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5일 월요일

난 오늘밤도 삐딱하게 뜬다

천문학자들은 신화 속의 이름을 좋아한다. 태양계에서 발견된 행성과 위성에도 신화 속 이름이 많다. 태양에서 5번째로 먼, 태양계에서 가장 큰 행성(목성)의 이름은 주피터(그리스 이름 제우스)다. 7번째 행성은 하늘의 신(천왕) 우라누스고, 8번째로 행성은 바다의 신(해왕) 넵튠(그리스 이름 포세이돈)이다. 넵튠은 심한 바람둥이로 여기저기에 수많은 자식을 남겼는데, 그 중 아버지를 따라 바다의 신이 된 트리톤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1846년, 영국의 천문학자 윌리엄 라셀이 해왕성의 가장 큰 위성을 발견하자, 자연스럽게 이 위성의 이름은 트리톤이 됐다.


트리톤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여러 모로 아버지와 다른 ‘삐딱한’ 아들이었다. 우선 공전 궤도가 이상했다. 해왕성의 적도면과 157°나 기울어져 있었다. 공전 궤도와는 130° 차이가 났다. 만약 누군가 공전면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아버지(해왕성)와 아들(트리톤)이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다는 뜻이다. 당시는 갈릴레이가 발견한 목성의 4대 위성을 비롯 해 목성과 토성의 가장 큰 위성들이 상당수 발견된 상 태였는데, 트리톤처럼 거꾸로 돌거나 삐딱하게 움직이 는 위성은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의 위성은 ‘말 잘 듣는 착한 아들’처럼 행성 주위를 잘 정돈된 동심원을 그리 며 돌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트리톤만 삐딱하고 엇나갔다. 왜 그럴까.



트리톤


이유는 출생의 비밀과 관련이 있다. 신화 속 트리톤 은 넵튠과 그의 셋째 부인 암피트리테 사이에서 태어난 어엿한 아들이지만, 위성 트리톤은 아니었다. 외부에서 해왕성에 붙들려 온 일종의 ‘양자’였던 것이다. 트리톤 은 지름이 2700km나 되는, 태양계에서 7번째로 큰 위 성이다. 이런 위성이 행성과는 상관 없이 독자적으로 태 어났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중에 해왕성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과학자들은 놀랐다.


트리톤 발견 이후, 천문학자들은 삐딱한 위성을 몇 개 더 찾아냈다. 약 50년 뒤에 토성의 위성 포에베가 발 견됐고, 약 10년 뒤부터는 목성에서 히말리아와 파시파 에, 카르메 등이 연달아 발견됐다. 1949년에는 해왕성 해왕성의 또다른 불규칙위성 프사마테. 2003년, 당시 하와이대에 있던 데이비드 제비트 교수와 스콧 셰퍼드 연구원이 발견했다. 대부분의 다른 불규칙위성처럼 매우 작고 멀어서, 망원경으로 봐도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 먼 곳에서도 행성 주위를 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의 두 번째 ‘삐딱 위성’ 네레이드가 발견됐다. 이런 식으 로 간간히 이상한 궤적을 보이는 위성이 발견됐다. 삐딱 위성의 절정은 20세기 말 이후였다. 초정밀 관측 기술 이 발달하면서, 작은 위성 발견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현재 이런 ‘천방지축’ 위성은 100개가 훌쩍 넘는다(5월 15일 국제천문연맹 왜소행성센터 자료 기준 목성 59개, 토성 39개, 천왕성 9개, 해왕성 6개).


이들은 모두 비슷한 특징을 갖고 있다. 공전 궤도가 찌그러지거나 크게 기울어졌다. 상당수가 모행성으로 부터 상당히 먼 궤도를, 모행성과 반대 방향으로 돈다. 모양도 감자처럼 불규칙하거나 찌그러진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이런 특징들이 한두 가지 종류로 묶을 수 없 을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하다. 과학자들은 개성이 다 양한 이들 위성을 한 데 묶어 ‘불규칙위성’이라고 부르 기 시작했다. 목성의 4대 위성이나 달과 같은 나머지 ‘평 범한’ 위성 60개는 ‘규칙위성’이 됐다.



