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5일 목요일

'슬로리딩 창시자' 하시모토 다케시 "공부의 즐거움 깨닫도록 천천히 깊게 가르쳐야"



◇책, 한 권이라도 '느리고 깊게' 읽어라
하시모토씨는 "'노는 게 곧 배우는 것'이란 원칙 아래 학습자의 지식 폭을 넓히고 독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게 슬로리딩 학습법의 목표"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슬로리딩은 △책 속 본문에 나오는 게임을 실제로 해보거나 △문장 속 어구 하나를 자세히 알아보는 등 한 권의 책을 '느리고 깊게' 읽는 방식이다. 이때 핵심은 '즐거움'.

"예를 들어 은수저 전편 13장엔 '막과자'란 주전부리가 등장하는데요. 슬로리딩 수업에선 막과자 관련 자료를 다양하게 조사하고 실제로 구해 먹어보며 작품 속에 막과자가 등장한 배경을 다함께 생각해봅니다. 또 은수저는 전편 53장, 후편 22장으로 구성돼 있지만 제목은 따로 붙어 있지 않거든요. 이 점에 착안, 학생들과 '각 장의 제목 달아보기' 활동을 진행했어요."

혹자는 슬로리딩을 '읽기(reading)'에 치우친 교육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슬로리딩 학습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쓰기'다. 하시모토씨는 "읽기와 쓰기 연습을 병행해야 국어 실력이 향상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교사 시절, 학생들에게 쓰기 연습을 시키기 위해 매월 다른 책을 한 권씩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게 했다. 하지만 결과물의 수준을 따지지 않고 제출자 모두에게 만점을 줬다.

"제가 내준 과제를 어떻게든 끝낸 학생은 전부 만점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점수 걱정 없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글을 쓸 수 있게 하고 싶었거든요. 점수 부담을 덜어줬더니 글쓰기에 대한 아이들의 흥미가 확실히 높아지더군요."
 
◇주입식 학습 잘하려면 '암기도 놀이처럼'
공부의 즐거움 깨닫도록 천천히 깊게 가르쳐야"
읽기·쓰기 병행해야 국어 실력 향상, 지루한 암기는 놀이로 재밌게 접근
부모 뜻 강요 말고 아이 삶 존중해야
하마다 준이치 도쿄대학교 총장, 야마사키 도시미스 최고재판소 사무총장, 소설가 엔도 슈사쿠. 이들에겐 공통점이 두 가지 있다. 일본 사회에서 존경 받는 대표적 명사(名士)란 것, 그리고 하시모토 다케시(100) 전(前) 교사의 제자 출신이란 것이다. 하시모토씨는 지극히 평범한 학교였던 나다학교(중·고등 과정)를 일약 '명문'으로 만든 일명 '슬로리딩(Slow Reading)' 학습법의 창시자다. 그의 제자들은 중학교 3년 내내 국어 시간에 일본 소설 '은수저'(나카 간스케) 한 권만 파고드는 방식으로 일본 주요 명문대에 진학했다. 최근 이 학습법을 소개한 '슬로리딩'(조선북스)으로 한국 독자를 만난 하시모토씨가 맛있는공부 독자를 위해 자필 편지를 보내왔다.



물론 그가 암기같은 '전통적' 교육 방식을 완전히 배제한 건 아니다. "연애처럼 중학생 수준에서 공감하기 쉽잖은 감정을 노래한 시(詩)의 경우, 애써 이해하려 하기보다 외우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암기한 후 대상과 차츰 친숙해지는 방법이죠."

단, 암기가 필요한 단원을 가르칠 땐 학생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재미' 요소를 가미했다. 하시모토씨에 따르면 은수저 본문엔 주인공이 일본 시 100개를 암기하는 '카드 대회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는 암기를 놀이와 접목하기 위해 이 부분을 활용했다. "책 속 내용을 재현해보자"며 학생들에게 시를 암송시킨 후 성적에 따라 연필 등 간단한 상품을 준 것.

그는 슬로리딩 학습법이 거둔 성과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는 즐거움을 깨달은 학생이 다방면에서 자발성을 발휘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학습을 놀이로 인식하다 보면 공부도 '좋아서' 하게 됩니다. 내켜서 하는 공부는 의욕을 불러일으키죠. 그런 태도는 학습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칩니다. 그 결과가 '성적 향상'으로 나타나는 거죠."

은수저를 활용한 하시모토씨의 첫 수업(1951) 당시 '국어과목을 좋아한다'고 응답한 학생의 비율은 5%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불과 1년 만에 95%로 '수직 상승'했다. 나다학교는 1962년 '일본 내 교토대 합격자 최다 배출 고교'에 올랐다. 1968년엔 일본 사립고 중 최초로 '도쿄대 합격자 수 1위 학교'가 됐다.

◇즐겁게 공부한 아이, '성장'으로 보답해

슬로리딩 학습법에 솔깃해하는 이들도 '국내 적용 가능성'을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린다. 철저하게 입시 위주로 진행되는 우리나라 교육 체계에서 '중학교 국어 정규 수업을 책 한 권으로 나는' 방식이 과연 실현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하시모토씨도 이에 동의한다. "일본 역시 한국 못지않게 공교육에서 입시 비중이 높습니다. 당연히 제 교육 방식이 일본 내 모든 학교로 확산되긴 어렵죠. 제가 슬로리딩 교육을 실행할 수 있었던 건 나다학교의 자유로운 교육 철학 덕분입니다. 나다학교 교사는 누구나 자신만의 독창적 교육법으로 학생을 가르칠 수 있어요. 어느 누구도 자신의 교육법을 타인에게 간섭 받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가 '은수저 수업'을 진행했던 3년간 학부모나 학생, 동료 교사의 반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무한 자유'는 '무한 책임'을 수반하게 마련. 하시모토씨 역시 자신이 원하는 커리큘럼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매일 새벽 두세 시까지 머리를 싸매고 수업안을 만들었다. 그런 노력은 고스란히 수업 질(質) 향상으로 이어졌다.

하시모토씨가 한국 학부모에게 건네는 조언은 '자녀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부모의 일방적 의지로 아이에게 삶의 방향을 강요하지 마세요. 아이 역시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란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녀를 친구처럼 존중하며 즐겁게 지내다 보면 아이는 부모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한 걸음씩 성장해나갈 겁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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