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학 최초 유일의 외국인 국어학과 교수
시내버스 안내양 이야기를 시작으로 20년 전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던 버스노선까지 기억해 내는 그가 처음에는 마냥 신기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개통을 현장에서 지켜봤다”는 이야기 뒤에 이어지는 서울 종로의 북촌과 서촌마을의 오래된 한옥 처마와 마루, 그리고 창호 문의 아름다움까지. 우리에게도 오래된 기억 속 서울의 과거를 마치 고향 이야기 하듯 꺼내 놓는 모습에서 그가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 날아온 외국인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로버트 파우저(50) 교수 이야기다. 2008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그는 국내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최초이자 유일한 외국인 교수다.
지난 10월 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파우저 교수를 만났다. 눈을 감고 파우저 교수의 한국말을 듣고 있으면, 그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다. 한국인보다 더 정확하게 한국말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 언어”
파우저 교수는 “언어학자로서 ‘한국말과 한글’은 누구나 연구해보고 싶은 존재”라며 “언어학적 관점에서 한글은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언어”란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어, 특히 문자인 ‘한글’은 세계 언어 발달사(史)에서 ‘유일하다’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통상의 언어들은 기원을 알기 힘들 만큼 수천 년에 걸쳐, 다른 지역 언어와 교류하며 진화하고 발달해 현재에 이르고 있지요. 그런데 한글은 이와는 전혀 다른 탄생과 진화 방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1443년 어느 날 갑자기 등장했어요. 그것도 ‘한국인을 위한 글, 언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철저한 계획에 의해 탄생한 겁니다. 세계 문자 역사에서 이런 글은 없습니다. 다른 언어들과 완전히 다른 독특함과 독창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파우저 교수는 이런 한글의 독특한 언어 진화와 함께 한글의 과학적 구조도 이야기했다. “소리인 ‘발음’과 모양인 ‘글자 형태’ 역시 다른 언어들과는 뚜렷이 구별됩니다. 통상의 언어들은 자음과 모음이 한 방향으로만 결합됩니다. 하지만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상하좌우 어떤 위치에서든 자유롭게 결합됩니다. 이것이 표현하려는 소리를 정확히 발음할 수 있게 하지요. 물론 자음과 모음을 어떤 방향으로 결합해도 글자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절묘한 미적 기능도 있습니다. 철저히 계획되고 계산된 언어인 것이지요.”
그는 “이런 내용이 언어학자들 사이에서 ‘한글을 과학적 문자로 부르게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며 “많은 언어학자에게 매우 매력적인 연구 주제가 바로 한글”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한글의 매력에 푹 빠진 많은 언어학자 중 한 명이 바로 ‘로버트 파우저’다.
일본 대학에서 한국어 가르친 미국인
파우저 교수는 1983년 서울대 언어연구소에서 1년간 한국어를 배웠다. 언어 감각이 남달랐기 때문인지 한국을 떠날 때쯤 그는 한국 신문을 불편 없이 읽을 수 있을 만큼 한국어 실력이 늘었다.
이후 미국으로 귀국했던 파우저 교수는 1986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카이스트(KAIST)와 고려대에서 영어학을 강의했다. 또 1990년대 중반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대학과 구마모토대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를 이어갔다.
“교토대에서 교수로 있던 2006년에 알고 지내던 가고시마대학의 교수 한 명이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수가 필요하다며 도움을 청해 왔어요. 일본 생활이 조금 느슨해져 있던 차에 새로운 목표가 생기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대학을 옮겼습니다.”
당시 한국어 교육 과정이 전혀 없던 가고시마대학에서 그는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과 교재를 직접 만들며 가고시마대학에 한국어 교육 과정을 정착시켰다. 그것이 그에게 있어 한국어 교수 생활의 시작이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미묘하고도 특수한 관계를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미국인이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일’ 그 자체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2008년, 그가 일본에서 보여준 한국어 교육의 성과가 한국 국어학계와 교육계에 알려지며 서울대학교가 그에게 교수직을 제안했다. 망설임 없이 한국행을 택했고, 5년이 흐른 지금까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파우저 교수는 한국어만큼이나 한국 문화에도 애정이 깊다. 특히 개발 열풍에 밀려 사라져 가는 한옥 보존을 위해 만들어진 ‘서촌주거공간연구회’의 회장을 맡고 있을 만큼 그의 한옥 사랑은 정평이 나 있다.
그가 한옥 예찬을 시작했다. “한옥 처마를 보세요. 아름다운 곡선미뿐 아니라 바람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바꾸지 않고도 집안 전체의 통풍을 가능하게 하는 자연스러움과 과학적인 구조가 얼마나 감탄스럽습니까. 채광도 뛰어나지요. 특히 시멘트나 화학재료가 아닌 나무와 흙 등 천연재료만으로 지었기 때문에 아파트나 빌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친환경 주택입니다. 넓든 좁든 한옥에는 마당도 있고 나무도 있습니다.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삶의 공간이 바로 한옥입니다.”
