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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르네상스 시대라고요? ‘8주 완성’ 같은 속성 강의가 어떻게 인문학의 본질을 말해줄 수 있나요? 인문학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지, ‘답, 그 자체’가 아닙니다.”
서울 이화여대 인문관에서 김혜숙(58) 철학과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한국인문학총연합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내년이면 60주년을 맞는 한국철학회 최초의 여성 회장이기도 하다. 인문학총연합회는 인문학이 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한국철학회·국어국문학회 등 27개의 다양한 인문학회를 연합해 만든 기구다.
김 교수는 일부 언론에서 사설 인문학 강좌의 유행을 가리켜 인문학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풍토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인문학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열악합니다. 점수가 낮은 학생이 가는 곳이 철학과라고들 생각하죠. 그런 분위기가 팽배하다 보니 철학과에 들어오는 학생조차 자기가 하는 학문에 자긍심을 갖지 않아요. 철학은 고급 학문이기 때문에 어느 수준 이상의 사유 능력을 갖춘 학생이 필요합니다. 학생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깨달아야 하는데, 사회적 풍토나 분위기 때문에 철학도로서 지적 자긍심을 갖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김 교수는 “사교육시장의 인문학 열풍은 곧 고등교육기관의 인문학 부재”를 뜻한다고 했다. “교양교육 같은 것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인문학 르네상스라는 말이 애초에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초·중·고등학교에서의 입시 위주 공부, 앎에 대한 호기심이 없는 수단화된 공부가 인문학의 근본을 잠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은 앎에 대한 욕구에서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지, 어디서 온 존재인지, 인생이란 무엇인지, 진리란 무엇인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하는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며 거기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인문학이다. 인생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인문학에도 정답은 없다. 생각을 확장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인문학적 소양이 키워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책을 읽고 그 책을 통해 생각을 나누는 교육의 토대가 마련돼 있지 않다.
“성인이 된 후 인문학에 대한 학습 욕구가 생겨도 그 욕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정해진 답을 찾는 훈련, 지식을 머릿속에 구겨넣는 훈련에 너무 길들여진 탓이겠죠.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우는 것이 철학이고 인문학인데요.”
“인문학도가 교육 진출해야”
김 교수가 생각하는 인문학 진흥 방안의 열쇠 역시 교육에 있었다. 그는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교육의 장에 진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문학이 교육에 스며들어서 어릴 때부터 인문적 사유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범대가 지나치게 비대한 조직이 된 것도 하나의 문제입니다. 이를 테면 국어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은 국어국문학 전공자보다 국어와 국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을 수 있습니다. 교육학 그 자체를 배우는 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한정적 교육을 받은 사대 출신들이 공교육을 장악하고 인문학 전공자들은 오히려 사교육으로 빠지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이런 이야기가 밥그릇 싸움으로 연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조심스러운 바람도 내보였다. 그는 “사대 학생에게 인문학적 훈련을 시키거나, 인문대 교육과정과 사대 교육과정을 연계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학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예산을 지원받긴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현재 인문·사회학이 함께 2000억여원을 지원받고 있는데 이는 2002년 이후 사실상 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순수인문학으로 지원되는 것은 한국연구재단 전체 예산(3조원)의 3~4%에 불과하다.
김 교수는 “이미 교수가 된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소득을 연구에 투자할 여력이 있지만 소위 ‘학문 후속세대’라 불리는 석·박사 과정 학생들은 비용 문제 때문에 공부 자체를 포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인문학 관련 학과들이 통폐합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교수 임용이 굉장히 힘들어졌습니다. 문사철을 하는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에 있는 것이 빤히 보이는데 누가 인문학에 발을 들이려고 하겠습니까.”
“국내외 인문학 교류 필요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인문학은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하지 못한다. 지원이 적어서 국내 학자들과 국외 학자들의 학문적 교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 지식 커뮤니티 안에서 생산되는 연구논문이 세계에 소개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사장되기도 한다.
“외국에서 한국학을 하는 사람들이 써내는 논문이나 글이 하나의 스탠더드처럼 유포가 됩니다. 이를 테면 국내에서 굉장히 높은 수준의 담론을 만들어내는 역사학자가 나와도 국외에서는 전자의 이야기가 더 높은 수준의 것으로 회자되죠. 자연히 국내 학계의 여러 가지 성과들은 묻혀버리고 맙니다. 역(逆)오리엔탈리즘이 발생하는 것도 모두 이런 이유입니다.”
최근 한류가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학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졌다. 유럽·미국의 유명 대학에서 한국 문학, 한국 미술사 등을 영어로 강의할 사람을 찾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렇다 보니 영문학 전공자에게 한국 문학을 속성으로 익혀 강의하게 하는 일도 발생한다.
“세계의 변화는 빠른데 우리는 느리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사실 학계는 굉장히 보수적이기 때문에 이런 변화에 빨리 적응하지 못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가 나서야죠. 미국 2.5세대 동포 학생들 중 한국학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있으면 전폭 지원해야 해요. 비교문화적 관점을 통해 국내 유수의 성과들을 외국에 알릴 필요가 있는 거죠.”
김 교수는 현재 ‘한국철학자료집’ 출판을 준비 중에 있다. 지난해 하와이대학에서 만든 일본철학자료집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한국 문학과 한국 역사를 뒤적이지만 접근할 방법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 학문을 알리고 국내와 국외의 학문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영문으로 된 한국철학자료집을 만들려고 해요. 그런데 비용을 충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김 교수는 국내의 크고 작은 ‘인문학 프로젝트’에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껏 한국을 지켜준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그 가치를 통해 미래를 어떻게 개척할 수 있는지, 인문학만이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다. 당장의 성과만을 기준으로 인문학을 재단하는 근시안적 사고는 버려야 해요. 인문학에서가 아니면 절대 구할 수 없는 가치들이 있으니까요.”
