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31일 토요일

우아한 가난뱅이로 사는 법

조선일보
불행이 때로는 행복의 가면을 쓰고 다가오듯, 행복은 짓궂게도 불행으로 변장해 나타나곤 한다. 독일 귀족 출신 언론인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사진> 백작도 그랬다. 대량 해고 사태로 직장을 잃고 생계 유지에 골몰했다. 그랬던 이 남자가 말한다. 가난은 불행의 동의어가 아니라 생활 방식을 세련되게 할 기회라고. '빈민화'의 시대. 우아하고 유쾌하게 가난을 맞아들이는 법은 무얼까.
 

한때 하층민 전락한 '독일 백작 저널리스트'… 가난에 대처하는 법 화제

'新 우아한 가난' 설파
가진 것보다 덜 원하면 부자… 가진 것보다 더 원하면 가난
품위를 잃어버리는 건 최악

직장서 퇴출 밑바닥 생활
500년전 독일 영주의 후손… 아내는 英여왕 친척인데
집기 팔아서 끼니 때우기도… 현재 왕실 전문기자로 활약

나의 우아한 삶
외식 대신 집에서 밥해먹고… 피트니스센터서 돈쓰는 대신
자연에서 우아하게 걷고…
계단 많은 산동네에 살면… 심장질환 예방에 최고인 걸

망하더라도 의연하게!
만원 지하철 타는 게… 불쾌하다는 이들이여,
그게 나이트클럽 이라면… 기분좋은 밀착감이지 않나

家訓은 '현재를 즐겨라'
만족은 현재에서만 가능
미래엔 행복할거야 한다면… 영원히 만족못한다는 의미

 
왜 이리 곤궁한지 모르겠다. 직장을 못 잡는 이들은 수두룩하고, 직장이 있다 해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두려움에 빠져 산다. 월급? 통장에 점만 찍고 나간다. 빠져나가는 돈은 점점 늘어나는 것 같고, 삶은 점점 비루해지는 것 같다.

서점에 가면 한편에선 '부자 되는 법' '재테크의 신' '성공의 비결'이라는 책이 늘어져 있고, 또 한편에선 '좌절하는 이들을 위한 힐링(치유) 비법'을 적어놓은 책들이 판을 친다. 그야말로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하는 지경이다.

그러한 시점에 '가난을 받아들이라'는 이가 있다. 그것도 '우아하게'. 독일의 몰락한 귀족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44·von Schoenburg·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입으로 내뱉기 어려웠던 문제를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이라는 책을 통해 경쾌한 문체로 전달한다. "자원 고갈의 시대, 대량 해고가 사회 조류가 되는 경제 불황의 시대에, 가난을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규정하고 가난과 함께 우아하게 생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말한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가난, 즐겨라!"

그는 퇴근길에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아이폰에 온종일 얼마를 썼는지 기록하는 앱을 깔았다. 지금이 여기 시각으로 오후 6시인데, 아직까지 한 푼도 안 썼다. 자전거로 30분을 밟으면 출퇴근이 가능하니 교통비도 아끼고, 피트니스 센터 갈 돈도 아꼈다. 점심은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어때,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사실 그의 배경만으로 보기엔 가난과 거리가 멀 것 같다. 500년 전 독일의 한 지역을 다스리던 영주의 자손으로 수 세기 동안 서서히 몰락했다고는 하지만 '백작'이라는 칭호를 여전히 간직하는 이다. 기자 출신으로 잡지사 편집장 경력도 있다. 현재는 독일 유력지 '빌트'의 '왕실 전문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의 누이는 대부호와 결혼해 1조원이 넘는 자산을 자랑한다. 그의 아내 이리나 폰 헤세-카셀 공주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종손녀이다. 왕실의 핏줄이 흐르는 것이다.

그런 그가 '가난'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배부른 자의 궤변'같이 들릴 수도 있다. 그는 전화 통화에서 "완전히 그 반대"라고 했다. 전화와 이메일로 이야기를 나눈 그는 "우리 부모는 거의 무일푼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한지라 난 평생 가난에 친숙해 왔다"며 "2002년 신문사에서 갑자기 해고되고 실업급여 없이 살며 하층민의 세계로 편입된 뒤 어떻게 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결국 이 글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2005년 독일에서 발간된 이 책은 독일에서만 30만권이 넘게 팔렸고, 국내에선 2006년 발간됐다 최근 재발간됐다.

 우아한 가난뱅이로 사는 법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가난'에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저서 '경제학의 향연(Peddling prosperity)'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전 세계적인 '기대 체감'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폰 쇤부르크는 "이제 가난이란 단어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신(新) 우아한 가난(Nouveau pauvre chic)'이라는 말을 들고 나왔다.

