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9일 화요일

IQ 210 세계 10대 천재 김웅용의 45년 후


5살때 미적분 푼 천재, "바보됐다는 소리에…"

이 남자는 다섯 살 때 4개 국어를 말하고 열두 살 때 NASA(미항공우주국) 선임연구원을 지낸 천재다. IQ 210, 이 경이적인 숫자는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 대문호 괴테와 비슷한 수준이다. 실제로 김웅용 씨는 1980년부터 10년 동안 '세계에서 IQ가 가장 높은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는 1970년대 초반 매스컴을 통해 국민적 관심을 얻었고 여덟 살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10년 후 돌연 평범한(?)모습으로 귀국해 충격을 안긴 다음, 한동안 언론의 관심에서 빗겨 있었다. 그러다 최근 미국의 한 비영리단체에서 뽑은 '세계 10대 천재'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 주목을 받았다.

'보통 사람'을 꿈꾼 고단한 천재의 삶

1967년 10월, 다섯 살 소년 김웅용 군이 일본 후지TV에 출연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 아이는 도쿄대 수학과 야노 켄타로 교수가 낸 미적분 문제를 단숨에 풀었다. 교수가 '정답'을 외치자 스튜디오는 놀라움으로 휩싸였다. ‘천재 소년’의 등장은 센세이셔널했다. 매스컴에서는 '노벨상은 문제없는 천재이자 대통령 감'이라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다. 하지만 남다른 두뇌를 가진 아이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다섯 살 무렵부터 한양대학교에서 물리학 수업을 들었고, 여덟 살에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공부했다. 열두 살에는 NASA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과학적 재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이지만 또래와의 '관계 맺기'와 '소통'에 실패해 늘 외톨이로 지냈다. NASA에서도 늘 혼자였고, 결국 우울증에 시달렸다.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다 못한 그는 열아홉 살 되던 해에 '평범하게 살겠다'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그에게 '실패한 천재'라는 이미지를 씌웠다. '바보가 됐다'는 소문도 돌았다. 한편에서는 '제대로 된 영재교육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생겼다. 하지만 소년 김웅용은 그런 관심 자체를 원하지 않았다. 그저 남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는 관심이 몰리는 소위 'SKY'대학 대신 지방 국립대에 입학해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기 시작했다. 졸업 후 모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KAIST연구원을 거쳐 지금은 지자체 산하 공기업에서 근무하는 두 아이의 아빠다. '천재'라는 닉네임을 감안하면 실패한(?) 삶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삶에 충분히 만족한다고 했다.

기자와 만난 김웅용 씨는 천재로 주목받던 시절 얘기와, 소통의 부재로 힘들었던 청소년기 얘기는 이제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적잖은 무게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언론을 통해 "영원한 이방인으로 사는 삶이 고달팠고, 숨 쉬기도 힘들 만큼 괴로웠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다만 교육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고 했다. 맞춤식 교육이 절실했던 한 명의 천재로서, 그리고 이제는 보통 아빠가 된 입장에서 교육에 관한 나름의 정의를 세워뒀기 때문이다. IQ 210의 삶은 보통 사람과 어떻게 달랐을지, 그의 교육관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그와 마주 앉았다.

사람들은 대개 3~6세 때의 시절 기억은 짤막짤막한 장면만으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재로 주목받던 어린 시절 기억이 어떻게 남아 있나요
여러 가지 팩트가 강하게 머릿속에 남았고, 그 시절이 비교적 자세히 기억 납니다. 사람들이 저보고 '홈 스쿨링'의 원조 아니냐고 말하는데, 부모님이 과목별로 가정교사를 붙여줬던 기억이 나요(웃음). 저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과 인연이 닿아서 그분들에게 과외를 받은 적도 있고요. 일본 TV에 출연해 미적분 문제를 풀었던 기억도 선명하고요.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게 가능했냐"고 요즘도 많이 묻는데, 제가 관심 있는 분야는 정말 집중해서 파고드는 성격이었어요. 그게 가장 중요한 차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이틀 만에 한글을 깨쳤고, 다섯 살에 4개 국어를 말하며 미적분을 다뤘다고요. 스스로의 지적 수준에 비해 만족스러운 교육을 받지 못했을 텐데, 그런 갈증은 어떻게 풀었나요
책을 많이 읽었어요. 톨스토이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같은 고전을 많이 읽었고, 『흥부와 놀부』 같은 전래동화도 좋아했어요. 아버지가 『소학』을 가르쳐주셔서 그 책도 자주 봤고요.

부모는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는 눈이 밝아야 하죠, 천재는 부모가 만드는 겁니까? 아니면 역시 타고나는 겁니까
두 분 모두 대학교수셨고 공부에 관한 정보를 많이 제공해주셨어요. 제가 궁금한 걸 해결하지 못하면 주위 교수님의 도움을 얻어주기도 하셨고요. 다만 저는 제가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깊이 집중했고, '나는 잘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을 뿐이죠.

