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9일 수요일

인공지능, 단점으로 수세에 몰리다 장점으로 뒤집다


이세돌이 돌을 던지게 만든 ‘신의 한 수’는?



※  3월 9일은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겁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의력에 도전하는데 있어, 오랫동안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바둑에서 승리를 거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강한 기사라고 알려진 이세돌 9단을 상대로 말이지요.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 팀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지도 모릅니다. 데미스 하사미스 딥마인드 CEO는 “(알파고를) 달에 착륙시켰다(We landed it on the moon).”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대체 알파고는 어떻게 이세돌 9단을 공략한 걸까요? 북한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은별’을 우리나라에 보급하고,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있는 김찬우 프로 6단이 이번 대국을 설명해 드립니다.

“오늘 1국은 정말 역사적인 한 판인데요. 20~30년은 지나야 이길거라던 예상을 깨고 과학자들이 바둑이라는 엄청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한 날입니다. 전체적으로 이세돌 9단도 기회가 있었지만 알파고가 내용면에서는 조금 더 우세했던 한 판 승부였습니다. 어쩌면 이 결과는 모든 정보가 공개된 이세돌9단과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은 알파고의 대결이라는 점을 볼 때 어느 정도는 예상가능한 시나리오였습니다.

이제 알파고의 실력도 공개되었고 이세돌9단도 분석에 들어갈테니 2국에서는 좀 더 재미있는 승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_김찬우 프로6단”


▶대국 일시: 2016년 3월 9일 오후 1시
▶대국 장소: 대한민국 서울 포시즌스호텔
▶대국자 : 알파고(백○) vs 이세돌 9단(흑●)

흑 7수:


동아사이언스
● 7수 - 바둑의 제왕 제공

● 7수 - 바둑의 제왕 제공

알파고같은 인공지능에 대한 전법은 정수대로 두면서 포석에서 조금 느린 부분을 추궁하는 것이 좋은 전법입니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 바둑에 대한 이해가 아직까지 적어서인지, 아니면 미끼를 던져보고 싶어서인지 정수가 아닌 변칙적인 수를 들고 나왔습니다.

흑 15수:


동아사이언스
● 15수 - 바둑의 제왕 제공

● 15수 - 바둑의 제왕 제공

흑 15수에서는 부분적으로 흑이 이득입니다. 그러나 흑 7의 위치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에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알파고가 이득으로 보입니다. 패턴을 읽는 알고리즘을 쓰는 인공지능 특유의 균형 감각이 돋보이는 형국입니다.

백 18수:


동아사이언스
○ 18수 - 바둑의 제왕 제공

○ 18수 - 바둑의 제왕 제공

상변 백의 침입이 강력해서 초반부터 흑이 고전합니다. 알파고가 두터움을 바탕으로 싸움을 건 거지요. 안정적인 전투 바둑 방법으로 이길 확률이 높은 수를 두는 알파고의 주특기기도 합니다.

백 26수:


동아사이언스
○ 26수 - 바둑의 제왕 제공

○ 26수 - 바둑의 제왕 제공

기분이 나쁘다고 판단한 이세돌 9단의 강수에 알파고가 맞섭니다. 백 26수는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치받아간 수입니다. 익숙한 전법으로만 둔다는 인공지능에 대한 편견을 깬 수라고도 볼 수 있지요. 결국 이 수가 이세돌 9단을 진퇴양난으로 만듭니다. 이런 부분을 보면 알파고가 창의적인 수도 충분히 구사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 46수:


동아사이언스
○ 46수 - 바둑의 제왕 제공

○ 46수 - 바둑의 제왕 제공

여기까지 진행된 초반 전투는 알파고에게 기분 좋은 형세입니다. 이세돌 9단이 상변 흑을 수습하기는 했지만 중앙의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지요. 중앙을 중요시하는 알파고의 특성을 볼 때 이 주도권을 알파고에게 내줬다는 것은 이세돌 9단 입장에서는 상당히 기분 나쁜 전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흑 57수, 백 58수:


동아사이언스
● 57수(왼쪽) ○ 58수(오른쪽) - 바둑의 제왕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57수(왼쪽) ○ 58수(오른쪽) - 바둑의 제왕 제공

흑이 불리한 가운데 맞이한 중반전 중앙 전투가 한창입니다. 이세돌 9단은 어떻게든 우상에서 뻗어 나온 백 대마를 공격하면서 동시에 이득도 취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반면 알파고는 쉽게 쉽게 정수대로 수습만 하면 충분히 우세를 유지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알파고의 실수(인공지능 바둑의 특징, 68수)이 나옵니다. 큰 고민없이 정수대로 두면 유리한 장면을 쉽게 만들 수 있는데, 알파고는 이 수를 둠으로써 괜히 손찌검을 하고 역공당할 빌미를 만듭니다. 이런 수가 나온 것은 알파고가 ‘최선의 수’가 아니라 ‘이길 확률이 높은 수’를 두는 방법으로 학습했기 때문입니다.

팽팽한 국면에서는 이길 확률이 높은 수와 최선의 수가 일치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하지만 형세가 일방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할 때는 이 부분에 차이가 많이 발생합니다. 인공지능 바둑의 이런 약점은 앞으로 딥마인드가 알파고를 발전시키기 위해 연구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됩니다.

