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7일 화요일

수준별 수능’ ‘니트 연계’ 폐지…졸속 ‘백년대계’에 혼란 반복

쉬운 A형 어려운 B형’ 수능

올해 처음 도입뒤 폐기 수순

시행 한번도 못한 ‘니트’

응시자 골탕·세금 500억 낭비

특목고 유리 ‘성취평가제’ 백지화

대비해오던 학부모 등은 망연자실
* 니트 : 국가영어능력시험

“남편 직장도 멀어지고 집값도 비싸지만 무리해서 이사했는데, 혼란스럽고 황당하죠.” 27일 교육부의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 발표를 접한 뒤 학부모 김아무개(47)씨의 목소리는 떨렸다.

김씨 가족은 중3인 아들을 위해 2주 전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서 강남구 논현동으로 이사했다. 지금 중3이 대입을 치르는 2017학년도부터 대학입시에 ‘성취평가제’를 적용한다는 교육부의 2011년 발표를 믿고 한 이사였다. 성취평가제는 상대평가를 통해 9등급으로 학업성취도를 나누는 현재 방식과 달리 절대평가로 5개 등급을 나누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특수목적고(특목고)나 자율형사립고(자사고) 등 일부 선발형 학교와 이른바 교육특구의 학생들이 유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날 ‘성취평가제를 2019학년도까지 유보한다’는 발표를 듣고 김씨는 망연자실했다. “아들이 서울권 대학에 진학하길 바라는 마음에 이사까지 갔는데, (되레) 힘들어질까봐 걱정돼요.”

2~3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졸속 대입제도 변경 탓에 교육 현장의 혼란이 매번 반복되고 있다. 성취평가제뿐만 아니라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니트)의 대입 적용 방안도 시행 한번 하지 못한 채 폐기됐고, 올해(2014학년도)부터 시행되는 국·영·수 수준별(쉬운 A형과 어려운 B형) 수능 역시 단 한 해만 적용되고 폐지의 길을 걷게 됐다. 대부분 이명박 정부 때 제시된 방안들이 박근혜 정부 들어 뒤집히는 모양새다. 교육부는 여기에 더해 새로운 대입제도 개편 방안 중 하나로 문·이과를 완전히 통합하는, 큰 틀의 변화 방향까지 제시했다.

우선 2017학년도 대입부터 적용하겠다던 성취평가제를 2019학년도 대입까지 유예하고 그 이후 적용 여부는 2016년 하반기 중 결정하기로 했다. 당장 내년부터 고교 현장에서는 기존의 석차 9등급제에다 성취평가제를 병행하는데도, 가장 중요한 대입 반영을 5년이나 미루고 기존 9등급제를 그대로 입시에 반영하겠다는 것은 성취평가제를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반고 위기’ 속에서 성취평가제가 특목고·자사고에 유리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강행 의지를 밝혔다가 2년 만에 뒤집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의 수능 연계 방침 철회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 2·3급(학생용)으로 수능 영어 시험을 대체하겠다는 계획은 2008년 1월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인수위가 처음으로 밝혔다. 그러나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칠 준비가 안 돼 사교육 부담이 커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돼 왔고, 결국 5년여 만에 폐기됐다.

이 과정에서 5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이 낭비됐다. 유기홍 민주당 의원이 27일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08년부터 올해까지 약 465억원의 예산이 2·3급(고교생용) 시험을 개발하는 데 투입됐다. 7만명에 달하는 응시자들도 쓸데없는 준비를 한 셈이 됐다. 2·3급 시험에는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무려 6만9197명이 응시했다.

올해 11월 치러지는 2014학년도 수능부터 도입되는 수준별 수능(A·B형)도 마찬가지다. 2015학년도부터 영어는 폐지되고, 국어와 수학은 2016학년도까지만 유지된다. 이 방안도 2011년 1월 발표된 것이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모의고사 시행 과정에서 문제제기가 이뤄져, 계속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한겨레

 한겨레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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