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인구 줄어 계단식 논 방치
잡초 제거하는 손길 끊기자 특정 식물이 점령, 다양성 깨져
나비·개구리 등 줄어들면서 상위 포식자 왕새매 멸종 위기
고양·성남시는 계단식 논 복원… 생물種 다양한 생태계 되살려
논에서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으면 자연에 득이 될까, 해가 될까. 벼만 자라던 땅이 나무와 풀로 덮이니 당연히 자연에 좋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바로 계단식 논이다. 고지대 습지를 논으로 개간한 계단식 논은 수천 년의 세월을 거쳐 다양한 동식물이 깃들여 사는 작은 생태계가 됐다. 이곳이 사라지면 오히려 생태계에 위기가 오는 것. 인간과 자연은 어떻게 논에서 공생(共生)할 수 있을까.
◇계단식 논 줄면서 생태계 위기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최근 일본의 계단식 묵논(버려진 논)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집중 분석한 글을 실었다. 계기는 묵논의 증가다. 일본은 인구가 2008년 1억2800만명을 기점으로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일본 정부는 2060년이면 8600만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쌀 소비도 1960년대 초 성인 1인당 연간 118㎏에서 2013년 58㎏으로 급감했다. 이로 인해 1961년 이래 2760㎢ 면적의 논이 버려졌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향후 10년간 묵논이 1200㎢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나라와 중국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논이 자연으로 돌아가면 그만큼 생태계에 이득이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일본 나비보호협회 연구진은 2011년 지난 40년간
나비 개체 수 급감의 주원인이 계단식 논과 저수지, 숲이 한데 어우러진 산촌(山村), 즉 일본어로 '사토야마(里山)'가 크게 줄어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개방대 연구진은 2009년 '생물 보전'지에 계단식 논이 줄어들면서 그 속에 사는 개구리를 먹고 사는 왕새매가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고 발표했다.
고베대의 우시마루 아투시 교수는 계단식 논이 자연에 이득이 되는 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농민들은 계단식 논의 가장자리, 즉 논두렁에는 일부러 풀이 자라게 한다. 풀뿌리가 둑을 단단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논두렁의 잡초를 일 년에 두세 번 잘라내 특정 종이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게 관리한다. 덕분에 다양한 식물이 논두렁에 자랄 수 있다. 여기에 나비와 잠자리 같은 곤충들이 모여들고 개구리, 왕새매로 이어지는 건강한 먹이사슬이 형성된다. 버려진 논이나 토지 정비를 한 대규모 논에서는 이런 생태 다양성을 찾을 수 없었다고 우시마루 교수는 밝혔다.
계단식 논은 희귀 식물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김재근 서울대 생물교육과 교수는 2013년 계단식 논에서 처음으로 물이끼를 발견했다. 이전까지 물이끼는 고지대 습지에서만 발견됐다. 계단식 논은 저지대의 대규모 논과 달리 항상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 비료가 오래 남지 않는다. 영양분이 부족한 고지대 습지와 흡사한 서식 조건이다. 계단식 논에 사는 식물들을 다른 곳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국립환경과학원 국립습지센터는 2014년 1년간 조사 끝에 전국에서 247곳의 습지를 새로 확인했다. 이 중 산지형이 107곳으로 가장 많았는데, 대부분 계단식 묵논이었다. 김태규 국립습지센터 연구사는 "계단식 논은 원래 고지대 습지를 개간한 곳이 많다"며 "덕분에 습지에 살던 고유종이 그대로 논에도 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당시 조사에서도 계단식 묵논에서 독미나리·가시연꽃·통발 등 희귀 습지식물들이 다수 발견됐다.
◇논 복원으로 인간·자연 공생 모색
계단식 묵논은 원래 습지 생태계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소수의 식물에 점령당한다. 일본에서는 칡이나 북미에서 유입된 기생식물인 메역취가 다른 식물을 몰아내고 묵논을 차지한 예가 많았다. 식물의 종 다양성이 사라지면 동물도 살기 힘들어진다. 다행히 최근 국내에서는 계단식 묵논의 생태적 가치를 인식하고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경기도 고양시는 안곡습지에서 갈대를 잘라내고 원형인 계단식 논을 복원했다. 논에는 흰뺨검둥오리가 늘었고 곤충들도 다양해졌다. 벼농사 수확물은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주민센터에 기증했다. 성남시는 토사로 메워졌던 판교의 계단식 묵논을 복원해 습지생태공원으로 만들고 있다. 논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복원하는 것이다.
