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 빈자의 영원한 친구
“셰익스피어보다 디킨스 가진 게 더 행운” 英은 축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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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영국인에게서 이런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보통 우리가 셰익스피어를 가져서 행운이라고 하는데 나는 찰스 디킨스를 가진 것이 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보통의 영국인들이 자신들의 두 대문호에 대해 갖는 감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많이 느낀다. 영어에 미친 영향이나 문학적인 가치로 따진다면 디킨스가 셰익스피어에 대적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작가가 살던 빅토리아 시절은 물론 지금도 보통사람들에게는 디킨스가 더 살갑다. 셰익스피어는 죽어 있는 작품 속 작가이고 디킨스는 살아 있는 생활 속 작가다. 그만큼 영국인들은 디킨스 작품에서 피부에 와 닿는 친화력을 느낀다. 통상 디킨스를 폄하하고자 할 때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인 레슬리 스테판경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만일 문학이 어설프게 교육된(half educated) 대중 사이의 인기만으로 평가된다면 당연히 디킨스의 것이 영어 소설 중에는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럼 이건 어떤가? 디킨스와 동시대인으로 대사상가이자 세계적 문호였던 레오 톨스토이의 이야기는 좀 다르다. “그의 소설 인물들 모두는 다 내 친구들이다.” 톨스토이는 디킨스를 19세기 최고의 문호라고 평했다. 그는 디킨스 초상화를 자신의 서재에 걸어 놓을 정도로 존경했다.
혹독한 가난이 키운 대문호
스테판경의 말마따나 디킨스의 소설은 문학소설로는 격이 낮을지 모른다. 그러나 빅토리아시대 이후 시대와 민족을 초월해 지금까지 사람들은 모두 디킨스의 소설에 울고 웃곤 한다. 특히 영국 사람들이 디킨스에 대해 갖는 애정은 남다르다. 필자는 이런 경우를 러시아인들이 푸슈킨에 대해 갖는 애정에서 본 적이 있다. 희대의 플레이보이이자 악동인 푸슈킨 작품의 천재성과 통속성에 대해 러시아인들이 갖는 자부심과 애정에 놀라움과 함께 부러움을 가진 적이 있다. 2월 7일 탄생 200주년을 맞아 영국인들이 갖는 디킨스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과 관심에 또 한 번 놀라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영국인에게 디킨스는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다. 조금만 눈여겨보면 놀라울 만큼의 영향을 그가 영국 사회에 끼쳤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가로서 서민의 애환을 대변하고 그로 인해 고달픈 일상을 잊어버리게 만든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디킨스는 약간 생소하긴 하지만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는 빅토리아시대 사회의 부조리와 위선을 소설뿐만 아니라 논설과 연설 등을 통해 고발했고, 그로 인해 개혁된 사회제도가 지금까지 영국 사회에 녹아 있을 정도다. 그는 일중독이라 불릴 정도로 열심히 일해 쌓은 부를 사회 빈곤계층과 억압 받는 계급을 위해 베풀기도 했다. 이런 모든 면으로 인해 그는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영국인의 존경을 받는다. 그의 탄생 200주년을 맞는 영국은 온통 디킨스 축제 무드다.
올 한 해를 통틀어서 영국에서만 100여개에 달하는 디킨스 관련 행사가 열린다. 영어가 모국어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일상어로 영어를 쓰는 과거 식민지 국가들에서도 올해는 디킨스의 해다. 세계 각지에서 14개의 문학 페스티벌이 열린다. 영어 사용 국가 외에는 파리, 취리히를 비롯해 스리랑카(Galle Literature Festival), 인도(Jaipur Festival), 우크라이나(L’Viv Festival), 스페인(Hay Festivals), 독일(The Walberberg Festival)에서 디킨스 문학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러한 각종 페스티벌은 영어를 배우는 20억명의 세계 사람들과 1100만명의 영어 교사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전 세계 3억5000만명을 위한 국제적 축제이기도 하다.
드라마 ‘위대한 유산’ 600만명 시청
작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한 주화도 나왔다. 디자인은 작가의 수염 난 얼굴 측면 모습에 작품 이름이 다양한 글씨 디자인으로 새겨져 있다. 자신을 위해 아무런 기념물도 만들지 말라는 본인의 희망과는 달리 그의 고향인 포츠머스와 런던의 서더크(Southwark) 지구에서도 동상이 세워지고 있다.
