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0일 일요일

근시와 노안에 대한 고찰

보노보도 노안은 못 피해!

안경을 맞춰야 할 것이다.  


근시는 대부분 10대 시절 안구가 앞뒤로 약간 길쭉하게 변형돼 초점거리보다 뒤에 망막이 놓이면서 나타난다(위). 이때 지나친 실내생활로 빛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게 주원인으로 여겨진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근시가 만연해있다. 아래는 연도별로 20세에 근시일 비율을 나타내는 그래프로 우리나라도 급격히 증가해 최근 80%에 육박한다. - 네이처 제공
근시는 대부분 10대 시절 안구가 앞뒤로 약간 길쭉하게 변형돼 초점거리보다 뒤에 망막이 놓이면서 나타난다(위). 이때 지나친 실내생활로 빛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게 주원인으로 여겨진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근시가 만연해있다. 아래는 연도별로 20세에 근시일 비율을 나타내는 그래프로 우리나라도 급격히 증가해 최근 80%에 육박한다. - 네이처 제공
근시는 질병, 노안은 노화현상

광학의 관점에서 근시는 초점거리가 망막에 못 미쳐 생긴 증상이고 노안은 망막을 지나쳐 생긴 증상이지만 둘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먼저 근시는 질환이다. 안경이라는 교정기구가 너무 완벽해 인식을 못하지만 만일 야생동물이 필자 정도의 근시라면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해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근시 역시 비만이나 당뇨병과 마찬가지로 지구촌에서 환자 수가 급격히 늘고 있는 21세기 ‘역병’이다. 특히 동아시아가 심한데 요즘 젊은이는 10대를 거치며 70~80%가 근시가 된다. 근시는 유전적 요인도 있지만 (근시유전자도 발견됐다) 환경요인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

과거에는 잘못된 독서 자세 등이 원인이라고 생각됐지만 최근 연구결과 10대 때 빛을 충분히 쬐지 못할 경우 안구가 정상적인 모양을 잡지 못해 근시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안구가 앞뒤로 길쭉해져 망막의 위치가 초점거리보다 멀어지는 것이다. 교실과 학원을 전전하며 10대 시절을 보내는 동아시아에서 근시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다. 실제 야외학습을 늘릴 경우 근시 발생률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린 근시를 별 것 아니라고 여기지만 실제 통계조사를 해보면 근시는 다수의 실명 관련 질환, 즉 백내장, 녹내장, 망막 박리, 황반변증 발병의 주된 위험요인으로 나타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굴절 이상을 인류가 시급히 해결해야할 다섯 가지 질환 가운데 하나로 지정한 이유다.


눈은 먼 거리를 볼 때 모양체근이 이완돼 인대가 팽팽해지며 수정체를 당겨 납작해진다. 반면 가까운 거리를 볼 때는 모양체근이 수축돼 인대가 느슨해지며 수정체가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 두꺼워진다. 나이가 들면 수정체 탄력이 떨어져 인대가 당기지 않아도 예전만큼 두꺼워지지 못해 가까운 곳의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 - 하버드대 제공
눈은 먼 거리를 볼 때 모양체근이 이완돼 인대가 팽팽해지며 수정체를 당겨 납작해진다. 반면 가까운 거리를 볼 때는 모양체근이 수축돼 인대가 느슨해지며 수정체가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 두꺼워진다. 나이가 들면 수정체 탄력이 떨어져 인대가 당기지 않아도 예전만큼 두꺼워지지 못해 가까운 곳의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 - 하버드대 제공
반면 노안은 말 그대로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시각장애로 가까운 거리의 대상을 선명하게 볼 수 없는 상태다. 그리고 안구가 아니라 수정체의 문제다. 무한대의 공간을 안구 내벽의 망막이라는 휘어진 2차원 공간에 재현하기 위해 수정체는 곡률을 조절할 수 있는 볼록렌즈로 진화했다.

즉 수정체 둘레에는 모양체근이라는 근육이 있고 둘 사이를 인대가 연결하고 있다. 먼 거리를 볼 때는 모양체근이 이완돼 인대가 당겨지며 수정체가 얇아지고, 가까운 거리를 볼 때는 모양체근이 수축돼 인대가 느슨해지며 수정체가 원래의 형태가 된다. 즉 두꺼워져 곡률이 커진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누워 쉬고 있는 (모양체근 이완) 그물침대는 줄 (인대)이 팽팽해져 묶여 있는 나뭇가지가 아래로 처진다 (얇은 수정체). 사람이 일어나 발을 땅에 디디면 (모양체근 수축) 침대 줄이 느슨해져 나뭇가지가 원래 각도로 돌아간다 (두꺼운 수정체).

동물은 주로 먼 곳을 보므로 모양체근이 이완된 상태에서, 즉 근육이 일을 하지 않고도 수정체가 힘을 받아 납작해져 곡률이 먼 거리에 맞춰지게 눈이 디자인된 건 절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다. 이런 자연의 생활을 벗어나 요즘 사람들은 가까운 거리에 초점을 맞추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서 (특히 스마트폰 등장 이후) 모양체근이 혹사당해 눈의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수정체의 탄력이 떨어지며 모양체근이 수축해 인대가 느슨해져도 원래 상태대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그물침대를 매단 나뭇가지가 사람이 없을 때도 원래 각도로 회복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실제 인대가 당기는 힘을 받지 않을 때의 수정체 지름이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커진다. 그 결과 가까운 대상의 초점을 맞출 수 없게 된다.

