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8일 화요일

데카르트의 악몽, 아인슈타인의 해몽



이야기 속의 기사는 다섯째 날의 대화에서 8배 멀리 떨어진 등불이 64분의 1로 어두워지는 것이 만유인력(dall’attrazione universale)이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서 약해지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아마도 알가로티는 여성 독자를 위해서는 암울함, 심각함의 뜻도 갖고 있는 중력(gravitatis)보다는 사랑, 매력의 뜻을 포함하는 인력(attrazione)이 더 어울린다고 판단했으리라.

하지만 지나친 배려는 프랑스 사교계의 명사이자 뉴턴의 저서 ‘프린키피아’의 불어 번역자인 샤틀레 부인의 분노를 샀다. 기사의 설명을 들은 후작부인이 “8일간 보지 못한 애인에 대한 애정이 64분의 1로 줄어드는 것과 같군요”라고 감탄하는 대목 때문이었다. 샤틀레가 보기에 이런 설명은 여성을 사랑과 연애에 결부시키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로 비하한 것이었다.

그래도 알가로티의 책은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돼서 불어와 영어로도 번역되었고, 18세기 말까지 일반 독서대중이 뉴턴의 주장을 알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단행본이 되었다. 심지어 영국에서도 뉴턴의 제자들이 쓴 해설서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 그렇게 만유인력은 사람들의 입에 착 달라붙는 표현으로 널리 퍼졌다.


그러나 정작 뉴턴이 1687년에 펴낸 ‘프린키피아’에는 목차 어디를 보아도 만유인력을 일컫는 구절을 찾을 수 없다. 총 500쪽이 넘는 프린키피아 1판의 본문 411쪽에서야 만유인력과 비슷한 구절이 처음 나온다. 프린키피아의 제3권 ‘우주의 구성에 대하여’의 명제 7번 겸 정리 7번이다. 이 부분을 직역하면 “무거움은 물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그 각각의 크기는 물체의 양에 비례한다”다.

당시에도 이 구절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말이었다. 무게가 없는 물건이 어디 있고, 또 물체의 양이 많으면 더 무거운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는가. 게다가 뉴턴은 이 ‘무거움’이 ‘힘’이라고 꼭 집어서 말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정리 7번에 붙어있는 따름정리 1번에서 뉴턴은 ‘잡아당김’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무거움이 인력이라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또 따름정리 2번에서 무거움의 크기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니, 제1권의 명제 74번의 따름정리 3번을 보고 스스로 확인해보라고 했다.

뉴턴의 운동 3법칙(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 - 반작용의 법칙)은 제1권 본문이 시작하기도 전에 ‘법칙’이라는 제목 아래에 누구나 중요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제시됐다. 하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은 이렇듯 책의 뒷부분에 따로 이름 붙이지도 않은 채 은근슬쩍 불친절하게 제시했던 것이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제시한 건 예전부터 무거움에 대해서는 여러 자연철학자들이 나름 복잡한 논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옛 자연철학자들의 주장을 일일이 거명하면서 반박하는 대신, 다른 학자들이 뉴턴의 주장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여서 옛 자연철학자들의 주장을 저절로 버리게 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일찍이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소들이 흙, 물, 공기, 불의 순서로 무거운데, 무거운 원소가 아래로 내려가려는 이유는 각자가 자신의 본성에 맞는 위치로 돌아가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아래는 동그란 우주의 중심부다. 따라서 우주의 중심부에 흙이 뭉쳐 있고, 그 위에 물, 공기, 불순으로 원소 본연의 장소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주 중심에 뭉쳐 있는 흙덩어리가 바로 땅, 즉 지구였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물체가 구성 원소에 따라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는 운동을 자연스러운 운동이라고 불렀다. 물체가 현재 자신이 놓여 있는 자리와 본연의 자리 두 장소를 알고 있다고 여겼고, 물체의 무거움이란 물체 자신의 위치를 변화시키려는 능동적인 성질로 여겼다.

17세기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자연철학을 반박한 데카르트주의자들은 물체가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관념을 철저하게 부정했다. 그들은 물체가 자신의 위치나 우주의 중심을 안다는 식의 생각은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

물체의 상호작용은 물체 입자의 직접 충돌뿐이고, 두 입자가 충돌할 때 서로 충격을 주고받으면 큰 입자의 운동 상태는 조금만 바뀌고, 작은 입자의 운동 상태는 크게 바뀐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들이 물체 입자의 크기라고 부른 것은, 현대적으로 볼 때 입자의 부피보다는 질량에 가까웠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은 물체 입자의 능력은 입자가 크거나 무거울수록 외부의 충격에 더 많이 저항하는, 즉 수동적인 성질뿐이라고 여긴 셈이다.

그렇다면 무거운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데카르트는 흙탕물 소용돌이가 있으면 먼지와 흙가루, 모래가 소용돌이치며 서로 충돌하면서, 점차 모래와 흙가루가 중심부에 뭉치는 현상에 주목했다.