하지만 그런 한옥이 최근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했다. 옛 한옥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던 ‘서촌’조차 몇 년 전부터 개발에 밀려 제 모습을 잃고 있는 게 그를 안타깝게 한다.
한국의 문화유산 한옥을 지켜 주세요
파우저 교수는 “서촌지역이 매우 낙후된 것은 분명하다”며 “이런 낙후성을 벗기 위한 개발도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개발이 모든 것을 다 부수고 높은 빌딩을 올리는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말이다.
“생활에 불편하거나 건물이 좁으면 깨끗이 수리하고 보수하거나 증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또 집을 부술 게 아니라 길을 넓히고 주변 환경을 쾌적하게 하는 게 더 중요하지요. 길게는 수백 년, 짧아도 수십 년이 된 건물을 부수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그런데 몇몇 분들은 ‘재산권을 행사하려면 재건축을 해야 한다’며 재건축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수리나 보수를 안 합니다. 그렇게 수백, 수십 년을 이어온 한옥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한옥을 잘 보존하기만 하면 이 지역이 ‘가장 한국적인 동네’ ‘가장 아름다운 동네’로 소문이 나서 재산 가치가 훨씬 더 올라갈 텐데 말이지요.”
그가 제도적 모순도 말하기 시작했다. “재개발 관련 내용에 보면 경복궁 서측, 서촌의 경우 한옥 4채가 모여 있으면 ‘보존지구’가 돼 부술 수 없습니다. 그런데 4채라는 기준이 참 이상합니다. 4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보존지구인데, 일렬로 늘어서 있거나 지그재그, 혹은 두세 채씩 떨어져 있으면 ‘보존권장지구’라고 합니다. ‘보존권장지구’의 한옥은 부숴도 된다더군요. 여기에는 20m 높이의 빌딩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제도 때문인지 서촌의 모습도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한국은 남산 한옥마을같이 화려하고 큰 한옥이 있는 동네는 보존하려 하지만 작고 아담한 곳은 보존보다 개발을 우선하는 것 같다”는 말로 서울 곳곳에서 사라지고 있는 한옥에 대한 아쉬움을 얘기했다.
그런 아쉬움을 말하던 그가 인터뷰 말미에 웃음을 보였다. “제가 서촌 체부동에 한옥 집을 짓고 있습니다.‘상량식(한옥 건축 시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후 마룻대를 올리는 의식)’을 할 예정입니다. 한번 보러 오세요. 하하하.”
“서울 지하철 2호선 개통을 현장에서 지켜봤다”는 이야기 뒤에 이어지는 서울 종로의 북촌과 서촌마을의 오래된 한옥 처마와 마루, 그리고 창호 문의 아름다움까지. 우리에게도 오래된 기억 속 서울의 과거를 마치 고향 이야기 하듯 꺼내 놓는 모습에서 그가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 날아온 외국인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로버트 파우저(50) 교수 이야기다. 2008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그는 국내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최초이자 유일한 외국인 교수다.
지난 10월 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파우저 교수를 만났다. 눈을 감고 파우저 교수의 한국말을 듣고 있으면, 그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다. 한국인보다 더 정확하게 한국말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 언어”
파우저 교수는 “언어학자로서 ‘한국말과 한글’은 누구나 연구해보고 싶은 존재”라며 “언어학적 관점에서 한글은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언어”란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어, 특히 문자인 ‘한글’은 세계 언어 발달사(史)에서 ‘유일하다’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통상의 언어들은 기원을 알기 힘들 만큼 수천 년에 걸쳐, 다른 지역 언어와 교류하며 진화하고 발달해 현재에 이르고 있지요. 그런데 한글은 이와는 전혀 다른 탄생과 진화 방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1443년 어느 날 갑자기 등장했어요. 그것도 ‘한국인을 위한 글, 언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철저한 계획에 의해 탄생한 겁니다. 세계 문자 역사에서 이런 글은 없습니다. 다른 언어들과 완전히 다른 독특함과 독창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파우저 교수는 이런 한글의 독특한 언어 진화와 함께 한글의 과학적 구조도 이야기했다. “소리인 ‘발음’과 모양인 ‘글자 형태’ 역시 다른 언어들과는 뚜렷이 구별됩니다. 통상의 언어들은 자음과 모음이 한 방향으로만 결합됩니다. 하지만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상하좌우 어떤 위치에서든 자유롭게 결합됩니다. 이것이 표현하려는 소리를 정확히 발음할 수 있게 하지요. 물론 자음과 모음을 어떤 방향으로 결합해도 글자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절묘한 미적 기능도 있습니다. 철저히 계획되고 계산된 언어인 것이지요.”
