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8일 월요일

워킹맘, 목동에서 살아남기… 명문대는 누가 가나?

2014-12-0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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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겨울 입시가 끝나면, 이제 곧 어떤 집에선 웃음보가 터지고 어떤 집에선 눈물과 통곡이 터질 것이다. 아직 머나먼 일이라 선배 맘들이 겪는 이야기를 그저 귀동냥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벌써 긴장되고 떨린다. TV나 방송이 아닌, 엄마들 사이에서 듣는 이야기는 진짜 가까이에서 접하는 입시의 모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궁금해졌다. 과연 목동에만 들어오면 명문대에 가는 걸까.


“집이 어디세요?” 하고 물을 때, “목동인데요”라고 말하면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이제 대한민국에서는 자신이 사는 동네가 마치 그 사람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이상한 풍토가 생겨서일지도 모른다. 집이 목동이라고 할 때의 반응은 딱 두 가지다. 교육열 높은 곳에 사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나 호기심이 하나고, 또 하나는 약간의 질투나 무시가 섞인 비아냥거림이다.

대학 동창생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동창 모임에 나갔다가 여자 동기생들끼리 둘러앉았다. 목동에 살고 있는 친구와 나, 우리 두 명은 민망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좀 들었다. 아이들 공부를 어떻게 시키는지에 대한 고민 토로를 하다가, 내가 우리 똘똘이를 ‘방과 후 영어’에 보낸다고 하니까 “이야~ 목동은 ‘방과 후 영어’도 수준이 엄청날 거 아냐”라고 하는 식이었다. 그 어떤 대화를 하려고 해도 “얘는 목동이니까”로 귀결되었다. ‘목동’이라고 하면, 교육열에 올~인하는 광기 어린 엄마들이 모여 있는 상징이 되어버린 것일까. 우리 사회가 꽤 전체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인 성향이 있다는 건 알지만, 동창생 모임에서까지 그런 걸 확인하고 나니 좀 씁쓸했다.

하지만 막상 집으로 돌아오는 마을버스 안에서 목동에 사는 동창생과 나는 “과연 우리가 목동에 들어온 건 잘한 일일까”라는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얘,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인근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임신을 했대. 근데 아이 아빠가 2명이라서 누구인지 모른대. 이를 어쩌니?”
“얼마 전에는 재수생이 인근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대. 아침에 벌어진 일이라 워낙 재빨리 수습을 해서 그렇지 아는 사람은 다 안대. 이를 어쩌니?” “내가 아는 엄마는 아예 애를 데리고 제주도에 있는 국제학교로 갔어. 외국에 가서 기러기 아빠로 만드는 것보다 제주 국제학교로 가면 주말부부만 하면 되니까. 학비만 해도 몇천만원인데, 돈 있는 사람들이 그게 뭐 대수겠니?”

고만고만한 월급쟁이 중산층인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헤어졌다.

허름한 집, 불편한 주차에도 불구하고 ‘애들 교육 때문에’ 목동 찾아 사실 많은 이들이 목동에 들어오는 건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는 일념을 품고서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목동에선 아마 하루 몇 건씩 이삿짐 차량이 들락날락하고 있을 것이다. 이사를 하려고 목동 집을 구경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집은 외관만 낡은 게 아니라, 내부까지 허름하기 짝이 없다. 수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집은 한마디로 귀신이 나올 법한, 혹은 ‘이런 곳에서도 살 수 있을까’ 싶은 집도 있다. 한번은 방 한 개, 거실 한 개짜리 20평 아파트를 둘러보는데, 그 집 거실에 독서실에서 쓸 법한 책장 3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방 안에 있는 가구라고는 5단 옷장뿐이었다. 중고생 3명과 부모, 이렇게 다섯 명이 산다고 했다. 그 집 전셋값이 2억1천만원이었다. 허걱~. ‘이 돈이면 목동 밖에서 30평대 넓은 새 집에서 살 수 있는데…’ 싶은 생각과 함께, 그저 그 부모의 교육열이 놀라울 뿐이었다. 물론 전체 리모델링을 해서 새 집 부럽지 않은 40~50평대의 집도 많지만, 그런 집을 자가 소유하는 경우는 꽤 드물다.

이뿐인가. 목동의 아파트에는 지하 주차장이 없다. 가로로 3중 주차해놓는 일은 다반사다. 눈이 쌓인 추운 겨울, 꽁꽁 얼어서 미끄러운 땅바닥에서 차량 몇 대를 밀어낸 후에야 비로소 내 차를 빼낼 수 있는 일은, 아마 이런 낡은 아파트가 아니면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 두 아이들은 겨울에 외출할 때면 장갑을 끼고 엄마와 함께 일렬 주차된 차량을 밀어내는 데 선수가 됐다. 하지만 처음 목동 아파트의 주차 지옥을 경험한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아?”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러게. 왜 이런 데서 살지?’

