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운동피질에 전극 심어 전기신호를 컴퓨터로 해석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의대 연구팀이 전신마비 환자를 위해 개발한 뇌 임플란트. 세계 최초의 가정용 뇌
임플란트다. 환자는 생각만으로 태블릿PC의 커서를 움직여 단어를 입력할 수 있다. - NEJM 제공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의대 닉 램지 교수 연구진. 이들은 지난해 10월 더브라위너 씨의 뇌 운동피질 위에 전극을 삽입하는 ‘뇌 임플란트’ 수술을 시행했다. 뇌 속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신호를 측정하기 위해서다. 이 신호는 가슴에 삽입한 무선 송수신기를 통해 외부의 태블릿PC로 전송된다.
수술 후 197일째 되는 날. 더브라위너 씨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신의 뇌파로 태블릿PC에 영문 글자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숨조차 쉬기 힘든 전신마비 환자지만 1분에 2, 3자 이상을 자유롭게 입력해 외부와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의학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오브메디신(NEJM)’ 12일자에 발표했다.
●머릿속에 전극 심는 ‘뇌 임플란트’ 기술
인간의 두개골을 열고 뇌에 전극을 이식하는 기술. 소위 뇌 임플란트 기술이 최근 크게 발전하고 있다. 뇌 속에서 발생하는 생체 전기신호를 컴퓨터로 해석하는 기술. 일명 뇌-컴퓨터 연결(BCI) 기술 중 한 종류다.
BCI 기술은 뇌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촬영하는 방법, 뇌파측정(EEG) 장치를 이용하는 방법,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는 근적외선을 이용해 뇌 혈류를 읽어내는 방법 등 다양하다. 하지만 뇌에 전극을 연결해 생체전기를 직접 읽어 낼 수 있는 뇌 임플란트 기술이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꼽힌다.
뇌 임플란트가 사람에게 처음 시도된 것은 1998년이다. 미국 에머리대 필립 케네디 교수 연구팀은 전신마비 환자의 머리에 전극을 삽입해 간단한 단어를 입력하는 데 성공했다.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한 임상시험이었기 때문에 6개월 뒤 뇌에 이식했던 전극을 제거했다. 케네디 교수는 이 공로로 뇌 임플란트의 창시자로 불린다.
2000년대 들어서는 뇌에서 나온 신호를 해석해 의수나 의족 등을 움직이는 연구도 진행됐다. 2008년 미국 피츠버그대 연구팀은 원숭이의 뇌 운동피질에 전극을 심어 외부의 로봇 팔을 무선으로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2012년에는 이 기술을 인간에게 적용한 실험도 나왔다. 미국 브라운대 연구팀이 전신마비 환자 두 사람에게 뇌 임플란트를 이식해 로봇 팔을 움직여 보였다. 연구팀은 복잡한 관절의 움직임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100개에 이르는 가느다란 전극을 이식해 신호를 측정했다.
●대중적 치료 가능할까… 인공지능 이용해 정밀도 높여
뇌 임플란트 수술이 대중화되려면 사람의 생각을 읽어내기 위해 뇌 어떤 부위에, 어떤 형태의 전극을 삽입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측정한 뇌 전기신호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정확하게 해석해 내는 기술도 필요하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이런 정확도를 높인 뇌 임플란트도 등장하고 있다.
미국 파인스타인의학연구소 연구팀은 사지마비 환자의 오른팔 신경에 완두콩만 한 전극을 삽입한 뒤, 뇌 임플란트를 통해 얻은 신호를 전달해 팔을 실제로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이 때 뇌 운동피질에서 발생한 신호를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인공지능 기술인 ‘머신러닝’을 이용해 뇌 신호를 컴퓨터가 학습하고 해석하게 만들었다.
뇌수술에 따른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2015년 4월에는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연구진이 수술 없이 주사를 맞듯 혈관을 통해 전극을 삽입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현재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이성환 고려대 뇌공학과 교수는 “뇌 임플란트 기술을 포함해 다양한 BCI 기술이 있지만 주로 사지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돼 시장이 크지 않았다”며 “인공청각, 인공시각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면 보다 연구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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