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일 토요일

글쓰기 후진국 대한민국



▲ 한·미 대학 글쓰기 전담 교원 수 단위: 명
글쓰기 관련 교원 중 다른 과목도 가르치는 경우는 제외했다.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주립대 풀러턴캠퍼스 조제희 교수에 따르면 이 학교의 학생 수당 글쓰기 전담 교원 수는 미국의 평균 수준이라고 한다.
글쓰기 붐이 일고 있다. ‘글쓰기훈련소’를 운영하는 북데일리의 임정섭 대표는 일반인의 글쓰기에 대한 관심을 “저수지 수문이 열린 형국”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3~4년 전부터 일반인의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개인 차원에서는 물론 기업과 관공서에서도 글쓰기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북데일리의 글쓰기 아카데미 ‘글쓰기훈련소’에서는 ‘글쓰기 클리닉’ ‘비즈니스 라이팅’ ‘서평 기자’ 등 다양한 분야의 강좌를 운영 중이다. 이곳을 거쳐간 수강생은 수천 명. 북데일리는 관공서나 한국투자증권·삼성테스코와 같은 기업을 찾아가서 교육하기도 한다. ‘찾아가는 글쓰기 특강’까지 포함하면 수만 명이 그로부터 글쓰기 강의를 들었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글쓰기 강좌가 많다. 마포구 서교동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는 시인 김경주가 말랑말랑한 작가적 글쓰기가 아닌 레토릭 강의를 하고, 종로구 혜화동에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강좌를 하는 ‘악어(樂語) 아카데미’가 있다.

글쓰기 관련 서적도 차고 넘친다. ‘글쓰기’를 표방한 책만 최근 1년 동안 100권이 넘게 출간됐다. 수준별 글쓰기 가이드에서부터 미디어, 인문사회계, 이공계 등 분야별 글쓰기 가이드도 있다. 책이 안 팔리는 시대라고 하지만 글쓰기 관련 책은 하루가 멀다하고 신간이 쏟아져 나온다. 온라인 교보문고에는 ‘글쓰기’를 별도의 항목으로까지 분류했다.

글쓰기 붐을 부추기는 원인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다.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 1인 미디어의 증가와 카카오톡, 메신저 등 글을 통한 소통이 늘면서 글을 쓸 기회가 많아졌다. 이화여대 류철균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주간조선과의 전화 통화에서 “디지털 시대에는 글쓰기가 폭발적인 가치를 갖게 된다. 첨단정보사회에서는 글 쓸 기회가 많아지고 글쓰기의 능력이 더 중요시된다”고 말했다.

독일계 프리미엄 필기구 ‘파버 카스텔’ 이봉기(64) 대표가 이 경우다. 그는 최근 한 언론사 논설위원이 진행하는 글쓰기 특강을 이수했다. 공연, 전시회, 여행 등을 다닌 후 거의 매일 페이스북에 감상평을 올리는 그는 “글을 자주 쓰다 보니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전문가의 특강이 확실히 도움이됐다. 이젠 글쓰기가 겁나지 않고, 글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 글쓰기 강좌는 40~60대의 기업 CEO(최고경영자)와 오피니언 리더 15명이 수강했다.

‘글쓰기 붐’ 현상에는 양면성이 있다. 표면적 원인은 모바일 시대와 지식정보사회의 도래로 글쓰기 기회가 증가한 것이 원인이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면에는 체계적인 글쓰기 교습법의 부재로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한국인의 슬픈 현실이 반영돼 있다. 직장 업무의 상당 부분은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현재 직장생활을 하는 30대 이상 한국인 중에는 체계적인 글을 쓰는 훈련을 받아본 사람은 거의 없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논술 위주의 교육이었고, 대학교의 작문 수업은 띄어쓰기나 맞춤법 위주의 문장 중심 교육이었다. 앞서 언급한 ‘글쓰기훈련소’의 문을 자발적으로 두드리는 수강생의 대부분은 직장인이다. 기획사에 다니는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업무상 보고서를 작성할 일이 많은데 논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받는다. 대학을 나왔지만 논리적인 글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어 ‘비즈니스 라이팅’ 과정을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글쓰기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이에 관한 객관적 자료를 찾기 위해 해당 분야 전문가를 수소문하고 관련 논문을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그런 자료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작문학회 정희모 회장(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은 “미국에서는 주(州) 단위로 쓰기 능력을 조사하지만 한국은 자국어 읽기·쓰기에 대한 평가를 한 적이 없다. 학력평가는 읽기·쓰기와 다르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글쓰기 실력이 미국이나 일본, 독일과 비교해 한참 뒤처진다는 데에는 동의하는 분위기다. “대학 교육의 기초적인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저급한 수준” “작문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 등의 표현도 있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NIE 특임강사로 활동 중인 김승웅씨는 “현재 고등학생의 글쓰기 수준은 심각할 정도로 낮다. 고등학교 3학년생의 글쓰기 수준이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편집국장 출신인 김씨는 퇴직 후 3년 전부터 전국 고등학교를 방문해 글쓰기 특강을 하고 있다. 그의 말이다.