아마 백발백중 결론은 ‘자식교육’ 때문일 것이다. 언제든지 걸어서 갈 수 있는 학원가가 밀집해 있고, 교육열이 높은 학부모 사이에서 경쟁을 하다 보면 자연히 명문대에 갈 확률이 높을 것이고, 그나마 다른 지역보다 유흥가가 적어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점 등이 목동에 사는 이유로 손꼽힌다. 하지만 목동에서 살아보니, 무턱대고 목동으로 들어왔다가는 애도 망치고 부모도 피폐해질 확률이 매우 높다는 걸 알게 됐다. 한마디로 장거리 달리기를 할 각오를 하고, 아이와 함께 보조를 맞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목동에 사는 내 주변 지인 중 서울대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를 딱 한 명 만나봤다. 그 아이의 아빠는 목동에서도 유명한 S학원 원장님이다. 당연히 학원 정보를 빤히 알고, 아이에 대한 코칭이 제대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또 한 명의 학부모는 자녀를 재수시켜 연세대에 보낸 학부모다. “아이를 어떻게 공부시키셨어요?” 하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입학 때까지의 스토리를 모두 들어보았다.

“원래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등촌동에 살았어. 영어학원도 안 다니고 학습지 영어를 오랫동안 했어. 거기서 우리 애가 공부를 좀 잘했어. 공부를 잘하면 주목을 받게 되고, 칭찬과 격려를 받으면 더 열심히 잘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생기잖아. 자존감이 매우 높은 상태였어.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목동에 오니까, 시너지가 나더라고. 혼자서 잘하는 상태에서 중학교 때 특목고 대비학원을 다니니까 성적이 쑥쑥 올랐지. 그래도 우리 애는 학원을 꽤 늦게 가서 한 1년 남짓밖에 안 다녔어. 특목고에 들어가서 좀 힘들었지. 보통 애들은 특목고 가기 전에 학원에서 선행으로 고 1~2학년까지 다 마치고 들어오는데 우리 애는 선행 같은 건 안 했으니까. 고등학교 1학년 때 꽤 힘들어했는데 그래도 자기가 하고자 하는 힘이 있으니까 어려움을 극복하더라고. 1년 재수할 때 힘들었지만, 그래도 원하는 곳에 갔으니까 만족해.”

하지만 이 학부모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바로 둘째 아이였다. 목동에서 학령기를 시작한 둘째 아이는 첫째에 비해 자존감이 낮다고 한다. 엄마가 아무리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잘할거야”라고 다독여도, 워낙 일찍부터 똑 부러지게 잘하는 아이들이 많은 틈에서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스스로 주눅이 든다는 것이다. 보다 못해 초등학교 5학년 때 1년 동안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보냈는데, 다녀온 후 오히려 더 골치 아프다고 했다. 공부보다 더 크고 좋은 세상을 많이 경험한 탓인지, 둘째 아이는 공부에 도통 관심이 없다고 한다. 이것이 부모의 힘든 점이다. 첫째 아이의 양육이나 교육 사례를 둘째 아이한테 그대로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수를 해서 이화여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아이의 학부모도 있었다. “축하한다”고 건넨 인사말에 그 학부모는 “내가 했나 뭐. 지가 했지”라고 했다.

“우리 애가 뒤늦게 철이 들더라고. 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안 하더니, 재수해서 자기가 원하지 않는 학교에 가더니 그제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봐. 여름방학 때 나한테 부탁하더라고. ‘엄마. 나한테 딱 반년만 투자해주세요. 저 반수 할게요’ 라고. 그래서 재수학원 끊어서 독하게 공부하더니 이렇게 덜커덕 붙었어. 참 애들마다 다른 것 같아. 빠른 애, 늦된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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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에서 공부한다고 모두 명문대 가는 건 아냐
하지만 이렇게 드러내놓고 주변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축하를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수능이 끝나도, 대입 결과가 발표되어도 결과를 서로 묻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는다. 고3 수험생 학부모가 먼저 말하기 전에 물어보는 것은 실례 중 실례다. 서로 친한 엄마들 사이에서 그저 입소문으로 “어디 갔다더라”라고 하거나, “인 서울(In Seoul;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는 것) 못 했다더라”라는 게 퍼질 뿐이다. 얼마 전, 친한 엄마 중 한 명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부모가 모두 서울대 출신인 사람들도 목동에 꽤 많거든. 근데 자식들 다 공부 잘하는 경우 많지 않아. 내가 아는 한 서울대 출신 엄마도 애가 수도권도 아닌, 대전에 있는 M대학 갔어. 사춘기 때 부모와 사이가 틀어지거나,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리면 서울대 아니라 하버드대 나온 부모도 아무 소용 없어.”