7가지 위성의 탄생 비화


21세기 들어 불규칙위성이 무수히 발견된 것은 이 분 야의 전문가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 분야의 개 척자인 미국 카네기연구소 스콧 셰퍼드 박사와 UCLA 지구행성우주과학과 데이비드 제비트 교수는 2006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기고문에서 2001년의 일을 회상 했다. 그들은 하와이대에 함께 재직할 당시 불규칙위성 을 몇 개까지 발견할 수 있을지를 놓고 100달러(10만 원) 내기를 걸었다. 스승인 제비트 교수는 10개 미만이라고 예상했고, 제자인 셰퍼드 박사(당시 대학원생)는 그 이 상이라고 예상했다. 결과는? 셰퍼드 박사의 완승이었다. 두 사람이 5년 동안 발견한 위성은 무려 62개였다. 두 사 람은 이들이 대부분 트리톤처럼 포획을 통해 위성이 됐 다고 봤다. 위성마다 제멋대로인 공전궤도가 규칙위성이 형성된 과정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해왕성의 불규칙위성 프사마테해왕성의 또다른 불규칙위성 프사마테.
2003년, 당시 하와이대에 있던 데이비드 제비트 교수와 스콧 셰퍼드 연구원이 발견했다. 대부분의 다른 불규칙위성처럼 매우 작고 멀어서, 망원경으로 봐도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 먼 곳에서도 행성 주위를 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규칙위성의 출생은 행성과 판박이



한국천문연구원 토비아스 힌제 박사는 “규칙위성은 행 성 주위를 도는 원반에서 만들어진다”며 “별이 만들어지 는 원리와 같다”고 설명했다. 별은 우주의 가스와 먼지가 중력으로 수축하면서 회전해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원심력 때문에 바깥으로 판판한 원반 모양으로 물질이 퍼지는데(결국 별이 되지 못한 물질이다), 이 안에서 작은 수축이 일어나면 행성이 태어난다. 행성을 만드는 작은 수축 역시 먼지와 가스의 회전을 동반한다. 이 과정에서 행성 주위에는 다시 작은 물질 원반(역시 행성이 되지 못 하고 남은 물질)이 만들어지면서 일부가 수축해 뭉치는 데, 이게 바로 규칙위성이다(위 그림 참조).


규칙위성은 행성이 태어난 회전 원반에서 만들어졌으므로, 애초에 행성과 반대 방향으로 돌거나 궤도면이 기 울어질 수 없다. 따라서 불규칙위성이 나타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외부에서 포획돼 들어온 경우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소천체는 대 부분 태양 주변을 공전할 수밖에 없고, 행성에 포획되기 힘들다. 힌제 박사는 “이렇게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성 질을 없애지 않으면 위성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어떻 게 하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 과학자들은 네 가지 가능 성을 제안했다(97쪽 만화 참조).


먼저 마치 쌍성처럼 두 소천체가 공통의 궤도 중심을 서로 가깝게 공전하면서 동시에 둘이 함께 태양을 공전 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여기에 갑자기 제3의 중력원 (행성)이 끼어들면, 즉 행성의 중력권 안에 들면 중력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두 천체가 서로 튕겨나갈 수 있다. 이 를 3체 상호작용이라고 한다. 이 경우 소천체 하나는 에 너지를 잃고 행성 쪽으로 휘어 들어와 위성이 되고, 다 른 소천체는 반대로 에너지를 얻어 멀리 튕겨나간다.