서울 이화여대 인문관에서 김혜숙(58) 철학과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한국인문학총연합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내년이면 60주년을 맞는 한국철학회 최초의 여성 회장이기도 하다. 인문학총연합회는 인문학이 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한국철학회·국어국문학회 등 27개의 다양한 인문학회를 연합해 만든 기구다.
김 교수는 일부 언론에서 사설 인문학 강좌의 유행을 가리켜 인문학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풍토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인문학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열악합니다. 점수가 낮은 학생이 가는 곳이 철학과라고들 생각하죠. 그런 분위기가 팽배하다 보니 철학과에 들어오는 학생조차 자기가 하는 학문에 자긍심을 갖지 않아요. 철학은 고급 학문이기 때문에 어느 수준 이상의 사유 능력을 갖춘 학생이 필요합니다. 학생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깨달아야 하는데, 사회적 풍토나 분위기 때문에 철학도로서 지적 자긍심을 갖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김 교수는 “사교육시장의 인문학 열풍은 곧 고등교육기관의 인문학 부재”를 뜻한다고 했다. “교양교육 같은 것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인문학 르네상스라는 말이 애초에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초·중·고등학교에서의 입시 위주 공부, 앎에 대한 호기심이 없는 수단화된 공부가 인문학의 근본을 잠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은 앎에 대한 욕구에서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지, 어디서 온 존재인지, 인생이란 무엇인지, 진리란 무엇인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하는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며 거기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인문학이다. 인생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인문학에도 정답은 없다. 생각을 확장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인문학적 소양이 키워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책을 읽고 그 책을 통해 생각을 나누는 교육의 토대가 마련돼 있지 않다.
“성인이 된 후 인문학에 대한 학습 욕구가 생겨도 그 욕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정해진 답을 찾는 훈련, 지식을 머릿속에 구겨넣는 훈련에 너무 길들여진 탓이겠죠.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우는 것이 철학이고 인문학인데요.”
“인문학도가 교육 진출해야”
김 교수가 생각하는 인문학 진흥 방안의 열쇠 역시 교육에 있었다. 그는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교육의 장에 진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문학이 교육에 스며들어서 어릴 때부터 인문적 사유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범대가 지나치게 비대한 조직이 된 것도 하나의 문제입니다. 이를 테면 국어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은 국어국문학 전공자보다 국어와 국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을 수 있습니다. 교육학 그 자체를 배우는 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한정적 교육을 받은 사대 출신들이 공교육을 장악하고 인문학 전공자들은 오히려 사교육으로 빠지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이런 이야기가 밥그릇 싸움으로 연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조심스러운 바람도 내보였다. 그는 “사대 학생에게 인문학적 훈련을 시키거나, 인문대 교육과정과 사대 교육과정을 연계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학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예산을 지원받긴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현재 인문·사회학이 함께 2000억여원을 지원받고 있는데 이는 2002년 이후 사실상 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순수인문학으로 지원되는 것은 한국연구재단 전체 예산(3조원)의 3~4%에 불과하다.
김 교수는 “이미 교수가 된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소득을 연구에 투자할 여력이 있지만 소위 ‘학문 후속세대’라 불리는 석·박사 과정 학생들은 비용 문제 때문에 공부 자체를 포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인문학 관련 학과들이 통폐합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교수 임용이 굉장히 힘들어졌습니다. 문사철을 하는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에 있는 것이 빤히 보이는데 누가 인문학에 발을 들이려고 하겠습니까.”
“국내외 인문학 교류 필요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인문학은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하지 못한다. 지원이 적어서 국내 학자들과 국외 학자들의 학문적 교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 지식 커뮤니티 안에서 생산되는 연구논문이 세계에 소개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사장되기도 한다.
“외국에서 한국학을 하는 사람들이 써내는 논문이나 글이 하나의 스탠더드처럼 유포가 됩니다. 이를 테면 국내에서 굉장히 높은 수준의 담론을 만들어내는 역사학자가 나와도 국외에서는 전자의 이야기가 더 높은 수준의 것으로 회자되죠. 자연히 국내 학계의 여러 가지 성과들은 묻혀버리고 맙니다. 역(逆)오리엔탈리즘이 발생하는 것도 모두 이런 이유입니다.”
최근 한류가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학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졌다. 유럽·미국의 유명 대학에서 한국 문학, 한국 미술사 등을 영어로 강의할 사람을 찾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렇다 보니 영문학 전공자에게 한국 문학을 속성으로 익혀 강의하게 하는 일도 발생한다.
“세계의 변화는 빠른데 우리는 느리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사실 학계는 굉장히 보수적이기 때문에 이런 변화에 빨리 적응하지 못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가 나서야죠. 미국 2.5세대 동포 학생들 중 한국학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있으면 전폭 지원해야 해요. 비교문화적 관점을 통해 국내 유수의 성과들을 외국에 알릴 필요가 있는 거죠.”
김 교수는 현재 ‘한국철학자료집’ 출판을 준비 중에 있다. 지난해 하와이대학에서 만든 일본철학자료집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한국 문학과 한국 역사를 뒤적이지만 접근할 방법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 학문을 알리고 국내와 국외의 학문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영문으로 된 한국철학자료집을 만들려고 해요. 그런데 비용을 충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김 교수는 국내의 크고 작은 ‘인문학 프로젝트’에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껏 한국을 지켜준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그 가치를 통해 미래를 어떻게 개척할 수 있는지, 인문학만이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다. 당장의 성과만을 기준으로 인문학을 재단하는 근시안적 사고는 버려야 해요. 인문학에서가 아니면 절대 구할 수 없는 가치들이 있으니까요.”
-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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