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교육 천국 네덜란드’의 저자 정현숙씨 |
이와 관련, 지난해 ‘공교육 천국 네덜란드’라는 책을 펴낸 정현숙씨를 4월 1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정현숙씨는 광주MBC 기자로 12년간 일하다가 1998년 8월 네덜란드로 유학 가는 남편을 따라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네덜란드 남부의 소도시 캄펀(Kampen)에서 살았다. 2007년 귀국할 때까지 현지에서 세 아이를 키우면서 학교도 보냈다.
그는 네덜란드 교육의 장점으로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초등학생에게 학교는 즐거운 곳이면서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재능을 살릴 수 있게 배려해준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대학 입학은 쉽고 졸업은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초등학교는 기본적으로 즐거운 곳이다. “네덜란드에 갈 당시 두 아들은 각각 일곱 살, 여섯 살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한국에서 그 흔한 보습학원 한 번 다녀본 적이 없었고 자율학습을 해본 적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며 자랐다고 한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를 하며 뒹굴거나, 친구들 생일 파티에 쫓아다니며 웃고 떠들기에 바빴습니다. 그것이 모든 네덜란드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면 공부는 언제 하나? 네덜란드 아이들이라고 해서 마냥 놀지는 못한다. 공부하는 스타일이 다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아이들에겐 더러더러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주로 책을 읽고 감상문을 정리하거나, 친구들과 그룹별로 재미 있는 주제를 정해 조사한 후 리포트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노는 데만 익숙한 아이들이 과연 숙제를 잘해낼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할 만큼 아이들은 과제를 척척 해내곤 했습니다.”
네덜란드는 초등학생들을 실컷 놀게 하지만 공부에 관한 한 엄격하다. “국어의 경우 교과서 내용이 A부터 F까지 등급이 있는데, 교사가 학생의 학업 능력을 검토해 학생의 능력에 맞는 교과서를 보게끔 합니다. 이와 같이 네덜란드 초등학교는 학생의 수준을 고려해서 수준별 교육, 과목별 이동 수업은 물론 월반을 보편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수업에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되고, 수업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공부에 흥미를 잃은 아이들은 학습의욕을 되살리게 됩니다.”
네덜란드는 공부에 재능 있는 아이와 공부 외 다른 분야에 재능이 있는 아이의 진로가 다르다. 우리처럼 모두가 인문계 상급학교에 진학하려고 목을 매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회적 낭비도 적은 편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이의 진로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여전히 진로를 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학생들이 많은 한국의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네덜란드 아이들은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초에 중·고등학교 입학시험인 시토(CITO)를 치릅니다. 학교는 시토와 학생기록부 자료를 토대로 학생, 학부모와 상의한 후에 비로소 학생이 진학하고자 하는 중·고등학교에 증빙서류를 제출합니다.”
네덜란드의 중·고등학교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6년 과정인 인문계 중고등학교로, 졸업 후 학문연구 중심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이 가능하다. 둘째는 5년 과정인 상위 보통중고등학교로, 졸업 후 상위 직업전문대로 진학하는 학생이 많다. 마지막으로 4년 과정인 중·하위 직업중고등학교는 졸업 후 중·하위 직업전문대로 진학을 많이 한다. 직업전문대를 가서 졸업해도 취업이 잘 되고 보통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세 가지 학교로 진학이 결정된 후 변동의 여지를 주는 것도 네덜란드 교육의 특징이다. “현재 학교의 학업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면 유급·낙제를 시켜 같은 학년을 다시 다니거나 더 낮은 등급의 학교로 옮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반대로 과거에 공부를 못했던 학생이라도 본인이 노력하면 얼마든지 상위 학교로 진학할 수 있습니다.”
그는 네덜란드의 대학제도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사교육의 근본 원인은 결국 대입제도에서 찾아야 합니다. 대학에 입학하기 어려우니 사교육이 생기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우리 대학이 네덜란드 대학보다 글로벌 랭킹이 높은 것도 아니고 취업이 잘되는 것도 아닙니다.”
네덜란드는 중·고등학교 졸업시험 합격증만 있으면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진학할 만큼 대학 입학이 쉽지만 졸업은 어렵다. 네덜란드 대학은 기본 3년 과정으로 6학기 안에 180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그만큼 학습량이 많아 3년 안에 졸업하는 학생은 전체의 25%밖에 안 된다. 이처럼 대학을 졸업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졸업만 하면 취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대학생 수가 적고 취업 정보 제공 시스템이 잘돼 있어서 거의 대부분 취업이 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공부를 ‘빡세게’ 시켜서 그런지 네덜란드의 대학 경쟁력은 세계 상위권에 속한다. 영국의 대학평가 기관인 QS가 발표한 2010년 세계 대학 순위에서 네덜란드의 열네 개 대학 중 무려 열두 개 대학이 상위 200위에 속했다.
그는 “네덜란드에는 학원·과외 등 사교육 기관이 아예 없으며, 사교육비 때문에 걱정하는 학부모 또한 없다”며 “부모와 아이 그 누구도 미래를 불안해하거나 염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절대적으로 신뢰받는 학교교육이 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와 우리나라는 여건이 달라서 네덜란드 공교육을 그대로 도입할 수는 없지만 우리 환경에 맞게 적용하면 사교육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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