미국으로 간 것은 본인 의지였나요
전적으로 부모님 뜻이었어요. 사실은 대학에 보내주겠다는 제안 덕분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입시 과정을 전부 거쳐야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데 거기서는 지도교수가 허락하면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거든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다닐 수 없으니 바로 미국에 간 거죠. 현지 생활이 외롭고 적응이 어려워서 부모님과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습니다.

결국 적응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죠. 망설임이 많았을 것 같아요. '실패한 천재'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 수 있으니까 남다른 환경에서 자꾸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돌아왔죠. 안 좋은 시선은 감수하기로 했고요. '실패한 천재'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시선은 '바보가 됐다'는 소문이었어요. 대학에 진학했는데 저를 멍청하게 본 사람이 많았거든요. 그럴 만도 했죠. 등록금도 스스로 낼 줄 몰랐으니까. 동사무소(현 동주민센터)에서 고지서 받아다 은행 가서 내야 하는데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으니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몰랐죠. 동사무소에 가서도 어리바리하고요. 그저 경험이 없을 뿐인데 사람들은 지레 호들갑을 떨었죠. 그 시선을 떨치는데 긴 시간이 필요했어요.

부모님 입장에선 서운할 수 있었을텐데요
주위 시선보다는 제 스스로의 중심 잡기가 더 중요했어요.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울 만큼 감정적으로 포화 상태였으니까요.

대학교 때 성적은 어땠나요
중간이었어요. 동아리 활동을 많이 했거든요. 저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지내본 적이 없잖아요. 대학교는 제게 사회 생활의 '첫 경험' 이었거든요. 남들이 지금껏 해오던 일을 나는 4년 안에 다 체험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1학년 때는 초등학생 시절, 2학년 때는 중학교, 3학년 때는 고등학교 시절 몫 만큼 놀면서 보내자고. 그래서 봉사 동아리와 기타, 붓글씨, 바둑반에 가입했어요. 동아리 활동만 9군데에서 했습니다(웃음).

스무 살의 삶은 평범했나요. 관계 맺기에 서투르던 청년의 연애담도 궁금하고요
봉사 동아리에서 아내를 만났어요. 내 얘기를 지루해 하거나 말 끊지 않고 잘 들어주는 성격이어서 편하게 만났습니다. 제가 좀 어렵거나 동떨어진 얘기를 해도 단둘이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었어요. '천재 소년' 시절 얘기를 숨기고 살았는데, 연애 시절 아내에겐 다 털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 천재로 주목받는 송유근 군이 그런 얘기를 한 적 있어요. "연애하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다. 좋아하는 사람과 상대성 이론 얘기를 하고 싶은데, 그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은 박사 이모들밖에 없다"고요 그 어려움이 이해됩니다. 하지만 제가 뭐라고 조언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에요. 그 아이의 삶이고, 가족분들이 많이 애쓰고 계실 테니까. 다만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잘 풀어줄 필요는 있어요. 제가 아내와 10년 가까이 연애하고 가정을 꾸리게 된 시작도 그 부분일 수 있으니까요.


하나만 잘하는 게 좋다. 외곬만 아니라면…

'천재 소년 김웅용'은 교육계에서 오랜 이슈였다. 지적 수준은 이미 성인인데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으니 상급 학교 진학이 어려웠다. 이를 두고 '천재를 둔재로 만든 획일화된 교육’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한편으론 ‘학교는 사회적인 관계를 배우는 곳이니 아무리 천재라도 학제 시스템은 지켜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았다. 이런 논란을 거치며 영재교육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시작됐다. 그렇다면 당사자는 요즘의 영재 교육이나 창의력 교육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요즘 교육의 키워드는 창의력과 상상력입니다. 인문학에 대한 수요도 많고요. ‘맞춤식 교육’이 절실했을 당신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저는 근본적인 의문이 있어요. '요즘 과연 그런 교육을 하고 있나'에 관한 부분입니다. 우리 교육은 전적으로 대학 입시에 초점을 맞추죠. 하지만 입시 경쟁에서 창의력은 판단근거가 안 돼요.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학점 관리를 잘하라고 말하죠. 적당히 A 학점을 받으라는 얘기인데, 여기에 함정이 있어요. 누구도 그 이상의 몰입은 요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학점 관리의 함정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뭔가요
예를 들어볼까요. 대학에서는 95점 이상이면 A+를 받아요. 만일 어떤 과목을 정말 좋아하고, 공부 자체가 즐거워서 깊이 파고들어 100점을 맞은 학생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하지만 95점이나 100점이나 일단 평점은 똑같아요. 문제는 한 과목을 94점 맞은 경우예요. 그러니까 95/95점 학생 평점이, 100/94점 학생보다 높다는 겁니다. 자, 이게 과연 맞는 서열(?)일까요. 이 시스템이 바로 적당한 수준에서 멈추게 하는 교육이라고 봅니다. 특정 분야에 뛰어난 소질을 보이는 사람을 더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엔 ‘통섭’이 필요한 시대라고 하잖아요. 하나만 잘해서는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려우니 두루 많은 경험을 쌓는 게 좋다는 견해인데 저는 반대로 봅니다. 사람들은 손연재를 평가할 때 리듬 체조 선수로서의 기량만 보죠. 김연아는 피겨를 잘해서 세계 최고의 스타고 박태환은 오로지 수영, 기성용은 축구로 스타가 됐어요. 그것 하나로 그 사람을 인정해준다는 얘기죠. 하지만 공부는 그렇지가 않아요. 국어도, 영어도, 사회도 잘해야 합니다. 뭐 하나 못하면 “너는 수학을 잘해 놓고 왜 과학은 한 개 틀렸냐”고 물어요. 그건 “IQ가 210인데 왜 피겨는 못 타냐”라고 묻는 것과 똑같은 얘기라고 봅니다. 사람은 만능일 수 없어요. 자기가 잘하는 부분에 집중해야죠.