BBC가 작가 탄생 200주년을 맞아 제작한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이 작년 연말 TV시리즈로 방영되어 600만명이 시청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연초에는 작가가 말년에 시작해 끝내지 못한 소설 ‘에드윈 드루드의 비밀(Mystery of Edwin Drood)’ 마지막 부분을 현실에 맞게 다시 써 드라마로 제작·방영하기도 했다. 이 역시 300만명이 시청했다. ‘위대한 유산’의 주인공 핍(Pip)으로 나온 무명의 19살 배우 더글러스 부스가 인기를 끌었다. 갑자기 등장한 그에 대해 사람들은 “너무 예쁘게(too pretty) 생겼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대장장이가 키운 고아 출신으로 어렵게 자라는 인물이 ‘캘빈 클라인’ 속옷이나 향수 광고에 나오는 모델같이 생겨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더글러스 부스 때문에 여자 주인공이 너무 죽어버렸다는 불만도 나온다. 연출자는 “인물 때문에 캐스팅한 것이 아니고 연기력 때문이었다”고 변명을 하나 아무도 믿는 것 같지 않다. 디킨스를 소화하기에는 너무 잘생겨도 문제인 모양이다.
드라마 인기, 소설 다시 보기로 이어져
- ▲ 디킨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과 자서전들이 서점 특별코너에 진열되어 있다. photo 연합
이 두 작품의 방영으로 영국에는 디킨스 소설을 비롯한 빅토리아시대 소설이 붐이다. 분명 이 두 작품을 들어는 봤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실제 책을 읽지는 않았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거나 옛날에 본 것이 다시 궁금해진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 바람에 책이 갑자기 많이 팔려 출판사는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다. 더더욱 이 작품들은 이미 저작권이 만료되어 저작료를 줄 필요도 없다. 세계적인 경제사정으로 주머니가 얄팍해진 독자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 사정이 어렵다고 투덜대던 영국 출판사들이 142년 전에 죽은 작가와 BBC에 크게 신세를 진 듯하다.
BBC의 ‘위대한 유산’ 시리즈를 대비한 것도 아닌데 우연찮게 최근에 케임브리지대학과 핀란드 비스백박물관이 공동으로 제작한 ‘위대한 유산’ 원고 복사본이 나왔다. 디킨스 자신이 원고를 제본해서 친구에게 준 것이 핀란드 박물관에 기증됐고, 작가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세계 독자들과 연구가들을 위해 책으로 만들어져 나온 것이다. 이를 본 연구가들은 “작가의 악필은 이미 유명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고 거기에 수많은 가필이 가해졌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고 입을 모은다. 작가는 끝도 없이 고치고 시작과 마지막 문구도 여러 번 고쳤다는 것이 이번 복사본 출판으로 처음 알려졌다. 그중에는 완전히 다른 스토리 라인으로 바꾼 것도 있고 그것을 다시 원래대로 고친 곳도 있어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대문호도 그렇게 고민하고 고쳐야만 위대한 작품이 만들어지니 “그도 우리와 같은 인간 같아서 참 좋았다”고 연구가들은 말한다. 이번 책은 작가가 어떤 정신과 생각으로 문장을 쓰고 고치고 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 흥미롭다.
‘디킨스 시즌’은 의외의 시도를 불러일으킨다. 마틴 바움이라는 작가가 디킨스의 작품을 ‘속어(yoof-speak)’로 다시 써 책으로 펴낸 것도 그중 하나다. 그에 따르면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는 ‘Da Tale of Two Turfs’로 제목이 바뀌었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유명한 대사 ‘Please sir, can I have some more?(저 좀 더 주시겠어요?)’는 ‘oi mate, gimme some more!’로 바뀌었다. 일상적인 영어로 대화를 하는 젊은 세대에게 오래된 고전이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려고 이런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그가 바로 직전에 작업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집 ‘To Be Or Not To Be, Innit’은 1만권이 팔렸다고 하니, 이미 상당한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이미 단테, 에드거 앨런 포, 매튜 펄 등의 작품도 개서했다고 한다.
