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중심인 발표·토론 수업
인공지능 시대 살아갈 역량 키워
"지난 1월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올해 초등학교 신입생의 65%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질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인류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사피엔스'의 저자이자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인 유발 하라리는 최근 한국에 방문해 '현재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의 80~90%는 아이들이 40대가 됐을 때 전혀 쓸모없게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어진 지식을 습득하고 정답
있는 문제만 해결하는 데 주력하는 현재 교육 시스템으로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인재를 제대로 키워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양환주 올림피아드교육 대표에게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거꾸로 교실)을 도입한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는 "21세기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플립 러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플립 러닝은 학생 스스로 동영상 강의 등을 수업 전에 보고 교실에서는 발표나 토론 등 심화학습을 진행하는 수업 방식으로 최근 교육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플립 러닝이 가장 활발하게 운용되고 있는 곳은 올림피아드교육의 수학학원 유투엠(U2M)이다. 유투엠은 지난 2011년부터 플립 러닝을 적용해 왔다.
◇아는 문제 틀리는 아이, 손으로 풀던 수학에서 말하는 수학으로 바꾸면 해답 보여
양 대표는 24년째 학원계에 몸담고 있는 베테랑이다. 안정적으로 학원을 운영하던 그가 플립 러닝을 도입해 유투엠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고안한 건 지난 2009년이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며 수년 내 교육계에도 디지털 교육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 기반한 주입식 교육의 틀이 무너지고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한 온·오프라인 블렌디드 러닝이 대세가 될 것으로 봤다.
그는 강의 내용을 온라인 학습으로 대체하면 교실 수업을 어떻게 바꿔야 학생의 학습효과를 높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우선 서울대의 토론식 수업 등 다양한 사례를 살펴봤다. 그 결과 온라인을 활용해 학습 내용을 미리 예습하고 교실에서 학생들이 서로 질문, 토론하고 소통하는 학생 중심의 참여수업 모델을 생각해냈다. 양 대표는 "한마디로 '말하는 학습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며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해 2011년 유투엠을 론칭했다"고 밝혔다.
2011년 유투엠 중랑캠퍼스에 처음 수업을 적용해 봤다. 수학 내신 평균이 70점 정도인 중학교 2학년 8명이 대상이었다. 플립 러닝을 적용하자마자 학생들은 '수학 수업이 재밌다'는 반응을 보였다. 6개월이 지나자 전체 평균은 96점으로 올랐다. 양 대표는 "학생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자 공부에 대한 흥미와 수업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진 것을 목격했다"며 "본격적으로 론칭한 지 1년 반 만에 가맹점이 100개 이상으로 늘었다"고 했다.
플립 러닝의 학습효과를 객관적으로 증명한 사례도 있다. 미국 행동과학연구소(NTL) 연구에서 배운 것을 말로 설명한 학생은 24시간 뒤에도 공부한 내용을 90% 이상 기억했다. 반면에 일방적으로 강의를 들은 학생은 학습 내용을 24시간 뒤에 5%만 기억했다. 서울대, 고려대, 유니스트 등 명문대가 토론식 공부법을 채택하는 이유도 높은 학습효과에 있다. 양 대표는 "수학은 논리적 사고력을 기르는 학문"이라며 "수학적 개념이나 사고 전개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말하기'는 수학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유투엠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자기가 학습한 지식을 말로 설명하면서 확실하게 이해한 점과 그렇지 못한 내용을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교사에게 설명하거나 친구들과 토론하기 때문이죠. 학생들은 지식을 남에게 전달하면서 내용을 체계적이고 명료하게 정리합니다. 이때 학습효과가 높아진다는 점이 인지심리학의 연구 결과입니다.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개념은 피드백 학습을 통해 완전하게 이해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말하는 공부법의 학습효과가 높은 이유입니다."
양 대표는 플립 러닝이 교육계에서 혁명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플립 러닝이 주입식 교육 방식을 뒤엎었다는 점에 집중했다. 그는 "형식적으로는 강의와 숙제의 순서를 뒤바꾼 정도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교실에서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소통하고, 토론하는 공부를 하도록 만든 게 플립 러닝의 핵심"이라고 했다. 주입식 교육이 학생 중심형 창의 교육으로 바뀐 것이다.
한편 양 대표는 플립 러닝이 완전히 새로운 교수학습 모델은 아니라고 했다. 공자는 2500여 년 전 제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하지 않고 문답식 수업을 지향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소크라테스는 문답식 토론 수업을 했다. 최근에도 토론 수업이나 프로젝트 기반 수업, 협력 학습 등 다양한 학습자 중심 교육이 있었다. 플립 러닝도 이 같은 학습자 중심 수업 모델 중 하나라는 것이다. 양 대표는 "플립 러닝은 학습자 중심 수업 모델에 급속도로 발전한 정보통신 기술을 적용한 것"이라며 "기술의 발전 덕분에 바람직한 교수학습 방식이 구현됐다"고 자평했다.
플립 러닝에 대한 최근의 뜨거운 관심은 창의력을 길러주는 교육 모델이라는 점에 있다. 현대 사회는 더 이상 산업화 시대가 아니다. 산업화 시대에는 많은 지식을 암기하는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주입식 교육이 의미가 있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다. 이때 중요한 건 지식을 창조하고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교육의 패러다임도 바뀌었다. 플립 러닝은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데 필요한 핵심 역량을 키워줄 수 있다는 것이다.
◇플립 러닝이 미래 인재에 필요한 역량 길러줘
21세기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 가운데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능력은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력 등이다. 예컨대 핀란드는 2020년부터 교과과정을 이른바 4C인 창의력(Creativity), 비판적 사고력(Critical Thinking), 소통 능력(Communication), 협업 능력(Collaboration)을 키워주는 통합 교육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양 대표에 따르면 이 같은 21세기 핵심 역량은 강의자의 일방적인 수업으로 학생에게 전달할 수 없다. 학생의 입을 막고 주입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교실에서는 학생이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는 말이다. 반대로 학생이 창의력·사고력을 키우고 소통·협업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학생 스스로 적극적으로 말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토론, 발표 등이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즉, 수업 방법을 바꾸지 않고는 21세기 핵심 역량을 키울 수는 없다게 양 대표의 생각이다. 학생에게 이 같은 능력을 키워주려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거다.
이 때문에 양 대표는 플립 러닝 같은 학생 중심의 학습법이 미래 핵심 역량을 키우는 교육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지식정보사회를 넘어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혁명의 시대에 진입하는 최근 플립 러닝이 급부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며 "현재의 지식 전달 중심 교육 체계에서는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키울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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