첫 번째와 비슷하지만, 서로 쌍으로 돌던 천체가 아니라 각각 태양 주위를 돌던 소천체의 궤도가 우연히 겹친 경우도 있다. 이 상태로 역시 우연히 행성 가까운 지역 을 통과하면 마찬가지로 3체 상호작용이 일어나 하나는 위성이 되고 하나는 튕겨나간다.

세 번째는 행성의 중력권이 커지는 경우다. 행성이 작 았을 때는 주위의 소천체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지날 수 있지만, 행성이 커져 버리면 중력권에 사로잡혀 위성이 된다.


마지막으로 행성 주위에 행성이 되고 남은 가스가 퍼 져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소천체가 가스를 통과하 면 물질과의 마찰 때문에 에너지를 잃게 되고, 결국 행 성 주위에 끌려 들어와 공전하면서 위성이 된다. 연구자들은 불규칙위성 대부분이 이 중 하나를 통 해 위성이 됐으리라 보고 있다. 가장 거대한 불규칙위성 인 트리톤은 첫 번째 메커니즘에 의해 위성이 됐을 가 능성이 높다. 미국 메릴랜드대 천문학과 더글러스 해 밀턴 교수팀이 2006년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트리톤은 원래 명왕성처럼 해왕성의 외곽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왜소행성 이었다. 트리톤에는 늘 함께 붙어 다니는 짝 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해왕성의 근처를 지나다 3체 상호작용을 겪고 빨려들 듯 해왕성에 다가갔다는 것이다. 동료 천체 는 멀리 튕겨 나갔다. 그밖에 트리톤이 다른 천체와 충돌하면서 해왕성 쪽에 떨어져 위 성이 됐다는 가설 등이 있지만, 3체 상호작 용 쪽이 유력해 보인다.




자체 충돌로 더 많은 불규칙위성 태어나.


해왕성의 트리톤을 제외하면 반지름이 1000km가 넘는 불규칙위성은 없다. 그나 마 목성의 히말리아, 토성의 포에베, 해왕성 의 네레이드를 제외하면 수~수십km 크기 가 대부분이다. 1km 정도밖에 안 되는 위성 도 있다. 하늘에 그냥 돌 덩어리가 떠다니는 정도다. 그 런데 묘하게도 목성의 불규칙위성을 공전궤도의 기울기 와 거리 별로 분류해 보면, 크게 네 개의 그룹으로 나뉜 다. 또 위성이 전혀 없는 구간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공 전면의 기울기가 60~120° 사이인 위성은 전혀 없다. 목 성과의 거리가 조금 떨어진 일정 구간에서는 목성과 같 은 방향으로 공전하는 불규칙위성이 없다. 이 구간에서 는 오로지 반대 방향으로 공전하는 위성만 있다(모행성 과 반대로 공전하는 불규칙위성이 훨씬 많은 것도 이 때 문이다). 전체적으로 불규칙위성은 존재할 수 있는 구간 이 정해져 있으며, 그나마도 구간이나 기울기 등이 비슷 한 것들이 무리 지어 있다. 왜 그럴까.



울퉁불퉁한 불규칙위성 포에베의 표면
울퉁불퉁한 불규칙위성 포에베의 표면.

크기가 작은 천체는 자체 중력으로 붕괴하지 않아 울퉁불퉁한 모양을 유지한다.
크기가 충분히 커야 모양이 무너지면서 구 형태를 띠게 된다.








상상을 초월하는 복잡함, 불규칙위성의 궤도


힌제 박사는 박사 학위 논문에서 그 원인을 밝혔다. 그에 따르면 불규칙위성은 처음에는 좀 더 큰 소천체였다. 하지만 목성이 어느 정도 완성된 뒤인 30억~40억 년 전에 몇 개의 소천체가 서로 충돌해 부서졌다. 부서진 파편은 비슷한 특징을 공유한 채 목성을 돌기 시작했고, 그게 지금 볼 수 있는 자잘한 불규칙위성이라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결과, 이 과정에는 목성과 태양은 물론 이웃한 토성도 복잡하게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초기에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지역에 더 다양한 기울기를 지닌 불규칙위성이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태양과의 복잡한 역학 관계 때문에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요동이 주기적으로 반복됐고, 이에 따라 특정한 기울기와 거리에 있는 위성만 남고 나머지는 밖으로 튕겨 나갔다(시뮬레이션 결과 천문학에서는 눈깜짝할 사이인 120년 정도만에 튕겨나갔다). 그 결과 불규칙위성은 특정 영역과 기울기 영역에 집중적으로 남게 됐다.


