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영재 1호 푸름이 가족
최푸름(24)은 국가영재 1호다. 1999년 영재교육진흥법이 통과되면서 교과부에 최초의 영재로 등록됐다. 학습지나 유치원 등의 힘을 빌리지 않고 29개월 만에 한글을 뗐고, 8세 때 아이큐가 159였다. 그가 타고난 영재가 아니라 부모의 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영재라는 게 알려지면서 그는 유명인사가 됐다. 영재교육 붐을 일으켰고, 독서교육에 불씨를 댕겼다. ‘모든 아이는 자연과 독서를 넘나드는 통합 교육을 통해 영재가 될 수 있다’는 ‘푸름이 교육법’은 일반명사가 됐다.
그 ‘푸름이’가 훌쩍 자라 대학생이 됐다. 일본 국비 장학금으로 유학길에 올라 오사카에 있는 간사이대 심리학부에서 공부하고 있다. 공부의 재미에 푹 빠져 대학교 2학년 때 이미 졸업에 필요한 129학점 중 90학점 이상을 취득했다. 그는 자라면서 ‘딴짓’을 많이 했다. 남들은 입시 공부에 여념없는 고3 때 ‘푸름이 3D 입체 공룡박물관’ 책을 냈고, 얼마 전엔 일본 서적 ‘착한 아이로 키우지 마라’를 번역해 책으로 냈다.
푸름이 동생은 초록이다. 최초록(21)은 아주대 심리학과에 재학 중이다. 학원이나 과외 등 일체의 사교육 없이 단 3개월 동안 입시 공부에 매진한 성과다. 초록이는 원조 ‘공부의 신’ 조승연씨가 창안한 ‘그물망 공부법’에 딱 맞는 경우다. 그물망 공부법이란 놀면서 공부도 잘하고 성공도 하는 사람들의 공부법을 뽑아낸 것으로, 붙박이처럼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일상에서 하는 열린 공부다. 이 공부법은 당장에는 큰 효과가 없어 보이지만 자랄수록 놀라운 효과를 거둔다는 게 조승연씨의 주장이다. 독서력이 탄탄한 초록이는 무섭게 성적이 올랐다. 중학교 1학년 때 반에서 11등이던 그는 3학년 때에는 반에서 1등을 했고, 고1 때에는 전교 13등, 고2 때에는 전교 5등을 하더니 급기야 고3 때에는 전과목 1등급을 받았다.
지난 8월 9일, 방학을 맞아 한국에 온 푸름이와 그의 가족을 만났다. 동생 초록이와 아버지 최희수, 어머니 신영일씨까지. 똘망똘망한 어린이였던 푸름이는 키 183㎝에 턱수염이 덥수룩한 ‘푸름씨’가 되어 나타났다. 초록이는 아직 앳된 얼굴이다. 오랜만에 만난 형제는 헤드록을 걸고, 매미 잡으러 뛰어다니며 아이처럼 놀았다. 반년 만에 왔다는 최푸름은 단 열흘만 머물다가 일본으로 돌아가 자전거 여행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부부는 출판사를 공동 운영하면서 푸름이 교육법을 전수 중이다. 10년 이상 꾸준한 전파를 통해 수제자를 수없이 양산했다. 대표적인 수제자는 ‘불량육아’로 유명한 하은맘과 세 아이를 영재로 키운 서안정씨다.
일찌감치 영재로 집중 조명을 받은 영재들은 무너지기 쉽다. 영재의 특별함이 ‘튀는 행동’으로 지적당하면서 상처받고 엇나가는 경우도 많다. 최푸름에게 물었다. ‘국가영재 1호’라는 타이틀이 버겁지 않았는지. 그는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부모에게서 받은 영향이 크다. 부모가 내면의 고요함을 지켜주었다. 학교에서는 힘든 면이 있었지만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의 힘이 워낙 컸기 때문에 이겨나갈 수 있었다. 부모님이 든든한 안전기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사회문화적인 배경 속에서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억제되는가’에 대해 졸업 논문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논문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는 그의 말투는 노련한 교수 같았다. 머릿속에 답변의 기승전결을 만들어놓고 대본을 읽는 듯했다. 어머니 신씨는 “나는 푸름이 아빠 말솜씨에 못 당하고, 푸름이 아빠는 푸름이 말솜씨에 못 당한다. 얘(푸름이)가 입을 열면 다들 입을 떡 벌린다”고 했다. 어머니 신씨는 푸름이가 ‘머리 좋은 영재’라면 초록이는 ‘사회성 영재’라고 소개했다. 초록이는 팔방미인이다. 노래와 그림에도 소질이 있고, 체육지도자 자격증과 라이프가드 자격증을 취득했다.