지구 주변에 항상 입자들이 소용돌이치고 있기에, 굵은 입자로 만들어진 물체일수록 크고 작은 입자와 충돌하며 소용돌이 중심부인 지구로
몰려든다고 봤던 것이다. 이 현상이 사람들이 보기에 무거운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즉 지구의 무거움은 물체를
끌어당기는 원인이 아니라, 물체들이 소용돌이 중심부로 몰려든 결과라는 셈이었다.


근대과학의 초창기를 이끌고 있었던 파리과학아카데미의 정통 데카르트주의자들에게 뉴턴의 주장은 일종의 악몽이었다. 뉴턴이 제시한 운동의 법칙이나 만유인력의 법칙을 이용하면 천체의 궤도를 제대로, 그리고 과거보다 쉽게 계산해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에 깔린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뉴턴의 운동 2법칙 ‘F=ma’에서 물체의 운동 상태를 바꾸는 것은 힘(F)인데, 힘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았다.

또 힘은 수레를 밀듯이 직접 접촉을 통해서 전달될 수도 있고, 지구에 작용하는 태양의 중력처럼 접촉하지 않아도 작용할 수 있다. 그들에게 뉴턴의 힘이란 물질적 실체가 없으면서도 변화를 일으키는 능동적 능력, 즉 마술적 능력을 지닌 유령 같은 것으로 보였다. 다만 물체의 양(m)이 클수록 운동 상태의 변화(a)는 작아지므로 물체의 양(m)을 변화에 저항하는 수동적인 성질(관성질량)로 봐줄 수는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중력이었다. 먼 거리를 두고, 언제나 즉각, 물질적 접촉 없이 작용한다는 중력은 연금술사들이 주장했던 신비한 힘과 너무 비슷했다. 뉴턴이 언뜻 마술과도 같은 중력 개념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연금술 연구에 심취한 탓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자연철학에서 신비주의를 추방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 때문에 마술 같아 보이는 만유인력의 법칙은 오히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게다가 한 물체가 다른 물체에 가해서 운동 상태의 변화를 일으키는 능동적인 능력인 중력이 물체의 양에 비례한다니? 그건 물체가 능동적
능력(중력질량)을 지닌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변화에 저항하는 관성질량과 중력의 근원인 중력질량은 서로 다른 것인가 같은 것인가.

이런 문제 때문에 파리과학아카데미의 기성 회원들은 뉴턴의 주장을 반박하려 했지만, 젊은 세대일수록 뉴턴의 성과에 매료됐다. 신세대가
아카데미 활동을 주도하기 시작한 1740년대 중반에는 뉴턴의 승리가 확실해졌다. 이후 영국을 넘어 유럽 대륙에서도 뉴턴을 ‘보편중력 법칙’을 발견한 사람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통데카르트주의자들이 제기했던 문제에 대해 납득할 만한 답이 나온 것은 20세기 초였다. 그 답변은 헝가리의 지구물리학자 외트뵈슈 남작과 아인슈타인이 내놓았다.

외트뵈슈는 지구가 자전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지표면의 물체는 지구의 자전 운동에 따라 강제로 회전운동하니까, 물체의 관성질량이 크면 클수록 더 큰 원심력을 받는다. 그는 비틀림 저울의 양 팔에 중력질량이 같은 두 추를 매달았다. 만일 두 추의 관성질량이 다르다면 지구 자전에 의한 원심력을 다르게 받기 때문에 비틀림저울이 약간이라도 회전하게 된다(즉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은 다르다는 결론이 나온다).

외트뵈슈는 이 원리를 이용한 실험을 1885년 시작했다.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의 비율이 다를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두 추의 물질을 달리해보고, 비틀림저울보다 더 예민한 비틀림진자를 채용했다. 마침내 이중비틀림진자인 ‘외트뵈슈 진자’를 고안해서 실험한 끝에 1909년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은 10억분의 1의 한계로 동일하다고 발표했다.

한편 아인슈타인은 1907년부터 중력이 없는 상태에서 가속도 g로 운동하는 경우와 중력가속도 g만큼의 중력을 받는 경우를 물리적으로 구별할 수 없다는 소위 등가원리를 제창하고 있었다. 그는 중력과 가속도가 사실상 같다는 이 원리를 이용해 특수상대성이론을 일반상대성이론으로 확장하려는 중이었다.

가속과 관계되는 질량은 관성질량이고 중력과 관계되는 질량은 중력질량이니, 등가원리는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같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하면서 외트뵈슈의 실험결과를 등가원리의 근거로 인용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의 크기는 물체의 질량이 공간을 왜곡시키는 정도로 비유할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하면 만유인력의 수수께끼 같았던 성질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태양이 지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지구를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태양이 이미 왜곡시킨 공간을 지구가 지나갈 뿐이다. 아인슈타인에 이르러 중력은 기하학이 된 것이다.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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