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일 토요일

자녀교육, 눈높이 교육에서 길을 찾다

시간 관리의 달인이자 자기계발 전문가인 공병호 박사. 그에겐 두 아들이 있다. 미국 라이스대 경제학과 4학년 민수(25)씨와 시카고대 경제학과 1학년 현수(21)씨. 둘다 각각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해 첫째 민수씨는 제대했고, 둘째 현수씨는 제대를 앞두고 있다. 공병호 박사는 두 아들을 군대로 보낸 후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엮어 최근 ‘군대 간 아들에게’를 펴냈다.

지난 5월 1일 공병호 박사와 마지막 휴가를 나온 현수씨를 만났다. 현수씨는 “아버지가 책에서 저희 이야기를 종종 하셨지만, 언론이나 방송에 직접 인터뷰를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라고 말했다. 짧게 자른 머리에 절도 있는 말투가 영락없는 군인이다.

현수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때부터 죽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으니 12년간 아버지와 떨어져 지낸 셈이다. 10년 이상 떨어져 지낸 기러기 가족. 어떤 모습이 상상되는가. 통상 처음에는 서로를 그리워하며 연락을 자주 주고받다가 차츰 각자의 생활에 젖어들면서 대면대면 지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소통의 장벽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공병호 박사 가족은 달랐다. 현수씨는 “아버지와 늘 함께 산 것 같은 기분입니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떨어져 있어도 중요한 판단의 순간이 오면 ‘아버지라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아버지는 이 행동을 좋아하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라고도 했다. 함께 산 시간보다 떨어져 지낸 세월이 더 긴데 아버지가 늘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는 현수씨. 공병호 박사는 현수씨에게 도대체 어떤 교육을 시켰을까?

비결은 ‘눈높이 대화’에 있다. 공병호 박사는 “떨어져 지낸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소통을 자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고 했다. 부자간 주요 소통 수단은 편지다. 떨어져 지낼 때에는 이메일로, 1년에 3개월 정도 한국에 와 있는 동안은 직접 대화로 소통한다. 그는 “아들에게 편지 보내기가 내 취미”라고 소개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두 아들에게 메일로 편지를 보내고, 1년에 세 차례 아들이 한국에 왔다가 떠날 때마다 만년필로 한 자 한 자 손편지를 써서 준다고 했다. 손편지는 대개 세 장 분량이다. 현수씨는 “아버지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떠날 때마다 손에 편지를 쥐여 주셨다”며 “한 통도 버리지 않고 모았는데, 서른 통이 넘는다”고 말했다.

자로 잰 듯 반듯한 이미지의 공병호 박사의 대화 스타일은 어떨까. 정해진 틀을 엄격하게 강요하지 않을까. 전혀 아니었다. 그는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등한 대화”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회는 서열이 엄격합니다. 아버지는 엄해야 하고,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하죠. 이런 태도로 아들과 대화하면 소통이 어렵습니다. 친구와 대화하듯 동등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버지의 생각을 끼워 맞추려 하면 진정한 대화가 안 됩니다. 열린 마음으로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그는 아버지 세대의 경험을 토대로 충고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부자간 충돌의 가장 큰 원인이자 대화를 망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는 눈높이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아들과 우호적 관계를 맺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들들과 진로 문제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지만 무엇을 하라거나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는 시대와 아들들이 사는 시대 사이에는 큰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회 경험을 충분히 이야기해 주되, 어떤 길을 선택하고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은 철저히 각자에게 맡깁니다.”

두 아들 모두 제대를 목전에 두었을 때 진로를 정했다. 공 박사는 “대학교 1학년은 모색의 시기이고, 3학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원하는 진로를 위해 밀어붙이는 시기”라고 말했다. 라이스대 졸업을 코앞에 둔 첫째 민수씨는 중국에서 사업을 할 예정이고, 시카고대 1학년 현수씨는 금융계에 진출해 세계적 스페셜리스트를 꿈꾼다. 현수씨의 1학년 성적은 상위 5%로 매우 뛰어난 편이라고 한다. 그는 “돈을 많이 벌면 장학재단 등 공부 쪽으로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공병호 박사의 부자간 대화 소재는 다양하다. 스마트폰이 미친 영향이나 트위터에서 불거진 이외수 혼외 아들 사건 같은 이슈, 최근 읽은 책이나 고전, 서로의 일상 이야기, 신문 기사 등을 넘나든다. 소설가 이외수의 혼외 아들 사건에 대한 부자간 대화에서는 나이에 대한 인식 차를 분명히 드러냈다. 이 건에 대해 둘은 긴 토론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아들은 이런 표현을 썼다. “마흔이 다 된 나이에 그런 실수는 큰 잘못 아닌가요?” 아버지는 이렇게 답했다. “아들아, 살아 보니 마흔도 애다.”

현수씨는 “아버지와의 대화 시간이 정말 즐겁다”며 방실방실 웃었다. “인간은 늘 공감하고 싶어합니다. 여자친구나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공감할 수 있지만 혈육을 나눈 아버지 어머니와의 공감의 힘은 훨씬 강력합니다. 저는 아버지의 반을 타고난 사람이지 않습니까? 친구들보다 아버지와 대화가 더 잘 통합니다.”

부자간 소통의 중요성에 대한 현수씨의 생각도 확고하다. 현수씨는 “대화는 내 생각을 인식시키는 게 아니라 인수해 주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인식(認識)은 상대방에게 그것이 진(眞)이라고 요구할 수 있는 개념이고, 인수(引受)는 단순히 건네받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볼 때, 대화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철학과 통한다.