박지성은 멀티플레이어로 유명한데요 외곬이 되라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다만 공부 환경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거죠. 올림픽을 위해서는 4년 동안 오직 자기 종목에 몰두하는 환경이 만들어지죠. 공부도 그래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은 좋은 대학 가려면 특목고가 필요하고, 특목고 가려면 만능 중학생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 해요. 이것도 적당히, 저것도 적당히 잘해야 1~3등이 되죠. 하지만 그 아이와 5~10등의 차이는 미미하거든요. 과연 정말 차이가 있는지도 의문이고요. 모든 학생이 모든 과목을 잘할 수는 없어요, 그럴 필요도 없고, 그게 가능하지도 않죠.

'천재 아빠'의 두 아들 교육법

김웅용 씨는 두 아들(15세, 12세)의 아빠다. 요즘 주위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아들도 공부 잘합니까"다. 하지만 아이들은 과학이나 수학 대신 축구와 춤에 관심과 소질이 많다. 다섯 살에 미적푼을 풀어낸 아빠로서, 아이들의 진로에 대해 나름의 욕심을 갖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들들이 공부보다 운동 쪽에 소질을 더 많이 보인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평범한 맞벌이 부부였어요. 낮에는 애 맡기고 저녁에 찾아오는 보통 아빠. 할머니와 이모가 돌아가면서 봐주고 엄마 손을 많이 못 타서 그런가 애가 몸도 약했어요. 그래서 어린이집 보낼 때부터 체육 활동을 많이 시켰어요. 아기 스포츠단이며 등산, 승마도 시켰고요.

두 가지 의도가 있었어요. 몸을 많이 쓰고 건강해지라는것과 친구 사귀고 사회성을 키우라는 거였죠. 저는 인생에서 그런 과정이 없었거든요. 다행히 큰아이는 축구를 잘하고 둘째는 만들기와 춤추는 걸 좋아해요.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크고 작은 성취를 통해서 자신감도 커진 것 같아요. 성적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부모로서 기본적으로 갖는 욕심은 있잖아요. 이왕이면 우등생이길 바라는… 수학이나 언어 쪽으로도 재능이 좀 보였어요. 솔직히 아빠로서 욕심도 났고요. 하지만 거기서 내 뜻을 앞세우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꾹 참았어요. 그 선택으로 영향을 받는 건 결국 아이의 인생이고, 나중에 아이가 직접 감당해야 하니까 스스로의 몫으로 남겨뒀죠.

그러면 아이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뭡니까
몰입하는 힘과 자신감이요. 사람들이 늘 물어봅니다. "아드님은 공부 잘해요?"라고. 저는 공부를 목적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고 봐요. 사실 공부란 게 한번 마음먹고 제대로 파고들면 언제든, 누구라도 잘할 수 있어요. 기본적이고 뻔한 얘기일 수 있지만, 아이가 뭘 재밌어하는지 관찰하고 그 판을 깔아주면 되죠. 저는 "너 왜 이거 안 하니"라고 묻지 않아요.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 대신 "넌 할 수 있다"고 말해주죠. 자신감을 갖고 몰입하면 절반은 성공입니다.

여전히 '영재 되는 법'을 묻는 사람들이 많아요. 집중력과 자신감만 있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요. 노하우를 좀 알려주신다면 제가 KAIST연구원으로 일할 때 이탈리아 학회에 참가할 일이 있었어요. 보고서를 쓰는데 누가 영어로 할 거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이탈리아어로 할 거라고 말했더니 언제 배웠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아직 두 달의 시간이 있으니까 이제 공부하면 돼"라고 대답했어요.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놀라죠. 그러면서 외국어 공부법의 기본적인 프로세스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해요. 하지만 제가 이탈리아를 금방 배울 수 있는 건 천재여서가 아닙니다.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해뒀는데 연결 고리가 많아서 비교적 쉽게 되는 거죠. 결국 근본이 되는 공부, 공부의 기초 체력을 갖추는 게 중요해요. 끈기를 가지고 기초 학문을 배우면 됩니다.

 
온라인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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