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5일 월요일

"양자역학 토론할 파트너 생겨 좋아요"

경기과학高 첫 과학영재 발굴 프로젝트 참여하는 11세 송현진 군

매주 수요일 과학영재학교 경기과학고등학교(교장 전영호) 실험실에는 자그마한 체구의 청강생이 찾아온다. 주인공은 경기과고가 가정 형편이 어려운 과학영재를 발굴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프로젝트의 첫 대상으로 선정된 송현진(경기 남양주 진건초등학교 5학년)군. 송군은 지난 3월부터 이 학교 1학년들과 함께 실험 수업에 참가하고 있다.

네 살 때 사칙연산을 떼고 초등학교 1학년 때 독학으로 중학교 수학과정을 마친 송군은 뛰어난 영재성을 갖췄지만, 하마터면 '나 홀로 영재'로 남을 수도 있었다. '10차원' '외계인'…. 친구들이 송군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한창 애니메이션과 온라인 게임이 관심사인 또래에게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에 대해 얘기하는 송군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또래들과 관심 분야가 너무 다르다 보니 대화는 점점 줄었고 집에서 혼자 책을 보고 공부하는 시간이 늘었다. 어머니 천성순씨와 단둘이 사는 송군의 대화 상대는 어머니와 책으로 점점 좁혀졌다. 다행히 1학년 때 송군의 영재성을 알아차린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5·6학년이 다니는 지역 영재원에 청강생으로 들어갔지만, 송군의 지적 욕구를 채우기에는 한없이 부족했다.

"과학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친구들은 관심이 없으니까 속상했어요. 제가 얘기를 꺼내면 이상하다고 놀림받기 일쑤였고요. 책을 보고 혼자 이론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었죠."

평소에는 내성적으로 보일 정도로 말수가 적은 송현진 군. 하지만 ‘과학’ 이야기가 나오면 어느새 ‘수다쟁이’로 변한다.(오른쪽)단전자 실험을 하는 송군.
송군이 영재성을 발휘하기 시작한 데는 전 교장의 역할이 컸다. 경기도교육청 과학영재 담당 장학관으로 근무하던 2009년 송군을 만나게 된 전 교장은 2010년 경기과고로 부임하면서 특별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영재교육지원부 김순근 부장은 "처음 어머니에게 전화로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양자역학'을 한다고 하더라. 기초적인 책을 보는 수준인데 과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확인이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아이를 만났는데 도무지 초등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물리 교육을 담당한 류신호 교사는 "처음에는 현진이가 낯을 많이 가려 조기입학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게 했는데 특정 분야에서는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송군은 아직 '미완의 대기'다. 현재 송군은 수학은 고등학교 2학년, 물리는 대학교 2학년에서 배우는 일반 물리학 문제를 척척 풀 정도지만, 모든 공부를 독학으로 하다 보니 특정 분야에 치우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류 교사는 "아직 어리고 무엇보다 대화가 부족하다 보니 동료와의 관계 형성을 많이 어려워해 첫 학기에는 실험과 함께 마음을 열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 천성순씨는 "그동안 가슴속에 혼자만 쌓아왔던 이야기를 마음껏 할 상대가 생겨서인지 학교생활도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왕복 4~5시간씩 오가다 보니 집에 갈 때면 녹초가 되는데도 매주 수요일만 손꼽아 기다린다. 형편이 어려워 책도 마음 놓고 사줄 수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는 어머니의 눈가는 금세 촉촉해졌다.

경기과고는 송군을 위해 수학·과학·인성 교사 등 9명으로 이뤄진 전담팀을 구성하고 연간 1000만원의 별도 예산을 확보해 송군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원할 계획이다. 전 교장은 "우리나라 영재의 경우 초기에 부각되면 지나치게 한 분야만을 강조해 성공하는 경우가 적었다. 2년간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송군이 인성과 재능을 갖춘 인재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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