부자는 소통에 대한 공통 지론이 있다. 대화가 처음부터 잘 통하는 사이는 없다는 것. 대화를 자주 해야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서 서로를 받아들이게 되고, 받아들이면서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 공 박사는 “다 큰 다음에 대화를 시작하려 했다면 대화가 안 통했을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로 만난 것이 아니라 남자 대 남자로 만나는 것이니까”라고 말했다.

공병호 박사는 무려 106권의 책을 냈다. 공병호 경영연구소의 소장으로 있으면서 원고 집필, 전국 특강, 공병호 자기계발 아카데미 운영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한다. 이런 와중에 어떻게 매일 두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수시로 심도 있는 대화를 할까. 그는 “인생은 우선순위의 문제”라며 말을 이었다.

“어제 부산의 CEO 대상 특강을 다녀왔습니다. 다들 너무 바빠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할 시간도 없고, 무슨 말을 나눴는지도 생각이 안 난다고 하더군요. 자식 농사는 분주하다고 소홀히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나의 입신출세와 자식의 성공은 별개의 개념입니다. 아버지는 너무나 훌륭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자녀들에게 신경을 안 쏟았다가 후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버지가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간은 짧습니다. 한 인간의 큰 틀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학 입학 전까지 어느 정도 완성됩니다. 사회적 관계를 미루고 아버지 역할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부모에게 받은 방식대로 하거나 정반대이거나. 공 박사는 후자다. 그는 아버지와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늘 아쉬웠고, ‘내가 아버지가 된다면 아들에게 꼭 이런 식의 대화를 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늘 아쉬웠습니다. 책을 통해 배우는 지혜와 아버지로부터 배우는 지혜는 다릅니다. 유대인들이 이런 식의 대화를 잘하죠. 교과서에는 안 나오지만 꼭 필요한 삶의 지혜가 얼마나 많습니까? 경험 속에서 얻은 깨달음과 가르침을 아들에게 전해주는 기쁨이 큽니다.”

현수씨는 “아버지와 한 시간 동안의 대화는 몇 권의 책과 몇 번의 삶을 거듭해 산 듯 알차다. 나를 잘 이해하시고 꼭 필요한 핵심만 뽑아서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시니까”라고 말했다. 부자의 대화의 끝은 늘 같다.

“아들아, 사랑한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전화 통화를 할 때나 메일로 편지를 주고받을 때나 절대 빼먹지 않는다고 한다. 공 박사는 “현수한테 배웠다”며 이렇게 말했다.

“경상도 남자라 그런 표현을 잘 못했는데, 아들의 말을 들으니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쑥스러웠는데 지금은 자연스럽습니다. 간단하지만 힘이 센 말이더군요. 아버지도 아들에게 배울 점이 많습니다. 나는 아들들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평범한 인간이고, 실수할 수 있으며, 특출나게 잘하는 분야가 없지만 그나마 노력을 통해서 이 정도까지 왔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공병호 소장의 TIP

나와 다른 아들의 생각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❶ “아버지 어릴 적엔~” 식은 No!
세상의 변화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환경은 천양지차다. “아버지 어릴 적엔 이러이러했는데, 너는 왜?~”라는 식의 대화는 반감만 불러일으킨다. 이런 식의 말이 나오는 순간 부자간의 동등한 대화는 불가능해진다. 두 세대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눈높이 대화의 시작이다.

❷ 이슈에 대해 토론할 땐 아들과 동등하게
하나의 이슈를 놓고 토론할 때에는 동등한 인격체로 대화를 주고받아야 건강한 토론이 가능해진다. 아버지의 생각을 먼저 말하거나 아버지의 생각을 아들에게 끼워 맞추듯 하는 대화는 진정한 대화가 아니다. 이슈를 던지고 아들의 생각을 먼저 물어 봐라.

❸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해 줘야
아들과 나는 하나의 이슈에 대해 정반대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아버지와는 다른 아들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대화가 이어진다. 그렇지 않고 아버지의 생각만 옳다는 신념으로 아들을 굴복시키려 하면 아들은 슬금슬금 도망가 버린다. 입장 차이만 확인하면서 아들은 점점 아버지로부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❹ 대화의 양이 엇비슷해야
교장선생님 훈화하듯 일방적인 연설을 한다면 아들과 대화를 원치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 양은 엇비슷해야 한다. 의도적으로라도 대화의 양을 맞춰라. 한 사람이 길게 이야기하고 넘기는 것보다 대화를 주고받는 간격이 짧아야 대화의 집중도가 높아진다. 아버지 10분, 아들 10분 식이 아니라, 2분 단위로 끊어서 하라.

❺ 다양한 소스를 활용하라
신문 스크랩이나 책, 명사들의 연설문 등 대화의 소스가 될 만한 것들을 평소 모아 둬라. 대화의 깊이가 훨씬 깊어지고 얻는 게 많아진다. 눈높이 교육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일방적 교육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시간이다. 소스를 활용한 대화를 통해 아버지도 성장해가고, 아들의 좋은 점을 적극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❻ 교육의 냄새가 나지 않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교육의 효과가 배가된다. 대놓고 “다음 토론의 주제는 ○○이다” 식으로 접근하면 공부처럼 느껴져서 아이가 도망가 버릴지 모른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재미있어야 눈높이 교육이 지속될 수 있다. 눈높이 교육은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이의 관심사, 최근 핫이슈 등에 대한 소재를 자연스럽게 꺼내 토론하는 습관을 들여라.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