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6일 월요일

동양고전에 묻다 리더십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바짝 다가왔다. ‘통합의 리더십’ ‘소통의 리더십’ 등 향후 한국을 열어갈 지도력에 시선이 몰리고 있다. 중앙일보와 플라톤아카데미가 함께하는 ‘동양고전에 묻다’의 이번 주제는 ‘리더십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다. 성격이 전혀 다른 우리 고전 두 권을 골랐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이다.

[정약용이 답하다]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모두 따른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단국대 석좌교수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렸던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 하지만 일부 학자들 이외에 그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특히 당파도 다른 노론계의 연천(淵泉) 홍석주·대산(臺山) 김매순·추사(秋史) 김정희 등 당대의 큰 학자들은 다산의 깊고 넓은 학문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썩어서 망해가던 나라의 일반 사람들은 그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진리란 묻힐 수 없고, 큰 학문은 언젠가 진가를 알아주는 세상이 오기 마련이다. 철종 말엽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나고 삼정 문란의 폐해로 백성들이 신음하자 재야 학자들이 나라를 건질 방책을 임금에게 올리는 기회가 있었다. 이때 독창적인 성리학자로 온 나라에 큰 이름을 날리던 호남의 대학자 노사(蘆莎) 기정진은 나라를 건질 방책이 다산의 『목민심서(牧民心書)』라는 책에 들어있노라고 임금에게 알렸다.

 그러나 임금이나 당론자들은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목민심서』는 소문을 타고 민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각 고을 수령들은 다산의 『목민심서』『흠흠심서(欽欽新書)』에 주목했다. 고을을 다스리는 실현성이 높은 책으로 여겼다. 책을 서로 필사하며 중요한 참고서로 삼았다. 매천(梅泉) 황현의 『매천야록』에 기록된 얘기다.

다산 정약용
2010년 미국에서 『목민심서』가 영역됐고, 탄생 250주년을 맞은 올해에는 유네스코에서 다산을 역사적으로 기념할 인물로 선정했다. 교육·문화·과학을 통해 각국의 상호이해와 평화를 이룩하자는 유네스코의 정신에 다산의 사상과 정신이 부합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목민심서』가 오늘에도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만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현대사회가 가장 갈구하는 일은 올바른 지도자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어느 사회나 국가도 훌륭하고 자격이 충분한 지도자가 있을 때만 그 장래가 밝다. 『목민심서』의 첫 페이지는 ‘다른 벼슬이야 구해도 좋으나 통치자의 벼슬은 구해서는 안 된다(他官可求 牧民之官 不可求也)’라고 정확하게 못박고 있다.

 목민관(牧民官)이야말로 한 지역의 3권을 손에 쥔 통치자로서 작은 나라의 제후(諸侯)와 같다는 의미에서 ‘통치자’로 번역했다. 뭇사람의 추대나 정당한 공거(公擧)제도에 의해서 추대되거나 선정되는 것이 목민관의 지위이지, 자신이 권력의 탐욕 때문에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벼슬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객관적인 검증이나 다양한 평가를 통해 지도자로서 덕목이나 능력이 있다고 인정될 때만 목민관의 지위에 올라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맞고 있는 대통령선거에서 훌륭한 지도자를 고르는 일과도 직접 연결된 것임을 여기에서 알게 된다. 겸양의 미덕을 갖추지 못하고 자기만이 가장 똑똑하고 가장 잘났으며 가장 훌륭하다고 떠드는 사람이 진짜 지도자의 자격을 갖추었나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목민심서』가 요구하는 목민관의 덕목은 인격과 솔선수범이다. 그래서 다산은 『논어』의 ‘자기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행해질 것이요, 자기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아무리 명령을 내리더라도 따라주는 사람이 없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라는 대목을 인용하며 지도자 자격의 대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가장 바르고 공정하게 행동하는 인격을 지녀 모든 사람 먼저 자신이 가장 옳게 행동하는 지도자라야만 진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고, 진정한 리더의 자질은 바로 그런 데서 나온다는 뜻이다.

