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9일 수요일

인공지능, 인간을 넘었다

전율, 그 자체였다. 단순한 1패 때문이 아니었다. 승부 과정이 섬뜩했던 탓이다. 인류가 만든 최고의 지적게임으로 불리는 ‘바둑’에서 인간 대표로 나선 이세돌 9단(33)이 인공지능(AI)의 대표주자 알파고에게 186수 만에 불계패를 하며 기선을 제압당했다. 인공지능 과학자들 사이에서 그럴 가능성이 점쳐져 왔지만, 실제 상황이 벌어지자 현장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깊은 충격에 빠졌다.
9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알파고와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1국에서 이 9단은 흑을 선택했다. 덤이 7집반인 중국룰로 대국하는 만큼 백을 잡을 수도 있었지만, 초반에 반상의 주도권을 틀어쥐려는 듯 흑으로 인공지능을 상대로 ‘반상(盤上)의 전쟁’을 시작했다.
출발은 좋았다. 이 9단은 초반부터 의외의 수로 ‘상대’를 떠보며 반상을 이끌었다. 중간중간 벌어지는 전투에서 알파고의 완착이 등장하며 이 9단의 무난한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국 도중에 나온 알파고의 완착은 이미 계산된 안전한 행마(行馬)였다. 승리를 지키기 위한 두터운 착점이었던 셈이다. 이날 현장에서 역사적인 대국을 해설한 김성룡 9단이 곳곳에서 알파고의 착점을 가리키며 “이 수는 프로의 수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얼마 후 형세를 판단하면 늘 균형이 맞춰져 있었다. 결국 알파고는 이 9단보다 더 멀리까지 내다보고 반상을 이끌었다는 얘기다.
20년 전 체스가 슈퍼컴퓨터에 무릎을 꿇은 것은 10수까지 내다보는 인간의 한계가 12수까지 내다보는 슈퍼컴퓨터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인간이 만든 가장 복잡하고 창의적인 게임이라는 바둑에서도 벌어졌다. 이는 곧 기계도 인간만큼 창의적 사고에 가까운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야말로 기계의 인간 극복이다.
이 9단은 대국 후 기자회견에서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져서 너무 놀랐다. 초반 실수가 끝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알파고를 개발한 데미스 하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달에 도착했다. 팀이 자랑스럽다. 9단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5판 중 1판이 지나갔을 뿐이다. 알파고는 이 9단을 잘 알았지만, 이 9단은 알파고를 너무 몰랐다. 그러나 이제 확실해졌다. 알파고는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이제 이 9단이 ‘도도한 알파고’에게 도전할 차례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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