“전국 1500여개 고등학교 중 작문교사가 별도로 있는 학교가 10% 정도밖에 안 된다. 그나마 있는 작문교사도 작문 교습법을 모른다. 작문교사는 대부분 대학의 국문과 출신인데 그 또한 제대로 된 작문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내로라하는 대기업 사원, 변호사나 의사도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게 쓴다. 우리나라는 경제 수준과 지적 수준의 격차가 매우 크다.”

심지어 교수들의 글조차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의미 파악이 안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14년째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풀러턴 소재) 영문학부에서 미국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온 조제희 교수는 “한국의 식자층 중에는 저자 중심의 글쓰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그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유력 일간지 논설이나 교수의 글에서도 자기들만의 언어로 쓴 글을 종종 본다. 독자 위주의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기본이다”라고 했다.

국내 교육제도에서는 우수한 점수를 받는 학생이 미국 유학 후 좌절감을 겪는 가장 큰 원인도 에세이 쓰기다. 조제희 교수는 “한국 유학생 절반이 중도 탈락하는데 그 원인이 에세이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명문대 출신이나 교수도 미국에 오면 에세이 때문에 쩔쩔맨다”라며 “단순히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다”라고 말했다. 그는 “글쓰기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교육은 글쓰기를 기반으로 한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목이 읽고 토론하고 쓰는 과정을 거친다. 다루는 장르 역시 다양하다. 광고문, 감상문, 기사문, 매뉴얼 등 각기 다른 글쓰기 교습에 대한 매뉴얼이 별도로 있다. 글쓰기는 지식을 소통하고 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그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문제시되는 ‘논문 표절’ 역시 글쓰기 교육의 미비가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글쓰기 시간에 표절 방지 교육도 배운다. 즉 타인의 글 인용 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매뉴얼을 세세히 배우는데, 한국에서는 이를 배우지 않았으니 남의 글을 베껴 쓰면서도 양심의 가책이 없는 거다”라고 말했다.

조 교수가 재직 중인 캘리포니아주립대 풀러턴 캠퍼스에 있는 글쓰기 센터에는 40명의 글쓰기 도우미가 상주한다. 이와 별도로 분야별 글쓰기 전담 교수만 40여명에 이른다. 그는 “우리 대학의 수준은 중중상 정도다. 명문대일수록 글쓰기 교육을 강화한다”며 “글쓰기 교육의 수준이 우수 대학의 척도다”라고까지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미국의 글쓰기 교육은 한국과 비교조차 안 된다. 미국의 모든 대학에는 글쓰기 센터가 별도로 있다. 2년제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글쓰기 교육은 한국인이 인식하는 ‘첨삭’과는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띄어쓰기, 맞춤법, 비문 고치기 정도가 아니라 주제 설정에 따른 사고 방향, 전개 과정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하버드대학의 글쓰기 센터에는 역사, 심리학, 정치학, 철학, 사회학, 생명과학 등의 전문가가 참여해 주제 토론과 글쓰기 교육을 병행한다. 예를 들어 ‘모바일 사회가 가져온 성(性) 역할의 변화’라고 하면 역사, 사회학, 생명과학 등의 전문가가 참여해 학제 간 교류를 통해 글쓰기를 돕는다. 스탠퍼드대학의 ‘흄 글쓰기 센터’ 역시 문장 훈련에 그치지 않고 특정 주제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비판적 사고 훈련을 거친다. 칼턴대학은 수업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취업이나 대회 참가를 위한 글쓰기를 위해서도 글쓰기 센터의 문을 활짝 열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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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는 글쓰기에 매년 수십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쏟는다. 졸업 전까지 전공 글쓰기 과목을 포함해 4과목의 글쓰기 수강이 필수다. 정희모 한국작문학회 회장은 “MIT를 방문했을 때 이공계 중심 대학에서 글쓰기를 왜 그렇게 강조하는지 물었다. MIT 글쓰기 교육 담당자 제임스 패러다이스 교수는 ‘MIT가 이공계 중심대학이긴 하지만 주로 경영 책임자나 관리자를 양성하기 때문에 글쓰기 능력을 중요시한다’고 답했다. 제안서 하나에 수백만달러가 왔다 갔다 하는 현실을 감안해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고 했다.