 오늘의 젊은이들이 『목민심서』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무한한 지식과 능력을 몸 속에 쌓아두고 남들이 추대해주고 밀어주는 지도자의 인격을 지녀야 하고, 자신이 옳고 바를 때에만 진정한 리더십이 나오는 것이지, 하고 싶어서 하는 벼슬, 자신은 그렇지 못하면서 남들만 깨끗해야 한다고 소리치는 지도자는 리더도 아니고 진정한 권력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목민심서』는 진정한 지도자를 희구하는 모든 젊은이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단국대 석좌교수

[혜경궁 홍씨가 답하다]
바람 잘 날 없던 궁궐 … 절대권력은 절대고통이다


정병설
서울대 교수·국문학
고전은 대개 잘 읽히지 않는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 와 닿지 않으니 재미가 없다. 고전에는 온통 이래라저래라 하는 충고와 교훈뿐이다. 인간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과연 고전을 쓴 사람도 자기 말을 제대로 지키고 살았을까 싶다. 의심이 이 지경에 이르면 고전이 혹시 거짓을 담고 있지나 않은지 하는 의혹이 생긴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거짓에서 배울 것은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중록(閑中錄·恨中錄)』은 독특한 고전이다. 교훈이라고는 없으며 오히려 욕망·시기·증오·비난 등 인간의 부정적인 모습들로 가득 차 있다.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1735~1815)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한 글이다. 혜경궁은 조선 제21대 임금인 영조의 며느리이자 정조의 어머니다.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서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부인이기도 하다. 혜경궁은 열 살 어린 나이에 궁궐에 들어가 20대 청춘 시절에 남편을 잃었고, 40대 초반에는 왕위에 오른 아들이 친정을 공격하는 아픔을 겪었다. 또 60대 중반에는 정치적 반대파인 정순왕후가 집권하면서 시련을 겪었다. 한평생 궁궐에서 호사만 누릴 것 같은 세자빈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궁궐에 처음 들어가 만난 시아버지 영조는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을 엄격히 나누는 성격을 지녔고, 또 종종 불같이 화를 내는 공포의 임금이었다. 누구도 그의 눈 밖에 벗어나 편히 살 수 없었다.

 그런데 남편이 그 눈 밖을 벗어나버렸다.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세자는 아버지가 너무도 두려워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마침내 미쳐버렸다. 사도세자는 말년에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칼로 죽였다. 어떤 날은 내관의 머리를 잘라 피가 뚝뚝 흐르는 것을 혜경궁에게 들이밀기도 했다. 혜경궁의 결혼 생활은 불안과 공포의 연속이었다. 혜경궁은 속으로 남편이 죽었으면 했다.

 마침내 남편이 죽었다. 다행히 시아버지는 손자까지 해치지는 않았다. 혜경궁은 아들이 임금의 자리에 오를 날만 기다렸다. 남편을 통해 얻지 못한 권력 성취의 기쁨을 아들을 통해 얻고자 했다. 그런데 뜻밖에 정조는 등극하자 바로 외가를 치기 시작했다. 정조는 왕권을 공고한 자리에 올려두자면 외가라도 쳐내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권력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외척 공격에 인정사정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런 똑똑한 아들을 둔 바람에 혜경궁은 친정이 몰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친정의 오빠와 아버지가 연거푸 죽고 말았다. 이 무렵 혜경궁은 얼마나 화가 치밀었는지 등이 뜨거워 바닥에 누워 자지를 못했다고 했다. 벌떡 일어나 앉아 벽을 두드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기를 몇 년이나 했다.

 정조는 말년에 외가를 감싸 안는 조치를 취했다. 환갑이 다 된 노년의 혜경궁도 마음이 약간 풀렸다. 그런데 얼마지 않아 정조가 쉰 살도 넘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정조가 죽은 후 혜경궁 친정의 정적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했다. 혜경궁 친정은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친정 동생이 정순왕후 측의 공격으로 천주교 신자라는 혐의까지 얻어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

 혜경궁의 70여 년 궁궐 생활은 말년 10년을 제하면 바람 잘 날이 없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밖으로는 절대 권력이었지만 속으로는 절대 고통이었다. 혜경궁의 오빠 홍낙인은 평소 “집을 보전하려면 음직(蔭職)으로 주부나 봉사 따위의 하찮은 관직이나 맡는 것이 복을 길이 누리는 것이니, 마누라께서는 본집 잘되는 것을 기뻐 마소서”라고 말했다고 한다. 혜경궁은 처음에는 이 말을 웃어넘겼다. 그러나 나중에 집안이 망한 다음에 그 말이 ‘밝으신 말씀’임을 깨달았다.

  『한중록』은 교훈이 거의 없는 고전이다. 정치권력 속에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하느님은 미운 사람을 벌 줄 때 그 마음에 야심을 심는다는 말이 있다. 야심은 파멸의 길이다. 올라갈 때 내려갈 것을 생각하고, 잘 될 때 몰락할 것을 생각하라는, 권력의 교훈을 『한중록』은 교훈으로 말하지 않고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정병설 서울대 교수·국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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