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부터 정리하고 넘어가자. 시중에 ‘줄기세포 치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성체줄기세포, 리프로그래밍 줄기세포, 성형·미용
줄기세포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줄기세포’라는 이름으로 뒤섞여있다 보니, 누구는 줄기세포 치료제가 곧 등장한다고 하고, 누구는 아직 멀었다고 하며, 또 누구는 벌써 주사를 맞고 왔다고 하는 혼란이 생기고
있다.
줄기세포 치료제 아직
멀었다
성체는 서서히 등장…배아·iPS는 10년 이상
기다려
무릎관절염을 앓고 있던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 감독을
다시 그라운드로 불러낸 건, 우리나라
바이오기업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성체줄기세포 무릎연골 치료제다. 현재 상용화된 줄기세포 치료제는 전 세계를 통틀어 모두 4개다. 급성심근경색에 쓰이는 ‘하티셀그램-AMI’, 무릎연골에 쓰이는 ‘카티스템’, 크론병에 쓰이는
‘큐피스템’, 이식편대숙주병에 쓰이는
‘프로키말’이다. 프로키말을
제외하고는 모두 우리나라에서 개발했다.
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한 지가 50년이 넘었는데, 왜
고작 4개밖에 없을까. 가장 큰 이유는 ‘암’ 때문이다. 리프로그래밍은 말할 것도 없고(2파트에서 자세히 소개한다), 성체줄기세포도 체외 배양하는 과정에서
자칫하면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이 될 수
있다. 원래 성체줄기세포는 어느 정도
분열하고 나면 분열능이 점점 줄어든다.
나이가 들수록 몸에 줄기세포가 적어지고 회복력이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시험관처럼 영양분이 풍부한 환경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하면 영원히 분열하는 세포,
즉 암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줄기세포 치료제가 시장에 나오려면 이런 위험이
완전히 해소돼야 한다. 세포실험과
동물시험은 물론,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1상(안전성), 임상2상(유효성),
임상3상(안전성과 유효성)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이 보통 10년
이상 걸린다. 개발비용도 어마어마하다.
그 모든 과정을 통과한 약품이 아직은
4가지다. 물론 뇌졸중과 척수손상,
말기 관절염 연골재생, 급성 심근경색
등에 대한 약품이 현재 마지막 임상3상
단계다. 머지않아 치료제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개발 초기이고 의료보험이 되지 않아 수백~수천만 원을 호가할 수 있다.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나 유도만능줄기세포(iPSCs, 이하
iPS)는 임상시험에 들어간 사례가
손에 꼽고, 그나마 초기 단계다.
김동욱 줄기세포기반 신약개발연구단장은 “배아줄기세포와 iPS는 짧아야 5년, 길면 20년까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 2등, 그런데 해외원정
시술?
우리나라 환자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발달한 이유는 황우석
박사 덕분입니다.”
취재 중 만난 한 전문가가 말한 우스갯소리다. ‘황우석
트라우마’로 한동안 우리나라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어둠의 시기를 보냈다. 지원과 투자가 끊기고 세계 학계에서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탓에 연구자 수가 줄었다. 한편 iPS
분야에서도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의노벨상 전후로 iPS에 거의 ‘올인’하는 일본에 당연히 밀린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성체줄기세포 치료제로
연구자들이 몰렸고, 이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세계 258건의
줄기세포치료제 임상연구 중 우리나라는
40건으로 2등이다. 136건으로 1등인 미국에 비하면 30% 수준이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월등히
많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우리나라 환자들이 우리보다 기술이 떨어지는 일본이나 중국까지 가서 줄기세포 원정시술을 받고 있다. 규제 때문이다. 서인환 한국장애인재단 사무총장은 그 숫자가 “지난 10년간 1만800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치료제가 개발되길 하염없이 기다리다간 내가 죽을 판인데,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돈이 아깝고 불안하긴 하지만 원정시술이라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서 사무총장은 우리나라의 과도한 규제가 환자들을 위험한 길로 밀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현재 줄기세포치료제 분야에서는 임상1상에서 안전성만 확보되면 사용허가가 난다(2상을 한다는 조건하에 허가). 규제를 확 낮춘 것이다(중국은 아예 규제가 없다시피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3상까지 모두 통과해야만 치료를 받을 수 있으므로, 일부 업체에서 환자를 몰래 해외로 데리고 나가서 임상 중인 치료제를 시술하고 오기도 한다. 줄기세포 치료는 주사 한 번에 700만~800만 원에 이르고, 항공료와 체류비까지 합치면 1500만 원에 이르는 데다 부작용도 장담할 수 없다(치료를 받다가 죽은 사람도 있다). 서 사무총장은 “급한 환자들의 경우 규제를 완화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전상용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해외원정 시술을 받고 와서 좋아진 환자가 거의 없다”면서 “기껏해야 통증이 일시적으로 약간 줄어든 정도인데, 규제가 없으면 환자들이
쓸데없는 손해를 입는다”고 말했다. 김승현
한양대 의대 신경과학교실 교수도 같은
의견이다. “중국은 모든 병원에서 줄기세포
치료제를 마구잡이로 시술하고 있는데, 우리도
이렇게 하면 치료의 신뢰도가 떨어져 국가바이오산업 전체를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희귀병은 줄기세포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김승현
교수가 참여해 개발한 루게릭병 줄기세포 치료제 ‘코아스템’은 국내 최초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돼 2상 통과 후 사용허가가 났다(3상 조건
하에).
