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교수는 초등학교와 중·고교 2년 위 선배였던 작고한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를 롤 모델로 삼고 따랐다고 한다.
“당시 이휘소 선배는 매우 지적인 사람으로 제가 마음 속으로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가끔 책 얘기도 하고 인생에 대한 얘기도 나누었어요. 당시 이휘소 선배가 제게서 ‘생명의 기원 (Origin of Life)’이란 책을 빌려간 기억이 납니다만 깜박 잊었는지 돌려받지는 못했어요. 그 분은 월반을 해서 서울대 공대 화공과에 진학해 남들이 부러워 했지요. 나도 선배처럼 한번 해보자 해서 검정시험을 쳤습니다.”
서울대 의대 재학 때 기자, 산악반 리더로 활동
대학 재학 때 김 교수는 대학신문 기자를 지냈다. 의대생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5년 동안 ‘펠리칸의 변’이란 칼럼을 매주 게재할 정도로 부지런한 필력을 과시했다.
이와 함께 서울대 문리대와 서울대 의대 산악부 창립멤버로서 주말마다 북한산과 도봉산에 바위 타러 가고, 방학 중에는 오대산, 설악산, 지리산, 태백산, 한라산으로 원정 산행을 하며 ‘많이 놀았다’고 했다. 당시 전국의 산은 거의 다 다녀봤고, 지리산과 한라산 산행 때는 빨치산이 있다고 해서 경찰 호위팀이 동행할 정도의 ‘등산 마니아’였다.
“1954년에 서울대 문리대 산악반을 처음 만들어 겨울에 오대산에 갔었습니다. 이 산행을 시작으로. 설악산 천불동도 우리가 가장 먼저 갔을 겁니다. 전에는 북한 땅이어서 갈 수가 없었지요. 그 후 서울대 전체 산악회를 결성하고 내가 회장이 되어 지리산 종주 하계등반도 했고요. 이렇게 대학 재학 중에 매주 열심히 등산을 하며 몸을 만든 것이 지금까지 건강을 지켜온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대학 졸업 후 김 교수는 일본 유학을 택했다. 형이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일본 교토대 의대 정신과에 갔더니 의국에 자리가 없다며 해부학교실에서 연구 좀 하고 오라고 하더군요. 그때 해부학교실에는 미국 텍사스대학에서 신경세포 배양을 공부하고 돌아온 오카모토 교수가 계셨어요. 그분은 뒤에 교토대 총장을 두 번 역임하셨는데, 그 분 밑에서 신경해부학과 신경생물학을 공부하다 기초의학에 몸을 담게 되었지요. 당시로서는 새로운 연구분야인 ‘시험관 속의 신경세포 배양’이 그렇게도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학위논문도 ‘신경세포의 세포 배양 연구’를 주제로 썼습니다.”
일본 유학 4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1966년 신경세포 배양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미국 컬럼비아대학 마가렛 머레이 교수 연구실에 가서 2년 반 동안 박사후 펠로우로 연구를 계속했다. 이후 1969년 캐나다 사스카치완대학에 부교수로 임용됐다.
“박사후 과정을 끝날 때쯤 비자 만료로 미국 밖으로 나가야 됐었는데 마침 사스카치완 대학에서 교수로 오라고 하더군요. 바로 그때부터 본격적인 기초의학자로 나서게 됐습니다. 본래는 레지던트 과정에 들어가 임상의학도 하고 싶었는데 연구하고 학생들 가르치다 보니 기회를 만들 수 가 없더군요.”
김 교수는 197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의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가 11년 후인1983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 의대 신경학 종신교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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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수명 백세시대' 출간기념식 ⓒ김승업 교수 제공 |
신경세포 배양의 세계적 권위자
김 교수는 세포 배양, 그 중에서도 특히 신경세포 배양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꼽힌다.
“성인의 망막세포를 세계 최초로 배양하는데 성공했는데, 의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성인 신경세포는 배양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도전을 한 것이지요. 사후 100 시간 이내 성인의 뇌에서 신경세포를 배양한 것은 내가 처음입니다. 또 인간 뇌의 휘돌기신경교세포를 처음으로 정제해 내는 등 신경세포 배양에서는 나름대로 업적을 냈습니다.
미국에서 연구하면서 남이 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어렵다고 모두 기피하는 사람의 뇌신경세포 배양 연구를 주로 했습니다. 하나 기억나는 것은 1989년 일본 후지타서점에서 일본어로 ‘신경조직배양법’ 저서를 2000부 출판했는데 교토대학의 후시키 교수가 그 책이 자기의 바이블이라며 칭찬을 하더군요.”
김 교수는 국내에서도 ‘신경과학’, ‘조직배양’, ‘신경조직배양’, ‘세포배양’, ‘알츠하이머병 치매’, ‘불로장수의 과학’, ‘인간수명 백세시대’ 등 여섯 권의 교과서와 교양서를 발간해 해당 분야의 필독서로 읽히고 있다.
