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6일 화요일

일부 지방선 '비교과=노는 활동'… 학종 준비는 먼 얘기

입시 변화에도 꿈쩍 않는 지방 일반고
입시 정보 부족, 비교과는 부실… 스스로 준비해도 "괜한 짓" 치부
내신 좋아도 스펙 약해 '불합격'… 학교·교사의 인식 변화 시급해

최근 대학 입시는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올해 수시모집에서는 전체 모집인원의 20.3%(7만2101명)를, 내년엔 23.6% (8만3231명)을 학종으로 선발해 그 비중이 계속 커질 전망이다. 특히 수험생 관심이 집중되는 서울권 주요 대학은 학종 선발 비율이 더 높다. 2017학년도 전형만 살펴봐도 서울대 76.8%, 서강대 40.5%, 경희대 40.1%, 한양대 37.6% 등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도 교육 방식이나 프로그램을 바꾸지 않는 일반고가 적지 않다. 지방에 있는 학교일수록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방 학부모들은 "입시 정보를 얻기도 어려운데 학교마저 비교과 활동 등에 신경을 안 써주니 학종을 준비할 길이 없다"며 발을 동동 구른다. 입시 변화에도 꼼짝 않는 지방 일반고 문제는 없는지 짚어봤다.

◇"동아리 활동 왜 하느냐"며 때리기도

지방 일반고에 다니는 학생·학부모의 가장 큰 불만은 '부실한 비교과 활동'이다. 학종이 도입되면서 지방 일반고들도 발 빠르게 다양한 교내 대회와 비교과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교도 많다. 지방에서 고 3 자녀의 대입 준비를 돕고 있는 학부모 A씨 역시 요즘 수시 원서 접수를 앞두고 걱정이 많다. 딸의 내신성적은 주요 과목에서 한 번 2등급을 받은 것을 빼곤 전부 1등급으로 좋은 편이지만, 비교과 활동 실적이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교내경시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해 수상 실적을 챙겼지만, 그 외에는 교내 동아리 활동 2개가 전부다. A씨는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아이 학생부에 적힌 스펙은 '(누구나 하는) 기본 수준'에도 못 미친다. 작년 수시 때 내신이 1점대 초반인 3학년 대부분이 1단계에서 떨어졌는데도, 학교 교육 방식엔 변함이 없더라. 그렇다고 해서 수능 준비를 똑부러지게 시키는 것도 아니고, 자습에만 의존한다"고 말했다.

학생이 자기 관심 분야를 찾아 동아리활동을 하려 해도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며 교사가 막기도 한다. 지난해 지방 일반고에서 학종으로 고려대에 합격한 B군은 그야말로 '처절하게' 동아리 활동을 했다. B군은 "고등학교 때 과학 실험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실험 과정에서) 아침마다 과학실에 가서 식물이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해야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동아리 활동을 왜 하느냐'며 매일 때렸다. 결국 선생님 몰래 과학실에 다니며 실험을 계속했지만, 자꾸 매를 맞다 보니 '학종을 준비하는 게 정말 잘못인가' 의문이 들더라"고 전했다.

◇시설·지원 열악… 교내 활동도 학생·교사 사비로 해

지방 일반고 3학년에 재학 중인 C군의 상황도 비슷하다. C군의 학교에서는 정규 수업부터 방과후 수업, 밤 11시까지 이어지는 야간 자율학습이 사실상 '의무 참여'다. 토요일에도 학교에서 자습하게 돼 있고, 3학년은 일요일에도 오후부터 자습한다. 이를 지키려면 자율동아리 활동 등이 거의 불가능하다. C군은 "선생님들이 '동아리 모임 한답시고 몇 명이 들락날락하면 분위기만 흐린다'거나 '일부만 그런 활동을 하게 허용하면 불공평하지 않느냐'는 등의 이유를 들며 의무적으로 자습에 참여하게 한다. 학교에서는 동아리나 봉사활동을 할 시간이 없어서 일요일에 짬을 내 겨우 한다. 동아리를 '공부하기 싫어서 하는 활동'으로 생각하는 선생님도 있다. '교사 생활하면서 공부하다 죽은 사람 못 봤으니, 죽을 각오로 공부나 하라'는 얘기만 들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나소연
비교과 활동에 대한 관심이 없다 보니 이에 대한 학교 측 지원도 전무(全無)한 경우가 많다. 지방 일반고에서 근무하는 교사 D씨는 "지방 일반고 중에는 시설·환경이 열악한 곳이 많다. 동아리 운영비 지원도 거의 없어 학생·교사의 사비로 활동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학교에 건의하면 '대학 가는 데 도움도 안 되는 것을 왜 하느냐'고 한다"고 토로했다.

학생부 기록에 대한 불만도 크다. 비교과 활동 자체가 부실한데, 그나마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지방 일반고 3학년인 E군은 "지난해 동아리 활동 내용을 적어 선생님께 제출했는데, 3학년에 올라와서 보니 같은 동아리 친구와 글자 하나까지 똑같이 적혔더라. 그 친구와 성적도 비슷한데, (학생부 기록이 똑같으니) 같은 대학에 지원해도 될지 걱정된다"고 했다. 지방 일반고 2학년인 F군 역시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학생부에 전혀 신경을 안 썼다. 학생부를 보여 달라고 해도 '안 된다'고 해서 내용도 확인 못했다. 2학년 올라와서 열람해 보니 장래 희망도 잘못 적히고, 어떤 칸은 글이 중간에 잘려 있더라. 3학년 선배들도 '내 학생부가 몇 장인지조차 몰랐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입시 정보 부족… 진학 지도도 잘 안 돼

입시 지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다. 3학년 G양은 "3학년에 올라온 후 '(모의고사 성적을 보니) 올해 정시는 망했다. 너희는 수시 아니면 대학 못 가니 수시에 목숨 걸어라'는 얘길 몇 번이나 들었다. 1학년 때부터 학교가 비교과 활동이나 논술을 준비시킨 적이 없는데, 어떻게 수시로 대학에 가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에서 대입 컨설팅을 하고 있는 강사 H씨는 "지방 학생을 만나 보면, 모의고사 성적도 좋지 않은데 내신·비교과·논술 등 뭐 하나 제대로 준비된 게 없는 경우가 많다. 3학년인데도 지금까지 전형조차 이해를 못 하더라"고 했다.

한편 지방 일반고의 변화가 더딘 것은 학교·지역 특성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서울의 한 대학 입학사정관 J씨는 "지방 학생들은 소수의 상위권을 제외하면, 지역거점국립대나 (해당 지역에 있는) 지방대에 더 관심이 많다. 지방 대학은 아직까지 학종보다 '학생부교과' 등이 더 강세다. 그래서 고교가 비교과 활동보다 교과 학습에 치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게다가 '농어촌특별전형'으로 대입 실적을 내는 학교의 경우에는 다른 전형에 별 관심이 없다. 교사 K씨는 "지방 학생 중에는 수시에서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못 넘어 불합격하는 사례가 많다. 학교 입장에서는 '결국 수능 때문에 떨어지는데 비교과 실적을 쌓아서 무엇 하느냐'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만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 일반고가 달라지려면 학교·교사의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 송준식 경북 무학고 교사는 "지금도 아이들이 문제집을 풀고 있지 않으면 '논다고 여기는 교사가 많다. (입시가 변한) 최근 몇 년간 학생들과 실험하고 논문을 작성하거나, 실험 체험 부스를 마련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꿈을 찾고 학교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봤다. 그랬더니 학종은 저절로 준비되더라. 대입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죽어가는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인식 변화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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