정말 그랬다. 똘똘이 친구 엄마 중에도 첫째 아이를 서울이 아닌,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보낸 경우도 제법 있다. 부모의 직업이 교수, 사업가 등이다. 지난해 목동에 사는 한 친구 엄마의 아들은 수능 시험에서 4개를 틀렸는데,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떨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초등생 엄마들은 항상 묻는다.
“도대체 명문대에 가는 애들은 누구예요?”라고.   

아이가 목동의 일반고 2학년인 한 엄마는 나에게 “현실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면서 일반고의 입시 현황을 들려줬다.

“우리 아이 학교의 경우, 반에서 5등 안에 들어야 숙명여대 정도까지 갈 수 있어. 반에서 20등 안에 못 들면 서울권 대학이나 수도권 대학도 힘들고. 초등학교 때 수학학원, 영어학원 다 보내면서 내가 들인 사교육비가 얼마인데…. 이런 거 생각하면 속이 터져서 애한테 괜히 신경질을 부린다니까.”

다른 엄마가 또 다른 이야기를 덧붙였다.
“엄마들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명문대 졸업하고도 백수로 있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엄마들 모임이 고등학교까지만 이어지니까 그 이후에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음알음 아는 사람만 알잖아. 소문이 안 나니까 잘 모르지. 하지만 명문대 들어가는 게 문제가 아니야. 취업이 더 문제야, 더 문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혼란스럽다. 그리고 한편으로 왜 목동이나 강남 등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청소년 정신 건강이 나쁜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목동에서도 명문대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걸 아는 순간 ‘뿌리’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자녀가 명문대에 갈 확률이 높다는 전제를 하고, 그동안 수많은 불편을 참아온 학부모들이 아니던가. 이렇게 되면 보통의 학부모들은 보상 심리가 무척 강하게 작용한다. 흔한 레퍼토리가 또 나오는 것이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하는 줄 아느냐….”
이렇게 시작되는 신세 한탄이다. 이게 주기적으로 반복되다 보면,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강한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경쟁이 당연한 듯 느껴지는 환경에서 살다 보면, 계속 경쟁의 강도가 세지고 있음에도 본인은 그걸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학교교육과 영어학원, 수학학원으로도 충분히 지쳐 있는 아이에게 국어논술학원, 영어독서학원, 주말 체험학습학원 등등 각종 좋다는 학원을 쉬는 시간 틈틈이 집어넣는 게 대표적 사례다. 이것도 하면 좋고, 저것도 하면 좋기 때문에 아이를 위해서 자꾸만 욕심이 늘어갈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수밖에 없는 첫째 아이 학부모들과 모임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이런 경쟁의 강도가 높아진다.

내 경우 친언니가 3명이나 있어서 무려 6명의 조카들이 어떻게 크는지 지켜볼 만한 벤치마킹 사례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다. 똘똘이에 대한 욕심을 부리려고 할 때마다 언니들이 “다 소용없다”거나 “천천히 해도 늦지 않다”며 제지했기 때문이다. 언니들이 말릴 때마다 ‘왜 못 하게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불만을 가질 때도 가끔 있었지만, 지나고 나면 언니들 말이 맞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교육에 관한 한, 엄마가 보상 심리를 갖게 되면 모든 일을 그르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너한테 들인 학원비가 얼마인데”, “우리가 뭘 바라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이런 식의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그 아이에게 엄청난 마음의 부담과 짐을 지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와 부담을 이기지 못하면 아이는 당연히 삐뚤어질 수밖에 없다.

며칠 전, 한 달 후에 목동으로 이사 온다는 지인을 만났다.
“목동으로 왜 오세요?” 나는 그 지인에게 이런저런 목동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지만 기대에 잔뜩 부푼 지인에게 그 이야기가 잘 먹혔는지 어땠는지 모르겠다. 반면, 목동을 떠나려고 준비하는 지인도 있다. “어차피 목동이든 아니든 상위 1%만 명문대 진학이라는 결과를 볼 수 있다면, 그 낮은 확률에 목숨 걸고 아이를 혹사시키기보다는 좀 더 편안하게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나는 아직 목동을 떠나지 못한다. 아니, 떠나지 않는다. 똘똘이를 전학시켜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는 그 무모한 도전을 하고 싶지도 않거니와, 목동에서도 아이를 건강하게 잘 키울 수 있다는 배짱을 아직은 갖고 있다. 하지만 매년 쉬워졌다 어려워졌다 변별력을 알 수 없는 수능 시험 결과 하나에, 전국의 학부모와 아이들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이런 입시전쟁은 끝내고 싶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왜 우리의 입시와 교육 제도는 수십 년째 그대로일까. 경쟁은 있지만, 경쟁이 모든 개성을 파괴시키지 않는 교육. 아이들 하나하나의 재능에 주목하고 그들이 향후 50년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되는 교육.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즐거움과 배움의 즐거움, 친구와 어울려 함께 지내는 즐거움을 느끼는 교육. 나는 미래의 교육이 그런 교육이었으면 좋겠다. 

여성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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