김 교수의 연구열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에서도 계속 이어져 대학측은 김교수의 학문적 업적을 인정해 1988년 마리안느 코너 석좌교수의 영예를 수여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에는 월터 코너라는 사업가가 뇌질환 연구를 위해 부인의 이름으로 석좌교수 기금을 기부했는데 김 교수가 그 첫 명예를 얻었다.
김 교수가 국내 학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아주대 의대 뇌질환연구센터 소장 겸 석좌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 이 센터는 신경과학 분야 최초의 과학기술부 지정 우수연구센터로 지정 받았다. 김교수는 이곳에서 9년 동안 재직하며 우리나라 신경과학 연구의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키우고, 20명의 석•박사를 배출하는 외에 12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아주대 뇌질환연구센터를 우수연구센터로 지정받긴 했는데 처음엔 신경과학을 전공한 연구진이 별로 없어 애를 먹었습니다. 10년 가까이 제자들을 기르다 보니 좋은 인력이 많이 나왔지요.
이곳에선 불멸화한 인간 신경줄기세포에 유전공학적 기법으로 뇌질환에 대한 치료유전자를 탑재해 뇌질환 모델 동물 뇌에 이식한 다음 치료 효과를 검색하는 연구를 많이 했고, 연구성과도 좋아 논문도 많이 썼습니다. 이때 치료를 염두에 둔 연구를 하려면 아무래도 의학적 백그라운드가 있는 연구자가 필요하다는 걸 많이 느꼈지요.
첨단의학 연구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전임상과 임상을 함께 할 수 있는 연구중심체를 만들고, 여기에 임상의사로서 기초의학 연구능력을 가진 의사-과학자(clinician scientist)를 많이 길러야 합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의학연구자 육성프로그램(medical scientist training program, MD-PhD program)을 벤치마킹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이런 과정을 설립할 때가 됐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의학연구자 육성프로그램은 해마다 미국 의대 신입생 가운데 우수한 학생 6~7명을 선발해 전문의과정과 박사과정을 연계해서 공부와 수련을 하도록 하고, 그 7년 동안 의대와 대학원의 수업료 외에 매달 생활비를 지급해 향후 임상과 기초의학 연구를 병행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제도다. 1970년에 시작돼 현재 미국 의학연구의 중추를 이루는 많은 연구자가 이 프로그램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국내에서 의대 교수직을 희망하는 이들은 전공의 과정을 거치면서 석박사 과정을 함께 이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전공의 과정이 워낙 바쁘고 힘들어 석박사 과정에서 충분한 연구 역량을 쌓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와 별도로 개업의로서 박사학위(PhD)를 취득하는 의사도 있으나 연구 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보다는 대외용 ‘스펙 쌓기’라는 평가가 없지 않다.
일본인 제자들, 도쿄서 퇴임 기념강연회 열어줘
김 교수는 북미에서 활동한 30여 년 동안 62명의 후진을 양성했고, 이 가운데 24명이 한국인 연구자다. 또 아주대 뇌질환연구센터에서도 20명 정도의 석박사를 길러냈다. 연구 특성상 박사후 연구원을 주로 받아들여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이후에도 협동연구를 계속하는 제자들이 많다. 박사후 연구원 제자는 일본인이 40여명으로 가장 많은 편.
- 제자들 중에서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지요.
“외국제자들 중에서는 펜실베이니아 대학 제자인 에반 스나이더 교수가 먼저 떠오르네요. 내 밑에서 공부할 땐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는데 하버드로 가더니 좋은 연구성과를 내기 시작하더군요. 하버드대 교수 하다가 라호야의 샌포드 반함 의학연구소 줄기세포 연구책임자 겸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대학 교수를 겸하고 있습니다.
쥐에서 불멸화한 신경줄기세포주를 제작했고, 이후 나와 같이 인간 신경줄기세포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위스콘신 대학에서 유전공학을 하는 멧싱 교수가 있고, 일본 도쿄대 소아과의 미즈구치 교수, 도쿄도립연구소 뇌질환연구 책임자인 와타베 박사. 북해도대학 신경과의 키쿠치 교수, 시마네의대 신경과 나가이 교수, 한국인 제자인 워싱턴대학의 앤디 유 교수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경희대 의대 의학연구소장 오태환 교수, 서울대 의대 약리학 전공 김용식 교수, 삼성병원 신경과 이광호 교수, 전남대 의대 이민철 학장, 부산대 의대 백선용 교수, 가툴릭의대 신경과 이광수 교수, 아산병원 신경과 이종식 교수, 아주대 의대 신경과 주인수 교수와 김병곤 교수, 경희대 의대 진병관 교수, 아주대 의대 이명애 교수 등을 꼽을 수 있고, 현재 중앙대 의대에서 공동연구를 하고 있는 이홍준 교수, 최성식 박사, 아산병원의 홍석호 교수가 있습니다.”