―우아함과 가난함이라는 게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당장 먹을 것도 없는데 어떻게 우아함을 내세우는가.

"우아함이 왜 돈이 드는 일이라 생각하는가. 내가 책을 쓴 것도 당신 같이 말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널려 있어서 그랬다. 경제 불황이 닥쳐오자 사람들은 '가난하고 불행하다'며 불평만 해댔다. 너무나 지겨웠다. 소비를 줄이는 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삶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존감을 포기해 버리고 품위를 잃어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가난이다."

―소유욕을 버리란 말인가.

"난 무언가를 바라고 소망하는 걸 멈추라 말하지 않는다. 수도승처럼 살라는 게 아니다. 문명화라는 건 우리의 욕망 때문에 일궈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구석기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사치품을 신분의 상징으로 삼는 이들을 굳이 욕하거나 경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것들이 신분의 징표로 여겨지는 건 그 사회가 불안정하다는 방증이다."

그는 비슷한 관점에서 '너도나도 휩쓸리는 관광 여행'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관광 여행이란 낱말은 1810년 독일어 사전에 처음 등재됐을 때부터 조롱의 대상이었다. 허둥지둥 다니는 건 과거 파발꾼과 상인, 순례자, 노상강도 등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었다.

이것이 '관광'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건 권태에 찌들고 사치에 물든 영국 부잣집의 하릴없는 셋째 혹은 다섯째 아들들이나 하던 속물 짓을 시민 계급이 흉내 내면서 퍼진 일이다."

◇자신만의 '규율'을 만들어 가난에 무너지지 말라
2002년 해고 직후 그는 가족을 어떻게 먹어 살릴지 몰랐다고 했다. "내 상황을 극복하려고 아등바등하면 할수록 되는 일은 없고, 잠은 안 오고 스트레스는 쌓이고 심장은 타들어가는 듯했다. 마지막에 도달했다 생각한 순간, 두 팔을 벌리고 가난을 맞아들였다. 신기한 건 그때부터 내 생활은 나아졌다."

―해고당했을 때가 인생 최악의 시기라고 했는데, 어떻게 극복했는가.

"심적인 불안함을 극복하게 된 건 사실 내 아내의 공이 크다. 전 세계 수없이 많은 귀족과 부호들을 만나봤지만 내 아내처럼 우아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직장을 잃고 돌아온 그날 내 아내는 바가지를 긁는 대신 어린 시절 내가 즐겨 먹던 감자 수프를 해줬다. 바가지 긁는 아내는 전 세계 공통적인 현상 아닌가! 그런 점에서 난 행운아였다. 집에 있는 집기들을 팔아 우선 끼니를 해결하는 순간에도 아내 입에서 불평 한마디 안 나왔다. "

―당신만의 '우아한 가난'이란?

"해고됐을지언정 언제든 친구를 불러 식사에 초대할 수 있는 마음이 풍족함을 갖는 것. 식사 시간 내내 야단법석을 떨면서 음식을 날라 대는 것처럼 천박한 것도 없다."

그는 '우아한 가난'을 효과적으로 실천한 이로 그의 삼촌인 니아리 지그문트 백작을 예로 들었다. "네 자녀와 함께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방 두 개짜리 집에서 사는 삼촌 부부네는 그 어떤 부호보다 아늑하고 풍요롭게 느껴졌다. 낡고 금이 갔지만 아름다운 찻잔에 담긴 차 한 잔 덕에 그 집은 동네 사랑방이 됐다. 베를린 사교계의 '뜬 별'이라는 어떤 집에서 본 베르사체 식기의 거북함과 어울리지 않는 꽃 장식, 과도한 향수 냄새에 질식할 뻔했던 나에게 삼촌네는 우아함의 표상이었다. 삼촌은 집에 혼자 있어도 양복에 넥타이를 고수했다. 가난해도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삼촌만의 규율이었다."

그도 자신만의 '규율'을 만들었다고 했다. 실직한 뒤 집에서 '놀면서' 서재를 회사로 만든 것이다. "서재는 나의 완벽한 피신처였다. 문을 닫으면 아무도 들어오지 못했다." 그는 긴장감을 주기 위해 넥타이를 착용해봤다고 했다.

"언제 돈이 들어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프리랜서 언론인'였지만 가장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우리 가족이 응원해줬던 이 같은 규율 덕분이다."

◇헝가리의 유머와 영국의 언동을 배워라
'역사적으로' 가난해졌다는 그는 가난해지는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나라로 헝가리와 영국을 예로 들었다. 그는 책에서 "수많은 패배와 굴욕을 당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헝가리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나라에서 한순간에 쇠락했음에도 자부심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의 도량은 남다르다"고 했다.

