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화학상은 세상에서 가장 작고 아름다운 '분자기계'(molecular machine)를 합성한 소바주(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스토다트(미국 노스웨스턴대)·페링하(네덜란드 흐로닝언대)에게 주어졌다. 분자기계는 2개 이상의 고전적인 분자들이 상대적으로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대표적인 초분자(supramolecule)다. 나노미터 크기의 분자기계가 가진 실용적 가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렇다고 분자기계의 예술적 가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기계는 부품의 피스톤 왕복이나 바퀴의 회전과 같은 반복적인 상대운동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유용한 '일'로 변환시켜주는 장치를 말한다. 1784년 증기기관을 이용한 기계화가 인류 문명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규모의 일을 해내는 초대형 기계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할 수 없는 정교한 일을 해내는 초소형 기계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전자산업이 발달하면서 등장한 미세전자기계장치(MEMS)도 일상화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공학기술로는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MEMS 한계를 넘어서기 쉽지 않다. 0.1나노미터 크기의 원자를 자유자재로 조작하는 화학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자기계는 원자 수준의 초소형 기계를 향한 인류의 궁극적인 꿈이 담긴 성과다.
분자기계의 핵심은 분자의 내부에서 자유로운 움직임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계적 결합'(mechanical bond)이다. 1983년 소바주가 처음 합성했던 '카테네인'(catenane)은 기계적 결합으로 맞물린 도넛 모양의 탄화수소 고리들이 서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된 최초의 분자기계다. 카테네인은 2개 이상의 원자들이 전자를 공유하는 공유결합 분자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독특한 위상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1991년 스토다트가 합성한 로탁세인(rotaxane)도 피스톤의 왕복운동을 흉내 내도록 만든 분자기계의 원형이다. 역시 탄화수소로 만들어진 도넛 모양의 고리가 막대 모양의 분자로 만들어진 축을 따라 자유롭게 움직인다. 고리 분자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는 화학적 기술도 개발했다. 로탁세인을 이용하면 나노미터 크기의 초소형 분자 스위치나 승강기도 만들 수 있고, 수축·신장이 자유로운 인공 분자근육도 만들 수 있다.
페링하가 1999년에 합성한 '분자 모터'는 분자기계의 결정판이다. 기계적 결합으로 맞물려 있는 고리를 한쪽 방향으로만 회전시키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분자의 일부가 화학적 에너지로 회전운동을 하는 분자 수준의 진짜 모터가 만들어진 것이다. 분자 모터 4개를 연결하면 분자 수준의 4륜구동 자동차가 된다. 실제로 액정 속에 넣은 분자 모터를 이용하면 28마이크로미터의 유리관을 회전시키는 일도 가능하다.
화학은 물질의 정체를 밝혀내고, 합성과 변환을 연구하는 과학이다. 화학적 합성과 변환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실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화학의 핵심 과제다.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화려하게 만들어준 염료·의약품·섬유·고무·고분자(폴리머)·합금이 모두 유용성을 추구하는 화학의 산물이다. 생명의 신비도 DNA·RNA·단백질과 같은 분자를 이용한 화학의 언어로 표현된다.
그런데 분자 세계의 경이는 유용성·기능성·신비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분자의 세계에는 대칭성·단순성·복잡성·함축성을 비롯한 미학적 형식미의 모든 요소가 담겨있다. 그래서 198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화학의 시인' 로알드 호프만은 화학을 창조적 예술이라고 부른다. 기계분자를 비롯한 초분자 덕분에 화학의 예술적 영역이 크게 확장되고 있다. 분자 수준에서 뇌신(雷神)의 철퇴, 보로메오 고리, 솔로몬의 매듭도 만들 수 있다. 화학자의 풍부한 예술적 상상력이 담긴 분자 예술의 세계도 무한히 넓고 깊다.
무지한 케모포비아(화학혐오증)에 의해 화학의 진정한 실용적·예술적 가치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폄하되는 안타까운 현실은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디지털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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