잡초 제거하는 손길 끊기자 특정 식물이 점령, 다양성 깨져
나비·개구리 등 줄어들면서 상위 포식자 왕새매 멸종 위기
고양·성남시는 계단식 논 복원… 생물種 다양한 생태계 되살려
논에서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으면 자연에 득이 될까, 해가 될까. 벼만 자라던 땅이 나무와 풀로 덮이니 당연히 자연에 좋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바로 계단식 논이다. 고지대 습지를 논으로 개간한 계단식 논은 수천 년의 세월을 거쳐 다양한 동식물이 깃들여 사는 작은 생태계가 됐다. 이곳이 사라지면 오히려 생태계에 위기가 오는 것. 인간과 자연은 어떻게 논에서 공생(共生)할 수 있을까.
◇계단식 논 줄면서 생태계 위기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최근 일본의 계단식 묵논(버려진 논)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집중 분석한 글을 실었다. 계기는 묵논의 증가다. 일본은 인구가 2008년 1억2800만명을 기점으로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일본 정부는 2060년이면 8600만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쌀 소비도 1960년대 초 성인 1인당 연간 118㎏에서 2013년 58㎏으로 급감했다. 이로 인해 1961년 이래 2760㎢ 면적의 논이 버려졌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향후 10년간 묵논이 1200㎢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나라와 중국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 ▲ 우리나라와 일본의 산촌에서 볼 수 있는 계단식 논(왼쪽 사진)은 동식물의 보고(寶庫)로 인정받고 있다. 계단식 논의 감소는 동식물의 위기로 이어진다. 일본에서는 계단식 논이 줄면서 그곳에 살던 산개구리(오른쪽 가운데)의 수가 줄고, 이어 개구리를 먹고 사는 왕새매(오른쪽 위)마저 멸종위기에 몰렸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국내 계단식 논에서는 처음 발견된 물이끼. /사이언스·위키미디어 제공
고베대의 우시마루 아투시 교수는 계단식 논이 자연에 이득이 되는 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농민들은 계단식 논의 가장자리, 즉 논두렁에는 일부러 풀이 자라게 한다. 풀뿌리가 둑을 단단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논두렁의 잡초를 일 년에 두세 번 잘라내 특정 종이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게 관리한다. 덕분에 다양한 식물이 논두렁에 자랄 수 있다. 여기에 나비와 잠자리 같은 곤충들이 모여들고 개구리, 왕새매로 이어지는 건강한 먹이사슬이 형성된다. 버려진 논이나 토지 정비를 한 대규모 논에서는 이런 생태 다양성을 찾을 수 없었다고 우시마루 교수는 밝혔다.
계단식 논은 희귀 식물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김재근 서울대 생물교육과 교수는 2013년 계단식 논에서 처음으로 물이끼를 발견했다. 이전까지 물이끼는 고지대 습지에서만 발견됐다. 계단식 논은 저지대의 대규모 논과 달리 항상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 비료가 오래 남지 않는다. 영양분이 부족한 고지대 습지와 흡사한 서식 조건이다. 계단식 논에 사는 식물들을 다른 곳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국립환경과학원 국립습지센터는 2014년 1년간 조사 끝에 전국에서 247곳의 습지를 새로 확인했다. 이 중 산지형이 107곳으로 가장 많았는데, 대부분 계단식 묵논이었다. 김태규 국립습지센터 연구사는 "계단식 논은 원래 고지대 습지를 개간한 곳이 많다"며 "덕분에 습지에 살던 고유종이 그대로 논에도 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당시 조사에서도 계단식 묵논에서 독미나리·가시연꽃·통발 등 희귀 습지식물들이 다수 발견됐다.
◇논 복원으로 인간·자연 공생 모색
계단식 묵논은 원래 습지 생태계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소수의 식물에 점령당한다. 일본에서는 칡이나 북미에서 유입된 기생식물인 메역취가 다른 식물을 몰아내고 묵논을 차지한 예가 많았다. 식물의 종 다양성이 사라지면 동물도 살기 힘들어진다. 다행히 최근 국내에서는 계단식 묵논의 생태적 가치를 인식하고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경기도 고양시는 안곡습지에서 갈대를 잘라내고 원형인 계단식 논을 복원했다. 논에는 흰뺨검둥오리가 늘었고 곤충들도 다양해졌다. 벼농사 수확물은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주민센터에 기증했다. 성남시는 토사로 메워졌던 판교의 계단식 묵논을 복원해 습지생태공원으로 만들고 있다. 논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복원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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