독일의 경우는 어떨까. 독일은 특이하게도 대학의 일반교양 과목에 글쓰기가 없다. 글쓰기를 경시해서가 아니다. 기초 과정으로서의 글쓰기는 대부분 김나지움(Gymnasium·우리의 중고등학교에 해당)에서 이미 충분히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대학의 모든 수업은 기본적으로 글쓰기 기반이므로 별도의 글쓰기 과목이 필요없다.

한국 글쓰기 교육의 현주소는 어떨까. 이를 진단하기에 앞서 ‘글쓰기’라는 분야를 분명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국인의 대부분은 ‘글쓰기=작문=소설이나 에세이’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즉 보고서나 제안서, 광고문 등의 실용적인 영역은 글쓰기가 아니라 별도의 영역으로 인식했다. 이는 한국의 글쓰기 교육과 관계가 있다. 글쓰기훈련소 임정섭 대표는 “우리나라 국어 교육 자체는 실용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작가적 글쓰기, 창의적 글쓰기 위주였다”라며 “궁극적으로 창의적 글쓰기가 목표이긴 하지만,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은 거의 실용적인 글쓰기다. 실용적인 글쓰기 교육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현재의 글쓰기 교육은 걷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은 채 하늘을 날아오르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writing’ 과정에 광고문, 감상문, 기사문, 매뉴얼 등이 포함되고 분야별 글쓰기 교육을 별도로 한다. 독일은 글쓰기 교육이 아예 학문적 글쓰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다행히도 국내 대학들이 이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교양과목의 커리큘럼을 대대적으로 개편 중이다. 정희모 한국작문학회 회장은 “2000년 무렵부터 국내 대학이 글쓰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교양국어’를 소통 관련 과목으로 재편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내 대학들이 ‘대학국어’ ‘국어와 작문’ ‘교양국어’를 ‘우리말과 글쓰기’ ‘사고와 표현’ 등으로 과목명을 개명한 데에서 변화의 방향이 드러난다. 일단 ‘작문’이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작문(作文)’은 다분히 작가적인 글쓰기를 내포한 말이다. ‘작문’ 대신 ‘글쓰기’라는 표현을 쓴 것은 작가적 글쓰기를 지양하고, 연설문·광고문·서평·칼럼 등 실용적 글쓰기를 지향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과거 문장력 위주의 교육에서 사고력 강화 교육으로 개편했다.