현재 불규칙위성의 기원이 된 소천체는 정체가 모호하다. 제비트 교수조차 홈페이지를 통해 공공연히 ‘모른다’고 밝히고 있으니, 적어도 지구에 그 정체를 아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는 다만 토성의 불규칙 위성 포에베를 예로 들어 두 가지 가능성을 들고 있을 뿐이다. 토성이 탄생할 때 남은 찌꺼기가 뭉친 소천체와, 멀리 태양계 외곽에 있는 혜성의 고향 카이퍼벨트가 후보다.




토성 고리에서 새 위성이 태어날까


혹시 현재 새로 탄생하는 위성은 없을까. 최근에는 행성의 고리에서도 위성이 탄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새로운 시나리오로 주목 받고 있다. 기체형 행성은 암석형 행성과 달리 중력 경계가 불분명해 가장 바깥쪽의 물질이 뭉쳐질 수 있다. 마치 초기 태양계에서 물질 원반이 수축해 위성이 만들어졌듯, 행성 주위를 도는 고리에서 물질이 엉겨 붙어 새로운 위성이 태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영국 퀸매리대 칼 머레이 교수는 지난해 말, 토성 탐사선 카시니 호가 찍은 토성 A 고리 사진의 바깥쪽 가장자리에서 비행기 프로펠러 모양의 작은 요동을 발견했다. 뭔가가 고리를 밀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머레이 교수는 여기에 카시니 호의 카메라 조차 직접 관찰하지 못할 만큼 작은 위성이 있으며(크기 1km 미만), 태어나는 중인 아기 위성일지도 모른다고 해 석했다. 이는 한 해 전에 프랑스 연구팀이 내놓은 예측과 도 일치했다. 프랑스 드니디드로대 세바스티앙 샤모 교 수팀은 ‘사이언스’ 논문에서 토성 고리 바깥쪽에서는 물 질이 뭉쳐 작은 위성의 씨앗이 태어날 수 있으며, 이것이 점점 밖으로 밀려날 거라고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아직 조심스럽다. 심채경 경희대 우주탐 사학과 연구원은 “지금 새로 탄생하고 있는 위성인지, 존재하던 위성이 지금에야 발견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최영준 한국천문연구원 우주 감시센터 책임연구원도 “아직은 확신하기 이르다”며 “성 장하는(탄생하는) 중인지, 혹은 반대로 위성이 부서진 파편인지부터 확인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나치 게 행성에 접근한 위성은 조석력을 받아 부서져 고리의 재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성은 항상 행성의 그늘에 가려서, 혹은 너무 작아 서, 혹은 너무 멀리 있어서 연구 대상으로 주목받지 못 했다. 하지만 복잡하고 다양한 위성들의 탄생 이야기를 보면, 우주는 작고 미세한 부분까지 구석구석 신비롭다 는 생각이 든다. 물론 위성 연구를 그저 신비롭기 때문 에 하는 것만은 아니다. 힌제 박사는 “불규칙위성 연구 는 과거를 보는 창”이라고 말한다. 30억~40억 년 전에 일어난 소천체 포획 사건을 통해 당시 태양계의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뜻이 다. 비록 보잘 것 없고 수선 스러워 보이는 작은 천체지 만, 위성은 젊었던 시절 태양 계가 품었던 남모르는 비밀을 간직한 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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