- 여러 대학 및 병원 연구진과의 공동연구도 많은 편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에 와서 그동안 여러 후배들과 많은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의대 왕규창 전학장, 신경외과 김승기 교수, 김재용 교수, 신경과 노민우 교수, 윤병우 교수, 김만호 교수, 주건 교수, 서울대 치대 정필훈 학장, 순천향의대 비뇨기과 송윤섭 교수, 아주대 의대 서해영 교수, 충북대 수의대 김윤배 교수, 최경철 교수, 충북대 의대 방사선과 차상훈 교수, 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센터 이상래 박사 등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의대를 퇴임하신 2002년에는 일본 제자들이 퇴임기념 강연회를 열어주셨다고요.
“일본 교토대에서 학위 공부를 한 인연으로 일본인 선후배와 제자가 많은 편입니다. 2002년 5월에 일본 제자들이 중심이 돼서 일본 동경회관에서 퇴임 강연을 하고 파티를 열어주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제자와 선후배 합해서 한 60여명 정도 모였어요.”
김 교수는 그 해 신경과학 연구에서 쌓은 업적으로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새로 제정한 의학상을 받았다. 이후 서울대 의대 동창회는 2007년에 그의 학문적 업적을 기려 함춘대상 학술상을 수여했다. 김교수는 2003∼04년 한국 뇌신경과학회 회장, 2004∼05년 한국 조직공학-재생의학회 회장으로 선임돼 새로운 분야인 재생의학 발전에 노력하는 한편 2005년에는 한국줄기세포학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21세기 의학을 선도하는 분야가 재생의학과 CT, PET로 대표되는 영상의학인데 앞으로는 재생의학이 더욱 발전하는 분야가 될 겁니다. 환자 자신의 줄기세포를 활용하는 세포치료, 유전자치료가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요.”
“내가 만든 신경줄기세포로 난치병 완치하는 게 가장 큰 바람”
2007년부터 2년 간 가천의대 교수로 있다 2009년부터 중앙대 의대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 교수는 80을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서울 흑석동 중앙대 의대 연구실과 수원 영통의 자택 사이를 지하철로 오가며 부지런히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쓰고 계신 논문은 어떤 내용들인가요?
“네 개인데, 첫째는 뇌에 전이된 폐암을 치료하기 위해 자살유전자 탑재 신경줄기세포에 의한 유전자치료법으로서 한국의 뇌종양 가운데 가장 환자가 많고 난치성입니다.
둘째는 소아 리소좀 병에 대한 줄기세포 기반의 유전자 치료에 대한 리뷰, 셋째는 성인 간질환자의 뇌 수술시 추출한 뇌 조직에서 성인-유래 신경줄기세포를 분리하고 이를 불멸화한 세포주의 특성에 관한 논문, 넷째는 불치병인 췌장암에서 자살유전자 탑재 줄기세포에 의한 유전자치료법입니다. 10월 30일 현재로 점검해 봤더니 최근 몇 달 동안 제출하거나 출판 대기 중인 논문이 21개더군요.
흥미로운 논문 중 하나는 서울대 공대 현택환 교수가 만든 나노파티클을 신경줄기세포에 탑재해서 MRI로 추적해 보니 1년 후에도 추적이 되더라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신경줄기세포에 유전자는 물론 다양한 나노물질을 실어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가족 중에서 같은 길을 가는 분들이 있습니까.
“큰 아들이 펜실베이니아대학 의대를 나와 하버드를 거쳐 소아 종양 전문의로 일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변호사로 있고요. 무엇보다 내가 1960년에 의대 졸업하고 62년에 결혼해 계속 외국에서 학업을 수행했는데 자신의 희망을 접고 지난 50여년 동안 헌신적으로 내조를 해준 아내(홍명화)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 의학을 공부하는 후학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제 자신의 경험을 돌아볼 때 의학을 연구하더라도 임상의사-과학자(clinician-scientist) 즉 임상의학자가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환자를 진료하면서 연구를 병행하면 언제나 ‘이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면 병을 낫게 하고 생명을 구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의식을 가지니까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임상만을 하면 넓은 안목으로 보는 눈이 부족할 수 있어요. 따라서 교수건 연구원이건 의학연구를 하려면 2년 정도 기초 의생물학교실에서 리서치 트레이닝을 받은 후 임상수련을 받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거지요. 그것이 허송세월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될 겁니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바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연구를 계속하는 것이 평소의 희망”이라며, “특별한 소망이라면 내가 직접 개발한 인간 신경줄기세포주를 기반으로 한 세포치료와 유전자치료로 난치성 뇌질환 환자가 새 삶을 찾아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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