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따라가는 '추격형' 탈피…'선도형' 연구로 새 영역 도전을
유학시절 논문 준비할 때 스스로 방향잡는 美 학생 부러워
결과 뻔한 연구만 매달리지 말고 신기술 개척을
경기고 수석 졸업, 서울대 예비고사·본고사 수석,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 박사과정 자격시험 1등까지….
기초과학연구원(IBS) 초대 수장을 맡고 있는 오세정 원장(59)의 화려한 스펙이다. IBS는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할 50개 연구단을 거느리고 있는 정부 연구·개발(R&D) 컨트롤 타워다. 71학번 연배들에게 오 원장은 전설로 통한다. 경기고, 서울대, 스탠퍼드대 등 한가락 하는 학생들이 넘쳐나는 명문학교에서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아서다. 공부라는 무림에서는 그가 최고수였던 셈이다. 1971년 경기고를 함께 졸업한 동문은 문과에서 권오규 전 재정경제부 장관,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있다. 같은 이과 출신 중에서는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이 ‘절친’이라고 한다.
그는 국내 과학계를 대표하는 학자 중 한 사람이다. 1976년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제록스 팰러앨토연구소를 거쳐 1984년 귀국, 모교에서 고체물리학 연구에 몰두했다. 철은 전기가 잘 통하는데 여기서 산화한 녹은 왜 전기가 안 통하는지 탐구하는 게 고체물리학이다.
1988년 ‘전이금속산화물의 전자구조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영국인 모트(Mott)의 절연체에 관한 이론 한계를 밝혀 석학으로 인정받았고 1998년 한국과학상까지 수상했다. 2011년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을 거쳐 지난해 말 IBS를 맡았다.
◆한국 수재도 절망케 한 미국 유학
공부를 화제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 1등을 놓치지 않은 비결이 궁금해서다. 하지만 답은 허망했다. 오 원장은 “누군가 1등을 해야 하는데 우연히 내가 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비법 대신 우리 교육의 문제점 얘기를 꺼냈다. 1976년 스탠퍼드대 대학원 물리학과에 입학한 그는 정원 25명 중 유일한 외국인임에도 박사과정 자격시험을 1등으로 통과했다. 하지만 논문 주제를 정할 때 난관에 부딪혔다.
성적이 훨씬 떨어지는 미국 학생이 스스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며 논문 방향을 잡는 동안 그는 3~4개월째 제자리만 맴돌았다. 오 원장은 “정답이 있는 문제를 푸는 데는 자신이 있었는데 스스로 방향을 정해야 할 때 문제가 나타났다”며 “틀리더라도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며 방향을 잡는 그들을 보면서 한계를 절감했다”고 말했다.
◆안 되는 일 도전하는 게 진짜 과학
다양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창의성이 화제에 오르자 자연스럽게 IBS의 역할로 얘기가 옮겨갔다. 그가 IBS에서 해야 할 임무가 평생 몸 담아온 한국 과학기술 연구의 패러다임을 확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을 따라가는 ‘추격형’에서 미지 영역에 도전하는 ‘선도형’으로 바꾸는 게 그의 과제다. 선진국에 올라서려면 스마트폰 시장을 창출해낸 애플처럼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IBS는 정부가 2017년까지 5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 만드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핵심 기관이다. 연간 100억원씩 연구비를 지원하는 산하 연구단이 50개나 있고 국내 최대 연구시설인 중이온가속기연구소까지 총괄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IBS는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독일의 막스플랑크, 일본의 이화학연구소를 벤치마크해 만들어졌다. 과제 선정, 예산, 인사까지 연구자에게 광범위한 자율성을 주는 게 특징이다. 노벨상에 도전할 만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스스로 찾도록 연구 문화를 바꾸자는 취지다.
“전문가들이 안 된다고 하는 일에 도전하라.” 오 원장이 꼽는 새로운 과학 연구 방향이다. 그는 “그간 우리 과학기술이 산업 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지만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하는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며 “디지털TV, 반도체 이후 먹거리를 찾을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도 연구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공률 90% R&D는 이제 그만
한국의 R&D 과제 성공률은 90%를 넘는다. 성과가 좋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과학 분야에서는 바람직한 지표라고 볼 수 없다. 성과를 높이기 위해 달성하기 쉬운 주제, 기존 연구를 조금 업그레이드한 과제에 매달리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 원장은 2012 런던올림픽 체조 도마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양학선 선수를 새로운 과학 연구의 롤모델로 꼽았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도 공중에서 세 바퀴(1080도 회전) 도는 ‘양1’ 기술로 올림픽 1위를 차지하고 나아가 세 바퀴 반(1260도 회전) 도는 ‘양2’까지 도전하는 그의 자세가 과학 분야에도 필요하다는 것. 오 원장은 “IBS에 있는 동안 과학계의 양학선이 나오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기초과학 튼튼해야 노벨상도…문·이과 통합교육해야" 한국이 이제야 과학자들에게 자율성을 주는 기초과학 연구를 시작한 반면 일본은 100년 가까이 앞선 1917년 이화학연구소를 만들었다. 일본은 양성자 등의 미세입자를 충돌시켜 새로운 원소와 물리 현상에 대해 연구하는 대형 가속기만 지금까지 여섯 개째를 만들고 있다.
일본인이 수상한 노벨상 중 물리학상, 화학상이 많은 것도 가속기 같은 인프라 덕분이다. 오 원장은 “2차대전에서 승리한 뒤 일본에 부임한 맥아더 장군이 핵폭탄 개발에 쓰일지 모른다고 의심해 가속기를 도쿄만에 갖다 버린 유명한 사건이 있다”며 “맥아더가 일본의 창의성을 그만큼 인정해서 결정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문·이과 나누는 교육 바꿔야
오 원장은 과학자로는 드물게 글쓰는 것을 좋아한다. 과학계에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일간지 등에 글을 실어 논란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했다. 평소 신문과 책을 꼼꼼히 읽으며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노력한 덕분이다.
서울대 시절 자연과학대학장을 연임할 수 있었던 것도 평소 글을 쓰며 쌓은 자기만의 소신으로 후배 교수들을 이끌어왔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재직 때는 교육 정책을 놓고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바른 목소리를 낸 것으로 유명했다.
오 원장은 “예전에는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과학기술을 키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여론도 중요해졌다”며 “더 많은 과학자들이 쉽고 재미있는 주제로 대중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이 글쓰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과 관련, 오 원장은 문·이과를 나누는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문·이과를 나누는 순간 다른 분야에 대해 담을 쌓기 시작한다”며 “과학기술과 인문·사회적 능력을 고루 갖춘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학제를 넘나드는 교육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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