이러한 디킨스에 대한 세계인의 흥미와 관심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디킨스가 쓰던 상아 이쑤시개가 연전에 7000파운드에 팔린 적이 있다. 작가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는 것 말고는 진짜 별 볼 일 없는 작은 물건이 디킨스의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거액에 팔린 것이다. 이 이쑤시개는 미국 투어 중 선물받은 것으로 작가가 죽을 때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미국 출판그룹 반스앤노블이 갖고 있다가 경매에 내놓았다.
크리스마스 풍조도 바꾸다
디킨스의 돈에 대한 관념은 무척이나 유명하다. 그는 쉬지 않고 소설, 기사, 신문 발행, 연극 대본, 연설, 소설 낭송회 등을 통해 돈을 벌었다. 최근에 밝혀진 바로는 그의 거의 마지막 작품인 ‘우리 서로의 친구(Our Mutual Friend)’는 당시 인세로 6000파운드를 받았는데, 지금 돈으로 계산하면 42만파운드(7억5000만원)에 해당하는 거액이라고 한다. 그가 초기 미국 투어에서 벌어들인 돈도 지금으로 치면 140만파운드(25억원)라고 하니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돈을 번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을 때 남긴 돈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마 그의 화려한 생활과 10명의 자녀 뒷바라지, 그리고 많은 자선으로 남은 돈이 별로 없었는가 보다. 유산은 지금 돈으로 710만파운드(127억원)였다. 물론 “세계의 모든 정치인, 사회운동가들이 한 모든 것보다 디킨스가 세상의 핍박 받는 민중을 위해 한 일이 더 많다”고 극찬한 칼 마르크스가 남긴 250파운드(현재 가치로 2만3000파운드, 4000만원)에 비하면 아주 많으나, 찰스 다윈의 1300만파운드(234억원)에 비하면 약소하다.
현재의 세계적인 크리스마스 풍조는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한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죽어가던 크리스마스를 다시 살려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가족 중심의 축제로 만든 것이 바로 디킨스의 소설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영화화된 소설 중 하나이고, 매년 크리스마스를 크리스마스같이 만드는 대표적 영화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는 디킨스 소설 주인공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디킨스 연구가들이 찾아낸 바에 따르면 에베네저 스크루지는 18세기에 살았던 국회의원 존 엘위스를 모델로 한 것이라 한다. 그는 홀로된 어머니와 삼촌이 죽으면서 남긴 35만파운드(현재 가치로 4600만파운드·800억원)를 가진 부자였으면서도 1년 생활비를 50파운드(현재 가치 6550파운드·1800만원)밖에 쓰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이 인물의 이야기는 워낙 유명해 디킨스가 소설 소재로 이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실 인물을 소설 주인공으로
- ▲ 영국 왕립 조폐청이 디킨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발행한 2파운드짜리 기념 주화. 디킨스의 작품명들이 보인다.
디킨스는 이처럼 소설의 인물을 상상 속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현실에 실재하는 사람들을 각색해서 등장시킨다. 그의 소설이 보다 현실감을 갖고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디킨스 연구가들을 바쁘게 만든다. 이들은 디킨스 소설에 나오는 실제 인물을 추적해내곤 하는데, 최근에는 올리버 트위스트가 일했다고 하는 워크하우스를 디킨스가 어려서 살았던 집 바로 근처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또 소설 속에서 올리버 트위스트를 부리던 패긴은 당시 신문에 따르면 흑인 갱 보스였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실제 헨리였는데, 실제 스토리처럼 집을 나오거나 길 잃은 아이들을 강제로 부려 소매치기를 시키고 물건을 훔쳐오게 했다고 한다. 올리버를 도와주려다 살해된 낸시의 경우 당시 실제로 벌어졌던 25세 여인의 참혹한 살해사건을 디킨스가 이용했다는 것도, 크리스마스 캐럴에 유령으로 나오는 스크루지의 죽은 파트너 제이콥 말리는 디킨스의 첫 런던 집 근처 메릴리본 스트리트에 살던 등잔용 기름을 팔던 장사꾼 윌리안 사이크라는 것도 드러났다. 디킨스는 이 거리에서 17세부터 20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영국인에게 있어 디킨스는 절대 죽은 작가가 아니다. 오늘도 영국인들은 마치 그가 살아 있는 연예인인 것처럼 열심히 뒤를 캐고 다니고 있다. 또 마음속으로는 매일 그가 쓰는 소설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연속극의 다음 편을 기대하듯 말이다. 그의 소설이 신문기사로, 영화로, 연극으로, 뮤지컬로 계속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혼한 부인의 여동생들과의 관계도 아주 흥밋거리다. 