변화의 바람을 주도한 것은 서울대다. 서울대는 2004년 ‘인문학 글쓰기’ ‘사회과학 글쓰기’ ‘과학과 기술 글쓰기’ ‘법률문장론’ 등 전공별 글쓰기 과목을 개설해 교양 필수로 지정했다. 단순한 문장 작법이 아닌 전공에 맞는 주제 글쓰기를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서울대 기초교육원 허남진 원장은 주간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운찬 총장 재직 시절 서울대가 연구 분야에만 주력하느라 교육에 소홀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다. 지성의 기본이 되는 읽고 쓰고 말하기 중 특히 쓰기 부문이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서울대생 중에도 논리적인 보고서 하나 못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8년 전에 기초교육원을 만들고 쓰기 교육을 강화했다. 특히 전공별 글쓰기 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경희대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 역시 기초 교양 수업을 강화했다. 경희대는 기초 교양을 담당하는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숙명여자대학교는 의사소통능력개발센터를 별도로 만들고 논리적인 사고력을 기반으로 한 글쓰기 교육을 강화 중이다. 경희대에서는 ‘나를 위한 글쓰기’ ‘세계를 위한 글쓰기’를 개설했다. 글쓰기의 방법론뿐 아니라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것이 이 교과의 목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독서와 사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무리 문장력이 탄탄해도 사고력의 깊이가 없으면 소용없다. 이런 차원에서 글쓰기뿐 아니라 읽기와 말하기를 강조하는 커리큘럼을 강화한 대학도 눈에 띈다. 숙명여자대학교는 ‘글쓰기와 읽기’ 외에도 ‘발표와 토론’ ‘인문학 독서토론 1, 2’를 개설하고 이 중 세 과목을 필수 이수 과목으로 지정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역시 ‘고전 읽기와 글쓰기’를 2014년부터 개설할 예정이다. 이화여대 교양국어실 김수경 특임교수는 이 수업에 대해 “한 학기에 7권의 고전을 읽은 후 고전에서 촉발받은 주제 중 현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주제로 글쓰기를 하는 수업”이라며 “사고력과 토론이 기반이 된다”고 말했다.

각 대학의 교양국어 관계자들은 현행 입시 논술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논술 시험은 전형화된 틀을 가르치기 때문에 열린 사고를 기반으로 한 창조적 글쓰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 김수경 이화여대 교수는 “논술의 독을 뺀다는 표현을 쓴다”며 이렇게 말했다. “논술 답안지를 보면 1000장 중 980장이 비슷하다. 제시문을 비교·대조하거나 제시문에서 촉발되는 의견을 쓰게 하는 논술시험은 획일화된 논술 기계를 만든다. 논술학원에서 배운 대로 쓰기 때문에 예시문도 천편일률적이다. 본인의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서울대 허남진 교수 역시 “현행 논술시험은 실패한 제도”라면서 “답안지의 70%는 구조와 내용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는 사교육을 없애기 위해 교과서에서 출제하라고 하는데, 이 경우 사교육이 더욱 득세하게 된다. 범위가 좁으면 학원에서 논술시험을 대비시키기 더 쉽지 않나. 제대로된 사고력과 글쓰기 평가가 이루어지고 사교육을 줄이려면 논술의 출제 범위와 형식이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글쓰기훈련소 임정섭 대표는 “한국인의 글쓰기 콤플렉스”를 지적했다. 이제까지 한국인들은 글쓰기를 입시공부의 일환으로만 배웠기 때문에 글쓰기에 대한 강박증이 있고, 글쓰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 작가 위주의 글쓰기 교육도 한국인의 글쓰기 콤플렉스를 낳은 원인 중 하나다. 즉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라는 글에 대한 숭배가 암암리에 있는 것이다.

국내 대학이 최근 들어 글쓰기 교육을 강화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글쓰기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평가도구 개발이 절실하다. 또한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 서울대의 경우 ‘대학국어’가 교양필수로 지정되면서 학생들이 해당 수업의 수강 거부 투쟁을 한 적이 있다.

수업당 학생 수도 현실화돼야 한다. 미국 주립대학의 경우 학급당 학생 수가 15명 내외이지만 한국 대학의 경우 아직 40~50명인 학교가 많다. 심한 경우 80~100명에 이른다. 100명에 이르는 학생을 이끌고 내실 있는 글쓰기 수업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은 지금의 글쓰기 교육 형태를 갖추기까지 140년이 걸렸다고 한다. 한국 교육계가 사고력 위주의 글쓰기로 전환한 것은 10년 남짓이다. 글쓰기 교육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 훈련은 마라톤과 같다. 미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글쓰기 위주의 교육을 해 왔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표현했다. 한 존재의 사유의 깊이와 지적 수준은 글쓰기를 통해 평가받는다. 아무리 연구 결과가 탁월해도 표현력이 미숙하면 설득력을 잃는다. “한국의 글쓰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노벨상 받는 날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캘리포니아주립대 조제희 교수의 말이 숙제처럼 남는다.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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