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0일 목요일

확장지능(AI·augmented intelligence)인간과 대결하던 '인공지능'서 인간을 돕는 '확장지능'으로

IBM 수퍼컴퓨터 '왓슨' 의료·여행·스포츠 분야서 맹활약]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능을 확장하는데 초점
2년간 세계 500여 기업과 제휴… 경영·재무·마케팅 등 도움 줘
"직감·창의력·소통 능력 등 인간을 따라잡기엔 아직 멀어"

미국 뉴욕에 사는 아홉 살짜리 소년 케빈은 열이 많이 나고 목이 아파 얼마 전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의사는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컴퓨터 '왓슨'에게 "케빈의 병명을 알아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왓슨은 케빈의 체온과 통증 부위, 검사 결과 등을 최대한 습득한 뒤 케빈의 증상과 연관된 논문 수백만 건을 스스로 찾아 분석한 결과, 케빈이 '가와사키병(급성 열성 혈관염)'에 걸린 것으로 정확히 진단했다. 환자 자료 입력에서 진단까지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이 의료 현장에서 활용되는 실제 사례다.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프로 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을 꺾은 9일.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에 있는 IBM의 인공지능 연구·사업 집결지인 '왓슨 본부'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결투'가 아닌 협업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한창이었다. IBM 프레드릭 텀벌 팀장은 케빈 사례를 설명하며 인공지능 대신 '확장지능(AI·augmented intelligence)'이란 단어를 썼다. 그는 "왓슨은 인간 지능과 경쟁할 생각이 없다"며 "우리는 왓슨이 편견·망각·실수 같은 인간적 한계를 메워주고 인간 지능의 능력을 확장하는 역할을 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간과 대결 버리고 인간 돕는 '확장지능'으로

IBM의 인공지능 수퍼컴퓨터는 1997년 당시 체스 세계챔피언이었던 가리 카스파로프를 무너뜨렸고(딥블루), 2011년엔 미국 인기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 챔피언을 꺾었다(왓슨). '알파고'보다 앞서 인간의 지능에 결투를 신청했던, '인간에게 도전한 인공지능'의 원조 격이다.

IBM의 인공지능 '왓슨' 적용 사례
왓슨은 '제퍼디'에서 우승한 후에는 인간의 지능과 경쟁하는 프로젝트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인공지능을 실제 삶에 적용할 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진행했다. 2014년 10월에 문을 연 뉴욕의 왓슨 본부는 "회사의 미래를 인공지능에 걸겠다"는 IBM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로 꼽힌다.

왓슨 헬스 사업을 담당하는 캐슬린 괴츠 부사장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지능을 확장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춰 의료 분야에선 의사와 협력하고 관광·요리·법률 등 각 분야에서 인간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집중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2년간 500여개 기업이 왓슨과 손잡아

인간과 손을 잡은 왓슨의 세계는 무섭게 확장했다. 왓슨을 비즈니스용(用)으로 변신시키는 협업을 추진한 지 2년 동안, 전 세계 70개국 500여 기업이 왓슨과 제휴했다. 왓슨 본부를 방문한 9일 하루 동안에만도 힐튼 호텔과 컨설팅사 KPMG가 왓슨과의 협력을 발표했다. 컨설팅사인 KPMG는 "왓슨이 쏟아지는 재무 자료를 읽고 해석하고 그 가운데 비정상적인 부분이나 미래에 위험을 끼칠 영역이 있다면 이를 경고하는 일까지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 프로농구(NBA) 팀인 디트로이트 피스턴스는 경기장을 찾은 관중의 스마트폰을 인공지능이 활약하는 무대로 만들었다. 관중의 소셜미디어 활동과 메시지 송·수신 내역, 좌석과 동선 등을 파악해 가장 즐겁게 경기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관람객이 친구에게 "오늘 경기 너무 화난다" 같은 문자를 보내면 왓슨이 이 메시지를 인식하고 "지금부터 30분 동안은 생맥주 50% 할인"이라는 쿠폰을 스마트폰으로 쏘아준다. 왓슨이 '인간은 화가 나면 술을 마시고 싶어 한다'는 것을 학습했기에 가능한 마케팅 방식이다.

◇인간의 직감·창의력 넘으려면 멀었다

왓슨 의사는 질병의 진단과 치료법 제안을 넘어, 절박한 환자가 참여할 수 있는 임상 시험을 찾아내 제안해주기도 한다. IBM에 따르면 매년 암에 관해서만 약 4만5000건의 논문이 발표되며, 임상 시험을 위한 환자 분류는 점점 더 세분화돼 8만 개로 늘어났다. 인간 의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지식이 넘쳐 나는 세상에 'AI 의사'는 순식간에 데이터를 소화해 의사를 돕는다.

왓슨이 이 정도로 훌륭하다면 왓슨이 의사를 하고, 인간이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왓슨 헬스'를 맡고 있는 아시시 코우갈리 전무는 "의사의 능력이 지식과 분석에만 있지는 않다"며 "직감, 창의력, 소통 능력 등 기계가 인간을 따라잡기 요원한 영역이 아직은 너무나 많다"고 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완전히 대체하는 일은, 적어도 우리 세대 안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왓슨 본부 벽에는 IBM의 2대 회장 토머스 왓슨 2세가 50년 전에 했다는 말이 새겨져 있다. "우리가 만드는 기계는 이를 사용하는 인간의 능력을 연장하는 도구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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