오스트리아, 소련 등에 지배받았던 헝가리의 역사는 항거와 투쟁으로 점철된다. 하지만 그들은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고조부 이슈트반 세체니 백작을 언급하면서 "그는 귀족의 면세권을 제한하는 등 자신이 속한 귀족 계급의 특권을 버렸고, 대농장의 연수입을 모두 학술원에 헌납했다"고 말했다. 기존 귀족의 반발로 당시 정치적인 패배를 맛봤지만 결국 역사는 그를 승리자로 평가했다는 것이다.

폰 쇤부르크는 "19세기 이후 급격히 몰락한 영국 상류층들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시민 계급이나 무산 계급의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보수가 적은 일에도 개의치 않았다"며 "건전하게 돈을 경멸하는 교육을 잘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보코프처럼 마음먹고, 비트겐슈타인같이 절제하라
그는 "망해도 의연할 수 있는 것이 우아함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유머는 돈 없이도 갖출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이다. 당신이 수조원대의 자산가라 할지라도 여유와 유머를 잃는 순간 고약하고 인색한 하층민에 지나지 않는다."

폰 쇤부르크는 '바랄 만한 생활 태도'를 보인 이로 소설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들었다.

"책에서도 썼지만 러시아 귀족 출신인 나보코프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누구보다도 영민하게 이용한 사람이다. 독일 베를린 망명 시절 집이 너무나 좁아 욕실에서 글을 쓰고, 끼니를 겨우겨우 해결하면서도 재기 발랄함은 잃지 않았다. '거리를 걷다 구두 밑창 사이로 축축한 기운이 느껴질 때의 그 도도한 행복함이라니….' 난 그가 남긴 이 문장을 너무나 사랑한다.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그걸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유명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보여준 절제 역시 눈여겨봄 직하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난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유산을 주변에 나눠주고, 철학 교수직을 마다하고 산골 초등학교 교사로 지원하기도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포기의 미학'을 보여준 대표적인 이다. 해진 옷을 입고 단출한 식사를 했다. 물론 그의 삶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일부 귀족적 오만이 깃들여 있긴 하지만, 철저한 절제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2008년부터 독일 유력지 빌트의 왕실 전문 기자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폰 쇤부르크가 2년 전 빌 게이츠를 만나 인터뷰 하는 모습이다.
‘우아하게 가난해지기’란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오른쪽)는 그 성공으로 직장도 다시 얻고 명성도 쌓았다. 2008년부터 독일 유력지 빌트의 왕실 전문 기자 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폰 쇤부르크가 2년 전 빌 게이츠를 만나 인터뷰 하는 모습이다. 기자로서 다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폰 쇤부르크가 직접 골라 보내줬다. / 사진작가 Daniel Biskup 제공
◇현재를 받아들여라
폰 쇤부르크는 18세기 일본 선승 하쿠인(白隱)의 '자족(自足)'을 예로 들면서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충고했다. "나보코프의 경우도 가난한 망명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그저 부유한 나비 채집가로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삶은 때때로 당신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누가 그러는가? 삶이 쉬운 것이라고. 내 아버지는 소련 공산주의자들에게 재산을 모두 갈취당했고, 어머니는 스탈린 치하에서 피신을 다녔다. 그래도 끝까지 자기 존엄을 잃지 않았다. 그런 것이 궁극의 우아함이다."

그는 '받아들임의 미학'을 실천하는 이로 프랑스 3대 명문가 중 하나로 꼽혔던 몽모랑시 일가의 이야기도 전했다. 몰락해 현재는 그 이름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 "그 가문의 후손 중 일부는 현재 프랑스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아름다운 건 자신의 역할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 구획을 나눠 남들보다 더 빠르고 깨끗하게 거리를 치운다. 일을 유희로 받아들이며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좀 더 인생을 살아보려고 한다. 자신의 신분을 탓하며, 자신의 비루함을 슬퍼하며 심지어 자살한다? 살려고 하는 의지가 없는 것만큼 가난한 것도 없다."

그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려는 충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계적인 무기 거래상 아드난 카쇼기를 만났을 때 그 절정을 느꼈다. 다른 이가 가진 자가용 제트기를 보고는 거기에 모든 신경을 쏟는 것 아닌가. 세상에 욕심이라는 건 끝이 없고 절대 부자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당신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바로 '만약 미래에 무얼 가진다면, 혹은 무언가 나아진다면, 난 행복해질 수 있어'란 말이다. 완전히 쓰레기 같은 말이다. 만족이라는 것은 '현재'에만 일어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언젠가 미래엔 행복할 거야'라고 한다면 당신은 영원히 만족할 수 없다."

