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국 교육의 개혁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수학 과학 분야에서 미국에서 손꼽히는 영재학교를 보면 미국은 여전히 저력이 있으며 그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제패하는 국가로 발돋움한 데는 유럽 등 세계의 인재들이 미국으로 몰려오고 미국에서 인재를 키우는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창의성과 개성을 존중하면서 인문학적 상상력도 겸비한 인재를 키우는 뉴욕과 워싱턴의 대표적인 두 학교를 찾아가 봤다. 》
■ 토머스제퍼슨과학고
토머스제퍼슨과학기술고 졸업반 학생(왼쪽에서 세 번째)이 지난달 30일 자신이 1년 동안 연구해온 졸업 프로젝트를 재학생과 학부모들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최고의 수학 과학 영재를 양성한다는 취지로 1985년 설립된 이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일부 분야에선 대학 수준의 수학 실력을 갖춰야 한다. 9학년은 대수Ⅱ, 10학년은 pre-Calculus, 11학년은 Calculus AB와 Calculus BC 가운데 선택해서 듣고, 12학년은 AP통계학 등을 배운다.
4년 과정 가운데 12학년에 주로 배우는 이산수학, 삼각법, 함수, AP미적분학, 다변량 미적분학, 선형대수 등 일부 과목은 대학 과정의 수준이다. 과학 수업을 성공적으로 이수하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에 수학 과목은 다양하고 심층적으로 가르친다고 에번 글레이저 교장은 말했다. 글레이저 교장은 “지나친 선행학습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모든 과학에 활용되는 수학의 기본이 탄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기자가 학교를 찾았을 때 마침 이날은 수업 대신 하루 종일 ‘tjSTAR’라는 과학연구 심포지엄이 열리는 날이어서 학교 주차장은 아침 일찍부터 만원이었다. 학생과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 학부모들이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9학년(한국의 중학교 3학년·미국은 중학 2년, 고교 4년제임)생 4명이 한 팀을 이뤄 지난해 가을 학기부터 진행해온 공동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9학년 학생들이 4명씩 짝을 이뤄 1년 동안 연구하는 통합교육 IBET(Integrated Biology, English and Technology) 프로그램은 이 학교에서만 볼 수 있는 교육과정이다. 생물과 영어 기술 과목에서 팀을 이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생물을 배우면서 관련 공학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영어로 표현하는 훈련을 하는 방식이다. 학기 초 주제를 정한 후 일주일에 9시간을 같이 진행한다.
이날 한 IBET팀은 ‘물의 깊이가 질산 농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버지니아 주에서 개구리 등 양서류가 점차 줄어드는 원인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학교 내 뇌과학연구소를 이끄는 폴 크래머 박사는 “학생들에게 교사의 지식을 전수하는 게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서로 토론하며 답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서로 연구하면서 도움을 주는 파트너라는 것이다.
매년 신입생 480명을 선발하는 이 학교에는 3000여 명이 지원한다. 학생들은 아시아계(50.3%)와 백인(43.7%)이 대부분으로 한국계 학생은 전교생의 10%를 차지한다. 매 학년말 평점이 B(3.0) 이하면 다른 인근 고등학교로 전학하라는 권고를 학교 측으로부터 받는다.
졸업생들은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캘리포니아공대(칼텍) 등 우수 이공계 대학뿐만 아니라 하버드와 스탠퍼드 프린스턴 예일 카네기멜런 듀크 코넬 등 명문대에 주로 진학한다.
■ 브롱크스과학고
정보기술(IT) 관련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미국 뉴욕 브롱크스과학고 학생들이 지난달 30일 상금 2500달러(약 300만 원)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 출처 브롱크스과학고 홈페이지
브롱크스과학고 2학년인 잭 피니오, 매슈 벅스바움, 그레이엄 캠벨 등 3명은 지난달 30일 1824년에 설립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대 중 하나인 ‘렌셀러 폴리테크닉 인스티튜트’가 주최한 비즈니스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이들은 학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게 해주는 학풍이 수상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학교에 들어서면 볼 수 있는 ‘질문하라, 발견하라, 창조하라’란 슬로건은 학교의 교육철학을 그대로 보여준다.
화학 물리실험 수업 시간에 실험실 내부에서는 교과서를 찾아볼 수 없다. 학교 관계자는 “미리 책을 읽어오지 말 것을 권한다. 실험이나 토론에서 선입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가 실용주의 교육철학자인 존 듀이가 밝힌 “과학에서의 진보는 대담한 상상력으로부터 나온다”는 철학을 모토로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6일 오전 10시 반 학교 강의실 131호에서는 이 학교를 1973년도에 졸업한 슈니치 혼마 컬럼비아대 의대 교수가 재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펼쳤다. 강의 주제는 고교생에게 어려울 수 있는 ‘뇌중풍(뇌졸증) 환자의 초음파 심장 검진법’이었다. 이처럼 이 학교는 다양한 분야의 졸업생을 초대해 강의하는 ‘데이비드 렉처 시리즈’를 올해 운영하고 있다.
교과목을 보면 과학고에 어울리지 않게 세계사 외국어 미국역사 사회 등 인문과목도 중요시하며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졸업할 수 없다. 1938년 설립된 이 학교에는 2900명이 재학 중이다. 지난해 2만5000명이 입학 지원서를 제출해 700명만이 선발돼 경쟁률이 35.7 대 1이었다. 재학생의 60%가 아시아계 학생이다.
이 학교는 리언 쿠퍼, 셸던 글래쇼, 멜빈 슈워츠, 러셀 헐스, 스티븐 와인버그 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5명 등 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6명의 졸업생이 퓰리처상을 받는 등 대표적인 영재학교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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