흑 63수:


동아사이언스
● 63수 - 바둑의 제왕 제공

● 63수 - 바둑의 제왕 제공

결국 백 58수 덕분에 이세돌 9단은 양쪽의 백을 가르고 나올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당연한 결과로 백도 곳곳의 돌이 약해졌습니다. 좋았던 형세가 한순간에 알 수 없는 혼전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이런 현상은 유리할 때는 안 좋은 수도 이길 확률이 높게 나오는 현상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이길 확률을 바탕으로 두는 알고리즘(몬테카를로 알고리즘)에서는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해결이 쉽지 않지만 꼭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 68수,백 70수:


동아사이언스
○ 68, 70수 - 바둑의 제왕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68, 70수 - 바둑의 제왕 제공

바둑 격언 중 ‘빈삼각도 둘 줄 알아야 고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알파고는 바로 이 격언을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빈삼각의 묘수로 흑을 약하게 만들면서 자기 돌을 보강했습니다. 알파고의 실력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판후이 2단과 겨루던 알파고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백이 밀어간 수(70수)는 너무나 기분 좋은 자리입니다. 사실 이 자리는 이세돌 9단이 승기를 잡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차지했어야 합니다. 순간의 방심이 알파고로 하여금 백 68수라는 묘수를 불러와 대세점을 놓쳤습니다. 이세돌 9단의 입장에서는 정말 아쉬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 80수:


동아사이언스
○ 80수 - 바둑의 제왕 제공

○ 80수 - 바둑의 제왕 제공

형세가 유리한 상황에서 또다시 알파고의 완착이 등장했습니다. 백은 좌하귀를 보강했어야 합니다. 알파고는 유리한 장면에서 승세를 굳히지 못하고 상대에게 계속 기회를 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둑은 이기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는 문제가 적습니다.

하지만 알파고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 점은 반드시 개선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알파고는 단순히 바둑 프로그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깊숙이 들어 올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초석입니다. 이 때 실제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상황에서 ‘최선의 수’가 아니라 단순히 ‘이길 확률이 높은 수’를 찾는 알고리즘은 중요한 문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흑 93수:


동아사이언스
● 93수 - 바둑의 제왕 제공

● 93수 - 바둑의 제왕 제공

알파고의 완착을 틈타 하변을 크게 흑이 차지하면서 다시 흐름은 이세돌 9단에게 넘어 왔습니다. 이제 관건은 ‘우하에 약한 흑을 백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공략하면서 선수를 뽑아 좌상귀를 차지하느냐’입니다.

백 102수:


동아사이언스
○ 102수 - 바둑의 제왕 제공

○ 102수 - 바둑의 제왕 제공

흑과 백이 팽팽한 국면에서 터져 나온 102수는 승패를 여부를 떠나 이세돌 9단의 의표를 찌른 수입니다. 어지간한 바둑 실력으로는 선뜻 떠올리기 어려운 수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한 수로도 보이지만 중앙에 백의 철벽이 있어 흑도 응수가 쉽지 않습니다. 이세돌 9단을 이정도로 괴롭힐 수 있는 프로 기사는 거의 없습니다. 대국 전 알파고가 이세돌과 5:5의 승부를 펼칠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여준 딥 마인드 개발팀의 얘기가 결코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흑 127수:


동아사이언스
● 127수 - 바둑의 제왕 제공

● 127수 - 바둑의 제왕 제공

결국 백(알파고)은 우변에서 선수로 바꿔치기하고 좌상귀 삼삼을 지켜냈습니다. 알파고가 던진 백 102수의 승부수가 성공한겁니다. 게다가 팽팽한 장면에서 나온 이세돌 9단의 흑 127수는 눈을 의심케 하는 실수입니다. 큰 승부에서 오는 중압감에 나온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드는 수입니다. 이번 수에서는 호구로 막아서 귀의 집을 차지했어야합니다.

백 136수:


동아사이언스
○ 136수 - 바둑의 제왕 제공

○ 136수 - 바둑의 제왕 제공

큰 승부에서도 중압감의 부담이 없는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의 실수를 놓치지 않습니다. 중압감이나 피로감을 느끼지 않는 인공지능의 장점이기도 하지요. 이 수로 백은 우하귀를 크게 도려냈고, 선수를 뽑아 흑2점을 잡으며 보강했습니다. 백이 질 수 없는 형세가 된거지요. 컴퓨터는 초반부터 끝날 때까지 변함없는 실력을 보여주는 반면 사람은 후반으로 가면 체력이 떨어지면서 나타나는 집중력 저하가 나타납니다. 이세돌 9단도 예외는 아니었던 거지요. 최근 중국에서 벌어진 신라면배 4연전 등 힘든 일정을 소화한 이세돌9단이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았나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백 154수:


동아사이언스
○ 154수 - 바둑의 제왕 제공

○ 154수 - 바둑의 제왕 제공

마늘모로 견실하게 지켜둔 이 수는 마치 전성기 때 이창호 9단의 한 수 같습니다.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을 앞두고 알파고의 바둑 스타일이 이창호 9단과 비슷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많이 나왔는데, 딱 그 형국입니다. 이번 수로 알파고는 이제 더 이상 해볼 곳이 없지 않느냐고 이세돌 9단에게 묻는 듯 합니다. 이제는 약한 돌도 없고 변화의 여지도 없어서 이세돌 9단이 역전시키는 불가능한 국면입니다. 이후에 30여 수를 더 진행했지만 차이를 좁히는데 실패했고 이세돌 9단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186수에 결국 패배를 인정합니다.



동아사이언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