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은 뭐고 수학교육은 뭐지? 의외로 이 둘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 꽤 된다. 학창시절 미적분의 아픈 추억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한데 더 알아내야 할 수학이 남아 있다고? 유독 수학에서 이런 혼란이 불거지는 걸 보면 ‘초중고교에서 배우는 축적된 수학적 지식을 전수하는 것 말고는 수학자들이 더 할 게 무에 있으랴’라고 식자들조차 단단히 믿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인류의 수학적 지식은 대양의 물 한 방울 같아서 수학자들은 새로운 이해에 다다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수학교육자들은 이렇게 축적된 방대한 수학적 지식을 사회적 문화적 필요에 따라 분류하며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을 한다. 이런 방식은 수천 년간 지속돼 왔는데 고대 그리스의 철학계보에서는 산술과 기하를 최상위 과목으로 여기고 교육의 중심으로 삼았다. 중세 대학에서는 산술 기하 천문 음악의 상급 네 과목을 가장 중요시했고 2세기경의 중국 책인 구장산술에도 피타고라스정리나 파이 값 계산 등이 나온다.
수학은 그 시대 신념체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 무(無) 또는 공(空)을 뜻하는 ‘0’의 개념을 인류가 찾아내는 데 장구한 시간이 걸렸다. 세는 것과는 다른 수준의 철학적 사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13세기에 와서야 ‘0’의 개념이 소개됐고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6세기 이후다. 선사시대에도 사냥한 짐승을 세는 수의 개념이 있었지만 ‘0’의 개념은 없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쯤에 오면 곱셈을 위한 구구단도 있었고 나일 강의 홍수를 겪으며 측량을 위한 기하학도 발전했지만 여전히 ‘없음’의 개념은 없었다.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이 산술과 기하를 논했고 2000년 동안 기하학의 핵심이었던 유클리드 기하학이 만들어진 고대 그리스에서도 ‘0’의 개념은 출현하지 않았다.
반전은 힌두교에 기반을 둔 인도문명에서 일어났다. 인도문명은 무(無)의 개념을 8세기경에 쉽게 발견했고 이를 사용해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만들어냈다. 사실은 인도 숫자인데 이슬람교도에 의해 지중해 지역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지는 데 800년 이상 걸린 탓으로 인도아라비아 숫자로 불린다.
‘0’의 출현이 왜 이리 힘들었을까? 힌두 철학은 무의 개념을 쉽게 발견했지만 ‘충만함의 신학’이 유행하던 십자군시대 기독교에서는 ‘비어 있음’의 개념이 설 자리가 없었던 탓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었음에 주목하고 죽음에서 깨어나는’ 신학적 각성과 함께 르네상스시대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그리스 및 아랍 문헌 번역작업이 상호작용하면서 ‘0’의 개념은 유럽에 소개되고 받아들여졌다. 이는 철학과 신학의 방향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서양 수학이 ‘0’을 받아들인 지 500년이 지났다. 21세기 수학은 높은 수준의 암호를 만들어 인터넷 상거래를 가능하게 했고 방대한 화상데이터를 압축하는 이론을 만들어내 화상채팅시대도 열었다. 이제 수학은 사유의 도구이면서 기후 예측이나 단백질구조 예측 문제에 답을 주고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도 한다. 이미 만들어진 수학적 지식의 전수 및 교육뿐만 아니라 날마다 새로 출현하는 문제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하고 답하는 게 국가경쟁력의 척도가 됐고 수학 연구와 수학교육이 같이 가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전 세계 4000여 수학교육자가 참여하는 국제수학교육대회가 곧 서울에서 열린다. 사유의 도구로서 논리적 사고의 형성을 돕는 기능부터 국가경쟁력의 원천으로 첨단 정보기술(IT)과의 융합까지, 방대한 수학교육의 화두를 다루며 한 단계 도약하는 성공적인 대회를 기대한다.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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