그는 “이런 내용이 언어학자들 사이에서 ‘한글을 과학적 문자로 부르게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며 “많은 언어학자에게 매우 매력적인 연구 주제가 바로 한글”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한글의 매력에 푹 빠진 많은 언어학자 중 한 명이 바로 ‘로버트 파우저’다.
일본 대학에서 한국어 가르친 미국인
파우저 교수는 1983년 서울대 언어연구소에서 1년간 한국어를 배웠다. 언어 감각이 남달랐기 때문인지 한국을 떠날 때쯤 그는 한국 신문을 불편 없이 읽을 수 있을 만큼 한국어 실력이 늘었다.
이후 미국으로 귀국했던 파우저 교수는 1986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카이스트(KAIST)와 고려대에서 영어학을 강의했다. 또 1990년대 중반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대학과 구마모토대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를 이어갔다.
“교토대에서 교수로 있던 2006년에 알고 지내던 가고시마대학의 교수 한 명이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수가 필요하다며 도움을 청해 왔어요. 일본 생활이 조금 느슨해져 있던 차에 새로운 목표가 생기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대학을 옮겼습니다.”
당시 한국어 교육 과정이 전혀 없던 가고시마대학에서 그는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과 교재를 직접 만들며 가고시마대학에 한국어 교육 과정을 정착시켰다. 그것이 그에게 있어 한국어 교수 생활의 시작이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미묘하고도 특수한 관계를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미국인이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일’ 그 자체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2008년, 그가 일본에서 보여준 한국어 교육의 성과가 한국 국어학계와 교육계에 알려지며 서울대학교가 그에게 교수직을 제안했다. 망설임 없이 한국행을 택했고, 5년이 흐른 지금까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파우저 교수는 한국어만큼이나 한국 문화에도 애정이 깊다. 특히 개발 열풍에 밀려 사라져 가는 한옥 보존을 위해 만들어진 ‘서촌주거공간연구회’의 회장을 맡고 있을 만큼 그의 한옥 사랑은 정평이 나 있다.
그가 한옥 예찬을 시작했다. “한옥 처마를 보세요. 아름다운 곡선미뿐 아니라 바람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바꾸지 않고도 집안 전체의 통풍을 가능하게 하는 자연스러움과 과학적인 구조가 얼마나 감탄스럽습니까. 채광도 뛰어나지요. 특히 시멘트나 화학재료가 아닌 나무와 흙 등 천연재료만으로 지었기 때문에 아파트나 빌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친환경 주택입니다. 넓든 좁든 한옥에는 마당도 있고 나무도 있습니다.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삶의 공간이 바로 한옥입니다.”
하지만 그런 한옥이 최근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했다. 옛 한옥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던 ‘서촌’조차 몇 년 전부터 개발에 밀려 제 모습을 잃고 있는 게 그를 안타깝게 한다.
한국의 문화유산 한옥을 지켜 주세요
파우저 교수는 “서촌지역이 매우 낙후된 것은 분명하다”며 “이런 낙후성을 벗기 위한 개발도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개발이 모든 것을 다 부수고 높은 빌딩을 올리는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말이다.
“생활에 불편하거나 건물이 좁으면 깨끗이 수리하고 보수하거나 증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또 집을 부술 게 아니라 길을 넓히고 주변 환경을 쾌적하게 하는 게 더 중요하지요. 길게는 수백 년, 짧아도 수십 년이 된 건물을 부수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그런데 몇몇 분들은 ‘재산권을 행사하려면 재건축을 해야 한다’며 재건축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수리나 보수를 안 합니다. 그렇게 수백, 수십 년을 이어온 한옥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한옥을 잘 보존하기만 하면 이 지역이 ‘가장 한국적인 동네’ ‘가장 아름다운 동네’로 소문이 나서 재산 가치가 훨씬 더 올라갈 텐데 말이지요.”
그가 제도적 모순도 말하기 시작했다. “재개발 관련 내용에 보면 경복궁 서측, 서촌의 경우 한옥 4채가 모여 있으면 ‘보존지구’가 돼 부술 수 없습니다. 그런데 4채라는 기준이 참 이상합니다. 4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보존지구인데, 일렬로 늘어서 있거나 지그재그, 혹은 두세 채씩 떨어져 있으면 ‘보존권장지구’라고 합니다. ‘보존권장지구’의 한옥은 부숴도 된다더군요. 여기에는 20m 높이의 빌딩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제도 때문인지 서촌의 모습도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한국은 남산 한옥마을같이 화려하고 큰 한옥이 있는 동네는 보존하려 하지만 작고 아담한 곳은 보존보다 개발을 우선하는 것 같다”는 말로 서울 곳곳에서 사라지고 있는 한옥에 대한 아쉬움을 얘기했다.
그런 아쉬움을 말하던 그가 인터뷰 말미에 웃음을 보였다. “제가 서촌 체부동에 한옥 집을 짓고 있습니다.‘상량식(한옥 건축 시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후 마룻대를 올리는 의식)’을 할 예정입니다. 한번 보러 오세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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