서울대 조경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아버지 최씨와, 탁구선수 출신인 어머니 신씨는 교육계의 환상의 커플이다. 신씨는 “아빠는 감독, 엄마는 코치 역할을 했다. 나는 내 아이들의 발달만 따라갔다. 영재는 내가 만들었지만, 영재의 능력을 유지하고 발현시킨 것은 푸름이 아빠다”라고 말했다. 부부가 육아와 교육에 들인 공은 놀랍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둘은 연애시절부터 교육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어머니 신씨는 “아이를 낳으면 정신이 없으니까 미리 준비해야 했다”고 말했다. 부부는 1000권이 넘는 육아 관련 서적을 읽었다. 요즘에도 아버지 최씨는 한 달에 10권 정도의 교육 관련 서적을 읽는다고 했다.
부부의 자녀교육의 토대가 된 책은 미국의 심리학자 웨인 다이어의 ‘모든 아이는 무한계 인간이다’. 둘 다 마흔 번 넘게 읽었다고 말했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모든 아이는 능력의 한계가 없는 무한계 인간으로 태어나며, 타고난 고유성을 그대로 간직하면 누구나 다 영재가 될 수 있다는 것. 웨인 다이어는 무한계 인간을 이렇게 정의했다.
“무한계 인간이란 창의적이고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타인의 인생을 배려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들은 애정 깊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뿐 아니라,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어 도전을 겁내지 않는다. 스스로를 억압하지 않으며 타인의 제약을 거부한다. 인생에 대한 목표가 확고하고 주관이 뚜렷하다.”
어머니 신씨는 “무한계 인간으로 키우는 건 인간의 본성대로 키우는 건데, 쉽지 않았다. 나는 반대로 컸으니까”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대다수의 사람은 사회화 과정에서 본성을 잃어버린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억누르다 보면 자신의 고유성이 휘발되기 십상이다. 부부는 아이가 가진 위대한 힘을 믿었다. 아이가 가진 고유성을 죽이지 않고 그대로 인정해주는 데에 집중했다.
부부가 실천한 영재 교육법을 키워드로 요약하면 ‘자연’과 ‘독서’, ‘무조건적 사랑’이다. 푸름이는 자연에서 자라고 자연을 통해 배웠다. 그가 시골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 태어났다. 푸름이가 생후 100일 즈음 부부는 경기도 파주 금촌으로 이사했다. 아버지 최씨의 말이다. “남들은 교육을 위해 서울로 이사왔지만 우리는 반대다. 서울에서 시골로 이사갔다. 나는 조경학과 출신이고, 아내는 과수원집 딸이다. 자연 속에서 뛰어놀던 추억의 힘을 안다. 힘들 때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어릴 때 풀 보고 꽃 보고 하늘 보던 추억에서 비롯된다. 가족과 함께 자연에서 활동했던 자체가 엄청난 내면의 힘이 된다.”
가족은 주말마다 임진강으로 캠핑을 떠났다. 요즘 유행하는 럭셔리 캠핑과는 거리가 멀다. 전투 캠핑에 가깝다. 텐트 하나, 냄비 하나, 버너 하나면 준비 끝. 식량은 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해결했다. 강태공에 가까운 아버지의 실력 덕에 끼니를 굶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푸름이와 초록이는 아버지를 따라 맨손으로 고기 잡는 노하우를 전수받고, 물 맑은 임진강에서 잡아올린 수십 종의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푸름이가 27개월 때 60종의 어류를 척척 구별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형제는 몇 시간 동안 모래 굴을 파고 그 속에 쏙 들어가 있기도 했다. 맨손으로 파다 보면 손톱이 다 까이고 얼굴이 새까매지지만 부부는 그저 지켜만 본다.
자연 관찰이 전부가 아니다. 아버지 최씨는 자연과 책을 넘나들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사물을 분류하고 원리를 파악하는 데 백과사전만큼 좋은 책이 없다는 것. 부부는 푸름이와 초록이를 위해 백과사전 5질, 자연관찰 전집 10질을 들여왔다. 은행나무를 푸름이가 보고 “아빠, 저게 뭐야?”라고 물으면 아버지 최씨는 “저건 고생대에 출현한 나무이고, 암수나무가 따로 있어” 식으로 자신이 아는 지식을 최대한 설명한다. “아무리 어려운 학명이나 고유명사도 아이는 스폰지처럼 흡수한다. 말을 배우는 아이에게는 우리말이나 영어나 같은 수준으로 들린다”는 게 최씨의 말이다. 그리고 집에 와서 함께 백과사전을 뒤져본다.
