. 8개월간 30권이 넘는 노트 필기를 했다”며 뿌듯해했다. “꿈을 찾으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말이 진짜 실감난다”는 말도 했다.
그의 목표는 약사가 된 후 제약회사를 차리는 것이다. 그는 “꿈이 거창하죠?”라고 되묻더니 따뜻한 시선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꿈을 이루려면 투자자들로부터 자본을 모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엄마처럼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도록 잘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좋은 인맥을 맺을 수 있으니까.”
서용순 대표의
TIP 멘토 초청 식사는 일찍 시작할수록 좋아요 ❶ 현실 속 멘토는 위인전보다 강력하다 롤모델이 되는 멘토는 꿈을 이루는 추동체가 된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은 해당 분야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만의 뚜렷한 인생관이 있다. 그런 사람과의 식사는 위인전 100권을 읽는 것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심어줄 수 있다. 역사 속 위인들과는 상호작용이 불가능하지만 살아있는 멘토는 상호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건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된다. ❷ 다양한 직업군의 멘토를 초청하라.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 멘토 군단은 직업 탐색의 기회가 된다. 교사, 의사, 약사, 예술가, 엔지니어 등 다양한 직군의 멘토를 만나게 하라.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사고방식이 결정되듯,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진로가 달라질 수 있다. 멘토 초청 식사는 어릴 때 시작할수록 좋다. 롤모델이 되는 사람을 일찍 만나면 그만큼 빨리 적성을 찾을 수 있다. ❸ 부모는 Think helper(생각 도우미)가 돼야! 부모가 아이의 인생 전반을 좌지우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내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일방적으로 내린 판단으로 ‘이래라 저래라’ 강요하면 안 된다. 자녀가 인생의 크고 작은 난관을 만날 때마다 부모가 해결책을 던져주지 말고 아이 스스로 최선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생각 도우미가 돼라. 부모의 지시로 움직이는 아이는 수동형 인간이 되거나 반항아가 될 확률이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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