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9일 수요일

이세돌의 패배, 인공지능의 승리, 인류의 미래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의 바둑 5번기 중 첫번째 대국에서 이 9단이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날 대국은 인공지능 대표가 인류의 대표에게 내민 도전장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아무래도 모험과 도발을 즐기는 이 9단이 유리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알파고의 능력은 대단했다. 이 9단이 초반부터 쉴 사이 없이 국면을 흔들어댔지만 알파고는 쉽게 동요하지 않았다. 복잡한 전투를 마다하지 않고 맞대응했다. 외려 이 9단이 평정심을 잃은 듯한 수를 두었다. 알파고 역시 중반 이후 의문수를 두었다. 형세가 어려워졌다. 그러자 알파고는 천하의 이세돌을 상대로 승부수까지 던져 전세를 돌려놓았다. 이 9단은 결국 돌을 거두고 말았다. 이 9단은 “(알파고가) 이렇게 둘 줄 몰랐다”고 놀라워했다.
이날의 알파고는 지난해 10월 판후이(樊麾) 2단과 싸웠던 알파고가 아니었다. 당시 이 9단과는 ‘2점 혹은 정선’ 정도의 기량차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는데 단 5개월 만에 무서운 기세로 따라온 것이다.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깝고 인간의 고유 감정인 직관이 승패를 좌우하는 바둑에서 인간이 인공지능에 패한 것이다. 앞으로 4판 남았지만 첫판의 패배가 그만큼 충격적이다. 물론 알파고 개발자는 대국 전에 “누가 이겨도 인류의 승리가 아니냐”는 의미를 전했다. 인공지능 역시 바둑처럼 인간의 창의성이 발현되는 분야이므로 인간을 위해 쓰면 세상이 그만큼 발전된다는 뜻이다. 당장 알파고가 질병 진단과 치료법 찾기는 물론 가정용 로봇 등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번 대국은 인공지능 분야를 과학자의 영역으로만 여겨 소홀했던 인간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끌어 올렸다. IBM과 구글, 애플, 바이두 등 글로벌 기업이 금융·의료 분야 진출과 자율주행 자동차의 개발, 개인비서 서비스 등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부각됐다. 정신노동자와 예술가 등의 영역까지 인공지능이 확대되는 판이니 화이트칼라의 대량실업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왔다. 선진국에 비해 2.6년 정도 뒤떨어진 한국 인공지능 산업의 현주소도 조명됐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 빨리 추격을 허용했다. 인간이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모색하고 미래사회의 도덕률을 만들어보기도 전에 당한 미증유의 패배다. 바둑은 지난 5000년 동안 인생의 축소판이자 우주의 원리를 담고 있는 고차원의 철학 분야로 여겨졌다. 바둑은 기계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인간의 영역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이제 인간이 나누는 수담(手談)이나,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즐기는 신선놀음의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다. ‘인간의 감(感)’인 ‘두터움’까지 집으로 계산해버리고, 끝내기에서는 절대 실수하지 않는 기계적 논리가 승한다면 인간 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 나아가 인공지능이 알파고의 경험을 한층 발전시켜 자의식까지 생긴다면 어찌 될까. 인간의 통제에 따라 복종하거나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나쁜 마음만을 선택하는 인공지능은 냉혹한 기계의 속성과 잔인한 인간의 심성으로 무장해서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인공지능을 조종하는 것이 인간이다. 앞으로 어떤 순간에서도 인류의 가치를 지켜내야 할 것은 인간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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