◇기본으로 돌아가라
폰 쇤부르크의 '우아한 삶'에 대한 지론은 의외로 간단한데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비싼 외식 대신 집에서 밥을 해 먹고, 쓸데없이 피트니스 센터에서 돈을 낭비하느니 자연 속에서 우아하게 걸으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산동네 옥탑방에 산다고 기죽을 필요가 없다. 계단 오르기는 심장 질환을 예방하는 최고의 방법인데, 돈 들이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다. 만원 지하철에서 개미떼가 우글거리듯 타는 게 불쾌하다고 하는 이들, 그 불쾌감이 나이트클럽에선 '기분 좋은 밀착감'이라고 불린다. 그 얼마나 상대적인가."

―당신이 말하는 대로 살고 있는데도 삶은 전혀 우아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외식비도 줄이고, 집 크기도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모든 잡다한 지출을 줄이는데 우아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사는 게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진정 삶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인간이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건 남과 비교하면서부터다. 삶에서 가장 큰 도전은 바로 우리 머릿속에 있는 것이다. 당신을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 건 그 어떤 물건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생각이다."

―당신이 말하는 부자의 기준은 무언가.

"아주 간단하다. 네가 가진 것보다 덜 원하면 부자이고, 네가 가진 거보다 더 원하면 가난하다."

폰 쇤부르크는 "취향을 저하하는 최대 공신은 단언컨대 돈"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취향이란 가진 게 없을 때 제대로 드러나는 법"이라고 말했다. 미적 감각이 결여되고 내면의 허전함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은 그저 돈이면 해결되는 온갖 디자이너 브랜드 제품을 집안에 '전시'해 놓고, 그것이 자신의 천박함을 상쇄시켜줄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당신이 말하는 '고급스럽다'는 취향은 무언가. 솔직히 인간에게 약간의 과시욕이란 있지 않은가.

"그렇다. 대개 졸부가 그렇듯 갑자기 돈벼락을 맞게 되면 그걸 자랑하고 싶어한다. 진짜 부자는 그들이 무슨 브랜드를 입고, 무슨 와인을 마시는지 자랑하지 않는다. 품위있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네 뒷산을 오르는 데 비싼 옷과 첨단 장비가 웬 말이냐. 화보를 그대로 흉내 낸, 흉물스럽게 화려한 옷과 장비로 치장한 이들이 우리의 아름다운 녹지대를 점거하는 건 천박하기 짝이 없다. 이런 낭비가 적을수록 취향에 대한 자신감을 증명한다. 스스로를 되돌아봐라. 돈이 없다고 불평하면서도 쓸데없이 돈을 소비하지 않는가? 소비를 줄인다고 대형마트에서 싸구려 와인을 사는 것? 1+1 세일이니까 하나 더 사야 한다고? 그게 현명한가? 입맛을 버릴 바엔 아예 안 먹는 게 낫다."

◇절제의 미학을 가르쳐라
세 아이를 둔 폰 쇤부르크는 자녀에 대한 적절한 '결핍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도 역설했다. "요즘 부모들은 아무리 돈이 없어도 자녀에만큼은 모든지 다해주려고 한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다 받은 아이는 무엇이든 갖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를 전혀 억제할 줄을 모른다. 스스로를 조절하고 자기 중심을 세워야 하는 법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가 실직했을 때 그의 딸은 유치원에 다녔다고 한다. 한창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것이 많을 때였다. "광고의 홍수 속에서 우리 아이를 보호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내 아들은 4세 때 이미 비디오게임에 빠졌고, 내 휴대폰을 가지고 놀았다. 딸은 크게 소유욕은 없어 보였지만 인형에 대해서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수퍼마켓에서 장 보는 걸 '경마'에 빗대 놀이로 변모시켰다. "필요한 목록을 써 놓고 그걸 재빠르게 골라내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게임이다. 아이들이 사고 싶은 장애물을 뛰어넘어 목표를 달성하는 데서 쾌감을 느꼈다. 어느 정도의 당근은 필요했다. 그들의 재빠름을 한껏 칭찬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작은 놀이가 소비의 유혹에 저항하는 힘을 길러주기도 한다."

그의 가훈은 '현재를 즐겨라'다. "나의 최대 '럭셔리'는 현재의 순간을 정말 제대로 즐기며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다. 며칠 전 운전을 하다 아주 아름다운 호수를 보게 됐다. 차를 세우고 내 딸과 함께 수영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와 진짜 아름다운 호수네. 언젠가 이곳에 다시 와서 휴가를 보내야지' 순간 갑자기 깨달았다. '아! 얼마나 어리석은가! 수영을 즐기는 것 대신에 언제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일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니!'"

'우아한 가난'을 설파하고 난 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부자가 됐다. 삶을 얼마나 바뀌었을까.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내 생활 규율은 이렇다. '소 100마리를 갖고 있다면 10마리 가진 것처럼 살라. 만약 10마리 갖고 있다면 1마리 가진 것처럼 살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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