근시가 환경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 증상인 것과는 달리 노안은 나이가 들면서 언젠가는 겪게 되는 증상임을 보여주는 정량적인 연구결과가 1922년 이미 나왔다. 즉 나이대별로 ‘최근접 초점 거리 (nearest focus distance)’를 측정했는데, 이를 보면 20대부터 거리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40대 들어서는 급격히 늘어난다. 즉 어릴 때는 8cm 정도이지만 40대 중반에서는 20cm 정도 된다. 물론 개인차가 있어서 이때 이미 40cm를 넘어서는, 즉 책이나 신문을 읽는데 불편함을 느끼는 노안 증세가 오는 사람도 있다. 한편 노안의 진행은 남녀 차이가 없었다.

독자들도 자신의 최근접 초점 거리를 알고 싶으면 책을 들어 평소 읽는 거리에서 서서히 눈 쪽으로 가져와 글자가 흐릿해지기 직전의 거리를 재면 된다. 필자는 도수를 낮춘 안경의 도움을 받고 있음에도 20cm 정도다.

그런데 노안은 왜 이렇게 일찌감치 나타나는 것일까. 인간의 수명을 고려한다면 수정체가 한 20년은 더 버텨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노안이 인간이 자손을 가장 많이 보기 위한 자연선택 과정에서 변수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자손의 숫자는 ‘생존율’과 ‘생식값’의 곱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노안으로 생존율이 지장을 받는 시점 (아마도 50대 이후)에서는 이미 생식값 (생식능력)이 꽤 낮은 상태다. 게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서로 보살피기 때문에 노안이 심해져도 치명적인 증상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일본 교토대의 연구자들은 야생 보노보의 털 고르기 장면을 분석해 나이가 듦에 따라 털 고르기 거리가 늘어난다는, 즉 노안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운데 27살짜리 보노보의 털 고르기 거리(빨간 양화살표)보다 오른쪽 45살짜리 보노보의 털 고르기 거리가 훨씬 멀다. -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최근 일본 교토대의 연구자들은 야생 보노보의 털 고르기 장면을 분석해 나이가 듦에 따라 털 고르기 거리가 늘어난다는, 즉 노안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운데 27살짜리 보노보의 털 고르기 거리(빨간 양화살표)보다 오른쪽 45살짜리 보노보의 털 고르기 거리가 훨씬 멀다. -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보노보도 40대 되면 눈이 침침해져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11월 7일자에는 사람에게 노안이 오는 시기가 유인원 공통조상이후 별로 변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일본 쿄토대 영장류연구소의 연구자들은 콩고민주공화국 왐바 지역에 사는 야생 보노보 무리를 관찰한 결과 사람과 비슷한 시기에 노안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학교 박사과정인 류흥진 씨가 논문의 제1저자이자 교신저자다.)

연구자들은 보노보의 털 고르기 장면을 촬영해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 털 고르기는 유인원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다른 개체의 털에 붙어 있는 비듬이나 벼룩을 집어내는 기능적 측면뿐 아니라 신체 접촉을 통한 정서적 유대를 다지는 역할을 한다. 털 고르기를 제대로 하려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보노보는 눈을 최대한 가까이 대고 작업을 한다. 즉 보노보 눈과 손질하고 있는 상대 털의 거리를 최근접 초점 거리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나이에 따른 보노보의 털 고르기 거리 데이터(빨간 점)는 사람의 최근접 초점거리 그래프(짙은 파란선은 평균, 옅은 파란선은 각각 최댓값 최솟값)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 즉 둘의 공통조상이 갈라진 이후 사람에서 노안 진행 속도의 진화는 없었음을 시사하는 결과다. -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나이에 따른 보노보의 털 고르기 거리 데이터(빨간 점)는 사람의 최근접 초점거리 그래프(짙은 파란선은 평균, 옅은 파란선은 각각 최댓값 최솟값)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 즉 둘의 공통조상이 갈라진 이후 사람에서 노안 진행 속도의 진화는 없었음을 시사하는 결과다. -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11살에서 45살에 이르는 보노보 14마리의 털 고르기 장면을 분석한 결과 눈이 떨어진 거리가 나이가 들수록 급격히 늘어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즉 14마리 가운데 40살이 넘은 다섯 마리 모두 노안 증세를 보였다. 40대 보노보 가운데 세 마리는 수컷이었는데, 사람과 마찬가지로 노안 진행 속도에서 암컷과 차이는 없었다.

한편 41살인 키(Ki)라는 보노보가 6년 전인 35살 때 털 고르기를 하는 비디오가 남아 있었다. 당시 털 고르기 거리를 잰 결과 12cm로 6년이 지난 뒤의 17cm보다 5cm 더 가까웠다. 즉 6년 사이에 노안이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데이터다. 

한편 이 데이터를 보노보의 최근접 초점 거리로 보고 분석해보면, 사람의 나이 (x축)에 따른 최근접 초점 거리 (y축)를 나타낸 그래프 범위 안에 들어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적어도 사람과 보노보의 공통조상이 갈라진 이후 사람에게 노안을 늦추는 진화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노안이야 별 수 없다지만, 청소년 시절 쉬는 시간이라도 교실 밖에 나가 밝은 빛을 쬐는 습관을 들였다면 지금처럼 심한 근시가 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은 든다.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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