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수학능력시험이 끝나면 난이도와 관련해 뒷말이 많아진다.
수능 시험이 어려우면 사교육 확대에 대한 우려가 커지지만 막상 지나치게 쉬울 경우 변별력이 떨어져 입시 혼란이 커진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0년 11월 15일에 실시한 2001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다. 이 수능은 역대급 ‘물수능’으로 알려져 있다. 수능 만점자가 무려 66명이나
나왔는데 이는 현재까지 가장 많은 만점자 기록이다.
2001학년도 수능에서도 특히 제2외국어의 난이도는 적지 않은
논란의 대상이었다. 제2외국어 영역이 그해부터 선택과목으로 처음 출제됐는데 일부 문제들은 해당 언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쉽게 정답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쉬웠다. 수능에 대비해 제2외국어를 공부한 학생들을 허무하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수능에 앞서 교육과정평가원에서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될 수준’, ‘상위 50%가 100점 만점에 75점 이상 받을 수 있는 수준’이라며 쉬울 것이라고 거듭 예고했지만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어느 정도로 쉬웠는지는 한 문제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문제는 중국어영역 17번 문항으로 다.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초등학생도 ‘一’, ‘二’, ‘三’을 안다면 정답 2번을 쉽게 맞출 수 있다.
당시 제2외국어 영역의 문항당 배점은 난이도에 따라
1점(12문항), 1.5점(16문항), 2점(2문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 문제는 1점짜리도 아니고 1.5점짜리였다.
이때 제2외국어 영역은 독일어, 프랑스어, 에스파냐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가 있었는데 중국어는 한 두글자의 한자만으로 전체 맥락을 유추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어 유난히 쉽게 느껴졌던 것이다.
시계 문제는 독일어, 에스파냐어 등 다른 제2외국어
시험에서도 등장했다. 하지만 다른 제2외국어는 최소한 해당 교과목을 공부했어야 맞출 수 있는 수준이었다.
배점이 1점인 ‘쉬운’ 중국어 시험 문제는 어땠을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2번 문항의 정답은 3번, 3번 문항은 5번이다. 2번
문제는 ‘다를 타(他)’, 3번 문제는 ‘옳을 시(是)’라는 한자를 읽을 줄 안다면 풀 수 있다. 크게 어려운 한자어도 아니다. 한자능력검정시험
기준으로 他는 5급, 是는 4급II에 해당한다.
지문이 들어가서 조금 어려워 보이긴 하지만 한자 몇 글자로
정답을 집어낼 수 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11번 문제의 경우도 ‘排球(배구)’라는 한자어를 안다면 틀릴 수가 없다. 적어도 ‘구(球)’라는 한
글자만 알아도 풀 수 있다. 12번도 지문의 내용은 파악하기 힘들지만 ‘제의를 받아들이는 말’이라는 힌트로 1번 ‘좋을 호(好)’가 정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어가 지나치게 쉬워서 크게 주목 받지 못했지만 다른
제2외국어 과목들도 난이도가 낮았던 것은 사실이다.
독일어 25번 문제는 삽화 속의 두 사람이 ‘이름이
뭐냐’, ‘내 이름은 Peter’라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굳이 대화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더라도 Peter가 사람 이름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에스파냐어 18번 문제도 마찬가지다. 마드리드(Madrid), 바르셀로나(Barcelona) 같은 단어를 보면 브라질이나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멕시코 같은 오답을 적기가 더 힘들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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