줄기세포 성형은 ‘줄기세포 치료’가
아니다
배양과정 없어 효과 미지수
“줄기세포 가슴성형으로 올 여름 준비
끝!”
아이러니하다. 성형·미용 분야에서는 가슴성형을
필두로 동안성형, 탈모치료,
음경확대수술, 화장품, 영양제 등 이미 온갖
분야에서 줄기세포가 활발히 쓰이고 있다. 이래서 사람들이 줄기세포 치료가 이미 가능하다고 착각하고 있다. 성형·미용 줄기세포에는
중간엽줄기세포, 지방줄기세포 등
성체줄기세포를 사용한다. 하지만 ‘줄기세포
치료제’라고 부를 수 없다. 치료제의 핵심인
‘배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몸에서 뽑은 성체줄기세포를 수백 배로 안전하게 배양할 수 있어야 치료제로 효과가
있는데, 성형·미용 분야에서는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몸에서 뽑은 줄기세포를 몸에 도로
넣어주는 ‘시술’일
뿐이다.
하지만 줄기세포 가슴성형은 요즘 성형카페에서
가장 떠오르는 ‘핫이슈’다. 일본
도쿄대 코타로 요시무라 교수가 이 분야를 처음 개척했는데, 본인의 배나 엉덩이, 허벅지 지방에서 분리한 지방줄기세포를 가슴성형에 이용한다. 지방을 가슴에 그냥 넣으면
괴사해버리지만, 줄기세포를 함께 넣으면
다양한 성장인자를 분비해 지방이 죽지 않고 잘 붙어있게 한다는 것이다(동안성형 등 다른 줄기세포 성형도 비슷한 원리다). 취재 결과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지난 4~5년간
2000명 넘게 시술했을 정도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말을 들을 수있었다. 비결은 분리·농축한 줄기세포를 유방과 피하조직에 층층이 주사해서 지방 생착률을 70%까지 높이는 기술. 이 정도
생착률이 나오려면 자가줄기세포 7000만개를 지방 200cc에 섞어 아주 정교하게 골고루 주입해야 한다.
줄기세포 성형·미용 분야 역시 부작용이 많다.
가슴성형 선구자인 요시무라
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가슴성형을 할 때
줄기세포를 정교하게 주입하지 못하면 지방세포가 3mm 이상 뭉쳐 낭종(물혹)이 생기면서 지방세포가
괴사한다고 밝혔다. 이 경우 염증세포가 몰려들어 붓기가 생기고, 석회화가 진행되기도 한다. 줄기세포를 많이 얻기 위해 골수·지방조직을 과다채취할 경우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
최병현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골수를 많이 뽑으면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단기적으로 골수 기능이 떨어지고, 지방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서 무리하게 지방을
뽑다보면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며 위험성을 지적했다.
분명 몇몇 의사는 수술 후 환자들로부터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의사가 많다는 게 문제다. 한 피부과 의사는 “의사 사이에 편차가
크다”고 털어놓았다. 또 제대로
줄기세포를 분리·농축할 수 있는 고가의 장비를 갖춘 병원이 10여 곳에 불과하다.
줄기세포 화장품 바르면
동안피부?
줄기세포 얼굴에 발라봐야 ‘그냥 불순물’
취재를 하며 황당한 경험을 했다. ‘식물줄기세포를
넣은 화장품이 피부에 좋다’고 홍보하는
회사의 문구를 보고 전화를 해봤다.
어떤 성분이 들어있어 식물줄기세포가
피부에 유용하냐는 질문에 담당 연구원은 줄기세포의 최신 연구를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결국 “줄기세포 덕분에 유용한 식물을
실험실에서 쉽게 배양할 수 있다”로
마무리 지었다. 순간 깜빡 속아 넘어갈
뻔 했다. 그거야 회사에서나 좋은 일이지. 줄기세포를 화장품에 넣으면 피부에 왜 좋냐는
질문에 연구원은 ‘현재 연구 중’이라며 끝까지 답을 피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줄기세포를 얼굴에 발라봤자 ‘그냥
불순물’이다. 줄기세포가 얼굴에서 마구 분화해 여드름을 없애주지 않는다. 다만 ‘줄기세포 배양액’은 우리 몸에 좋을 수
있다.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과정에서 생장인자 등 유용한 부산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성분이 얼마나 들어있어 피부에 어떻게 좋은지 분명한
연구는 없다. 인삼이 몸에 좋으니 인삼 달인
물을 피부에 적셔도 좋지 않을까, 줄기세포
배양액도 이 정도로 막연한 기대뿐이다. 그런데 가격은 비싸다.
작년 초 ‘줄기세포배양액 화장품’이 하도 활개를 치자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위·과대광고 특별점검을 실시해 ‘피부 재생’이나 ‘세포 재생’이라는 말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 효과가 가능하다면
애당초 의약품이지 화장품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김승현 교수는 “줄기세포 치료는 향후 의·생명분야의 핵심으로 떠오를 텐데,
미리 유사 줄기세포 치료와 구분해야
한다”면서 “일반인들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단어 선택에 선을 긋고, 과대광고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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