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4일 월요일

직접 일정 짜고 타문화와 소통… 자신감 자라나요

스스로 여행하며 부쩍 큰 중고생3인
여행 동행자 긍정적 모습 보며 부족한 것 배워
현지인과 똑같이 생활… '마음의 벽' 허물었죠
"혼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큰일이에요." "극기훈련에 보내봤는데 며칠은 바뀐 것 같더니 도루묵이에요."

'자립심'을 키워주려고 방학마다 캠프에 보내보지만, 큰 효과를 얻기란 쉽지 않다. 원인은 바로 아침에 일어나 잠잘 때까지 '너무' 잘 짜인 커리큘럼. 자립심을 키워주고 싶다면 단 며칠이라도 아이 스스로 계획한 여행을 떠나보내는 것은 어떨까? 자기주도 여행을 실천한 전한이(17· 서울미술고 2), 소하연(13·서울 인헌중 1)양, 정다인(17·경남 거창 대성고 2)군에게 '여행의 묘미'에 대해 들었다.

◇스케치북과 우클렐레, 카메라로 세상을 만나다
조선일보
자기주도 여행을 통해 '자립심'을 키운 소하연, 전한이양·정다인군. /이경민 기자

한이양과 하연양은 지난 3월~8월 6개월간 진행된 주말 여행학교를 통해 만난 단짝이다. 지난 8월 1일부터는 직접 짠 일정으로 14박 15일간 인도네시아 발리-자바-칼리만탄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에 앞서 이들은 다큐멘터리, 서적을 통해 인도네시아에 대해 공부하고 3차례의 국내 여행을 통해 사진 촬영, 여행 에세이 쓰기, 여행 일정 짜기 등을 연습했다. 발리의 친환경 마을 키아단 펠라가 홈스테이, 족자카르타의 힌두교 사원과 술탄 왕궁, 칼리만탄의 오랑우탄 보호 구역, 선상 가옥 숙박 등 모든 일정을 여행학교 친구들과 함께 준비했다. 현지인들과 만날 때면 서양화를 전공하는 한이양은 초상화로, 우클렐레가 취미인 하연양은 음악으로 소통했다.

"시골마을에서 만난 아기들이 처음에는 낯설어하더니 그림을 그려주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놀아주었더니 자석처럼 딱 붙어서 떨어지질 않더라고요.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다는 거예요."(전한이)

이들 역시 처음에는 "계획 세우는 것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부모님을 따라가는 여행에 익숙하다 보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막막하더라고요. 하지만 사전 국내 여행을 통해 처음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지리산에도 가보고 서울 시장 투어도 계획해보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소하연)

지난 겨울방학 11박 13일간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공정여행을 다녀온 다인군은 "여행 다큐멘터리 프로듀서(PD)의 꿈을 더욱 확실하게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지역 고교 연합 영상동아리 회장이기도 한 그는 현지 사람들, 유적, 시장 등 1000여장의 사진을 기록으로 남겼다. 다인군이 다녀온 여행은 이동과 숙박 등 기본 일정만 일행과 함께 하고 현지에서는 개인별로 일정을 진행했다. "여행 전에 기착지별로 여행 계획을 세웠어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박물관, 포르투갈 리스본 벨렘지구의 타르트 가게, 모로코 셰프샤우엔의 골목길 등 꼼꼼하게 일정을 짰죠. 이전까지 가이드가 동행하는 가족 여행과 달리 현지인들에게 묻고 그들의 생활을 보면서 더 많은 것을 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음을 열면 더 넓은 세상 펼쳐져

세 학생은 "여행을 떠나기 전 마음을 열어야 더 깊이 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다인군은 여행 전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를 떠올릴 때면 머릿속에 '알 카에다' '9·11 테러' '반미' 같은 부정적인 단어를 떨치기 어려웠다. 반대로 유럽 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에는 아름다운 나라 선진국이라는 생각에 동경심을 가졌다.

"모로코인들에게 알 카에다에 대해 조심스레 물었더니 '테러 조직은 알라의 말씀을 멋대로 해석해 신이 싫어하는 일을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사람들도 순박하고 평화로웠고요.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라는 생각에 살짝 위축도 됐었죠. 하지만 건물의 모습만 다를 뿐 우리나라 거리와 별로 다르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공공질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잘 지키는 것 같았어요. 선입견을 버리고 나니 여행이 훨씬 즐거워졌습니다."

한이양과 하연양은 선상 가옥에서 머무는 동안 문화 충격에 빠졌다. 현지인의 삶을 체험하고 싶어 선택한 곳이었지만 씻는 게 문제였다. "현지인들은 흙탕물로 그냥 씻는데 처음에는 도저히 못 씻겠더라고요. 날은 더운데 깨끗한 물은 없고 씻지 않고 버텨볼까도 생각하다가 '이 사람들도 다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데 나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벽을 없앨 수 있었어요."(전한이)

여행을 통해 논어에 나오는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를 몸과 마음으로 배운 것도 큰 성과. 털털하지만 계획성이 부족한 한이양은 "현장학습을 갈 때 짐 싸는 것마저 엄마가 해주셨는데 네살 어린 하연이가 똑 부러지게 스케줄 조율하는 것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반면 하연양은 "계획이 틀어지면 걱정이 앞서 정작 여행을 즐기지 못할 때가 잦았던 데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언니를 보면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이양은 "여행 전에 소극적인 성격이었는데 여행학교 수료 파티를 할 때 사회를 맡은 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여행'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기회인지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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