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6일 월요일

동양고전에 묻다 왜 지금 다시 상상력인가

 
이백이 답하다 … 현실의 좌절 딛고 일어설 힘, 시에서 찾았다
창의성이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무엇인가를 만드는 힘, 그것은 바로 상상력에서 시작합니다. 비단 문학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스티브 잡스는 남의 것을 베끼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중앙일보와 플라톤아카데미가 함께하는 ‘동양고전에 묻다’의 이번 주제는 ‘왜 지금 다시 상상력인가’입니다. ‘시선(詩仙)’ 이백을 살펴봅니다.

이영주
서울대 중문과 교수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와 세계 사이의 장벽,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는 순간 우리는 탈출 욕구를 느낀다. 그렇다고 무작정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누구든 자신만의 도피처를 찾게 된다.

그런데 도피는 도박·중독 같은 세상과의 절연이 돼서는 안 된다. 돌아올 곳이 있는 짧은 여행이면 좋을 것이다. 그중 가장 쉬운 방법은 상상이다. 상상 속에선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시의 신선’이라 불린 이백(李白·701~762)은 상상의 대가였다. 그는 상상 속에서 불가능한 것을 꿈꾸었고, 신선 세계를 노닐었다. 그렇다고 단순한 현실 도피는 아니었다. 그는 상상 속에서 현실의 좌절을 딛고 일어섰다.

청대(淸代)화가 황균의 ‘이백행음요월도(李白行吟邀月圖)’.
이백 역시 좌절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았다. 상상의 공간에서 끊임없이 이상을 확인했다.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며 시공간을 초월했다. 비록 현실에선 술을 같이 마실 사람도 없이 처량하게 독작(獨酌)을 했을지라도 시에서는 달과 자신의 그림자를 초대했다.

‘술잔 들어 저 하늘의 밝은 달을 불러오고, 그림자를 마주하니 세 사람이 되었네. … 내가 노래하면 달 서성이고, 내가 춤을 추면 그림자 함께 어른거린다.’

이백의 유명한 ‘월하독작(月下獨酌)’이다. 그는 초라한 술주정뱅이가 아니다. 그는 상상으로 자신을 구원했고 바로 세웠다.

사실 쓰디쓴 삶에 술맛조차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백도 그랬다.

‘칼 뽑아 물을 잘라도 물 그대로 흘러가고, 술잔 들어 근심 씻고자 하나 근심 더욱 깊어만 지며.’(‘宣州謝眺樓餞別校書叔雲· 선주사조루전별교서숙운’)

‘금 동이에 만 금짜리 청주가 가득하고, 옥쟁반에 만 전짜리 진수성찬 넘치건만, 먹을 수가 없어서 잔 멈추고 젓가락 던지며, 칼을 뽑아 둘러보니 마음만 아득한”(‘行路難 其一·행로난 기일’)

그럴 때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한가로이 냇가에 앉아 낚시를 드리우다, 홀연히 또 배를 타고 태양 곁으로 가는 꿈을 꾼다. 갈 길이 험하도다. 갈 길이 험하도다. 갈림길이 많은데 지금 어디 있는 건가. 바람을 타고 파도 헤칠 때가 틀림없이 있을 테니, 곧바로 돛 높이 걸고 창해를 건너련다.’

눈앞의 갈림길은 삶에 대한 수많은 물음표를 던질 뿐이지만, 그럼에도 시인은 자신만의 해답을 찾는다.

이백의 대표작 중 하나인 ‘몽유천모음류별(夢遊天<59E5>吟留別)’은 벼슬길에서 쫓겨나 실의에 젖은 채 유람을 떠날 때 지은 시이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도 그는 결코 절망 자체를 노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명산인 천모산(天<59E5>山)을 노닐며 신선을 만나는 꿈을 꾼다.

‘하룻밤에 훨훨 날아 경호(鏡湖)의 달을 지나니, 호수 위에 뜬 달이 내 그림자 비추며, 나를 섬계(剡溪)까지 전송해줬네. (…) 무지개를 옷으로 삼고 바람을 말로 삼은 구름의 신선들이 분분히 아래로 내려오고, 호랑이가 거문고를 타고 난새가 수레를 끄는 신선들이 삼대(麻)처럼 즐비했었네.’

그는 꿈을 통해 자신이 의미 없는 것에 얽매여 살아왔고, 그로 인해 쓸데없는 고통을 짊어졌음을 자각한다. 그는 꿈에서 깨어난 뒤 이렇게 읊는다.

‘예로부터 만사가 다 동으로 흘러가는 강물 같은 것. (…)푸른 벼랑에다 흰 사슴 기르다가 그걸 타고 명산을 찾아가야지, 얼굴 숙이고 허리 굽혀 고관대작 섬기느라 얼굴도 펴지 못한 채 살아서야 되겠는가.”

이렇듯 그는 시상(詩想)을 펼쳐가며 잔뜩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자존감을 회복했다.

상상 속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 있다. ‘나는 본래 구만 리 하늘을 훨훨 나는 붕새 같이 위대한 사람이다’고 노래한 이백처럼 ‘나는 본래 …’를 선언하는 상상의 공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이영주 서울대 중문과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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