일찍 죽은 처제 메리와는 정신적인 사랑이었다고는 하나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평생 완전히 회복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가 미국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에게 고백한 바에 따르면 “매일 그녀를 생각하고 있으며 미국같이 특별한 여행을 할 때면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죽은 그녀의 손에서 반지를 빼내 평생 차고 다녔다”고 한다. 심지어 그녀의 머리카락도 잘라 목걸이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한다. 동시에 다른 처제 조지나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디킨스 아이들을 돌보았다. 심지어는 언니가 디킨스와 이혼한 후에도 그녀는 디킨스가 죽을 때까지 따라다녔다. 최근에는 그녀와의 사이에 디킨스가 사생아를 두었고, 실제 그 사생아의 아들이 호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받기도 했다. 친구 테니슨이 디킨스에게 준 다이아몬드 반지를 그 사생아의 아들이 갖고 있다가 경매에 내놓아 세간에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어쨌든 빅토리아시대에는 공식적으로 꺼내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막 쏟아져 나와 대문호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있다. 그러나 이도 대문호의 인기가 아직도 현 시대의 연예인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방증할 뿐이다.
물론 영국인 모두가 이렇게 대문호들의 작품을 사랑하고 즐기는 것은 아니다. 최근 30세 이하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20%는 올리버 트위스트를 “찰스 다윈이 썼다”고 답했다. 또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20%가 “포르노 필름”이라고 답했다. ‘셜록 홈스’는 응답자의 4분의 1이 실제 인물이라고 믿고 있었으며, 스코틀랜드 최고 작가 로버트 번스마저도 67%의 응답자가 우리의 순대 비슷한 스코틀랜드 명물 음식 “하기스(haggis) 제작자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응답자들은 “문고본 책 한 권 읽는 데 8개월에서 1년 정도 걸렸다”고 답했다고 하니, 영국 식자들이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우리도 젊은이들의 문학에 대한 무지가 어느 정도인지 이런 조사와 통계를 한번 보고 싶다.
정치 속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디킨스
재정적자와 세계적인 경제난에 직면한 영국은 요즘 긴축재정 정책으로 시끄럽다. 기존 복지제도 축소 문제가 국가적인 화두다. 긴축재정을 펼쳐야 하는 당위성은 국민 모두가 합의를 한 상태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가 논쟁의 초점이다. 각 가정이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의 총량을 정해서 한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전 방위에서 긴축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어느 부문도 이 칼날을 피해 갈 수 없다. 문제는 보수자민 연립정부 내에서도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고 자민당은 물론 보수당 내에서도 수뇌부 방침에 반발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보수당의 정책에 찬성하는 편인 영국 성공회 고위층에서도 노골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이런 목소리를 보도하거나 글을 쓸 때 영국인들은 “이 문제는 디킨스가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혹은 “디킨스가 만든 제도인데 그가 살아 있으면 어떻게 발언했을까” 하는 식으로 시작한다. 심지어는 국회에서 노동당 의원이 발언하면서 디킨스 얘기를 하는 것도 들었다. “디킨스 시대에 만든 제도를 지금 좀 어렵다고 200년 전으로 되돌리겠다는 것인가” 하는 논지였다. 그 당시에 나온 말도 다시 되풀이되고 있다. “자격이 있는 가난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deserving and undeserving poor)”가 대표적이다.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 노력하는 가난한 자와 노력하지 않고 사회복지에 마냥 매달려 있는 노력하지 않는 가난한 자의 예를 들면서 자발적인 장기 무직자(여기서는 실업자라 하지 않는다) 등은 구별해서 복지를 베풀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디킨스가 활동하던 때도 정책 입안자들이 항상 외치던 논리였다. 여기서도 결국 디킨스가 아직도 영국인의 마음과 사회에 살아 있음을 본다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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