부부는 푸름이가 17개월 때부터 책을 읽어줬다. 최소 하루 두 시간씩. 밤을 꼬박 새서 읽어준 적도 있다. 어머니 신씨는 “푸름이 눈빛이 잠을 재울 수 있는 눈빛이 아니었다. 나는 푸름이의 발달만 따라갔다”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아이의 미묘한 눈빛을 읽어준 게 영재로 키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 같다. 나는 탁구선수 출신이라 눈치가 빠르다.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눈빛과 미세한 표정의 변화로 알아차릴 수 있다. ‘비가 옵니다, 바람이 붑니다’를 읽으면 푸름이가 머릿속에 비를 그리고 바람을 그리는 게 보였다.”
푸름이는 동화책을, 초록이는 만화책을 좋아했다. 부부는 “아이에게서 만화책을 뺏지 마라”라고 조언한다. 듣고 있던 푸름이는 이론적 토대를 설명했다. “피아제 발달이론에 따르면 구체적 조작기와 추상적 조작기가 있다. 추상적인 글만 보고 이해를 하려면 12~15세가 돼야 한다. 글만 보고 재미를 느끼는 시기가 되려면 15세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자타공인 ‘자녀교육의 고수’ 최희수·신영일 부부. 부부가 궁극적으로 깨달은 자녀교육은 ‘성공한 아이로 키우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 최씨는 “푸름이는 푸름이가 되고, 초록이는 초록이가 되면 부모로서 임무는 끝난 것”이라고 말했고, 어머니 신씨는 “나를 사랑할 줄 알고, 배려 깊은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모든 아이를 영재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끝난 후 사진 찍으러 가는 길, 부부는 손을 꼭 잡고 다녔다.
푸름이 아빠 최희수의
TIP 모든 아이는 영재로 태어난다 ❶ 아이를 위해 ‘희생’하지 마세요 희생은 ‘돌려받을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행위다. 자신을 희생한 부모는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이것밖에 못하니!’라며 끊임없이 잔소리한다. 희생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부모의 감정을 돌보고 살피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느라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데 몰입하지 못한다. 아이를 위해 ‘헌신’하라. 헌신은 조건 없이 베푸는 마음이다. 헌신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기 때문에 자존감 높은 아이로 성장하면서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있다. ❷ 기다림의 신이 되어야 미국의 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는 ‘몰입’에서 “성장은 자아가 분화와 통합을 거치면서 복합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영재들이 살아남지 못하는 이유는 부모가 아이의 성장을 재촉하기 때문이다. 지성은 앞서갈 수 있지만 정서는 제 나이를 먹으면서 통합된다. 독립성과 사회성은 동시에 길러지지 않는다. 아이가 분화의 과정을 잘 겪고 통합의 과정에 이를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줘야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❸ 열렬히 반응해주세요 영재는 반응하는 부모 밑에서 탄생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줘라. 부모가 반응해주면 아이는 신이 나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더욱 관심을 쏟고 개발해 나간다. 라이트 형제의 부모는 라이트 형제가 썰매를 만들고 싶다고 하면 “참 괜찮은 생각이구나!” 하면서 “만들고 싶은 썰매의 설계도를 그려 보면 어떨까?”라는 식으로 반응해주었다. 부모는 아이의 ‘변화의 중계자’ 역할을 해야 한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찰하고 자극하며,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존재 말이다. ❹ 착한 아이로 키우지 마세요 착하다는 것은 고유한 자신이 아닌 남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유성을 잃어버린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이런 행동을 하면 엄마, 아빠가 싫어할 거야’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채 지내왔기 때문에 자란 뒤에는 우울증과 강박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아이가 가진 고유성을 인정하라. 부모로부터 고유성을 인정받은 아이는 자기 자신을 존귀하고 특별한 존재로 인식한다. ❺ 백과사전을 장난감처럼! 아이들이 사물을 분류하고 그 이치를 알고자 할 때 백과사전만큼 유용한 것이 없다. 길을 가다 본 꽃, 자동차, 표지판 등을 아이와 함께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라. 자연에서의 체험과 책이 주는 정보가 결합되면 아이의 지적 능력이 눈부시게 발달한다. 다섯 살 이후로 푸름이는 궁금한 모든 것을 백과사전에서 해결했다. 숙제를 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참고서 대신 백과사전을 찾아보며 폭넓게 공부했다. - ‘푸름아빠의 아이를 잘 키우는 내면 여행’에서 발췌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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