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4일 목요일

수학천재였던 교수가 전하는, 영재를 대하는 잘못된 방법

Getty Images
나는 어린 시절에 ‘천재’였다. 가끔 지역 방송에 등장하는 그런 영재 말이다. 나는 2살 때 글을 읽기 시작했다. 5살 때에는 두 자리 수 곱셈을 암산할 수 있었다. 나의 최초의 기억 중 하나는 피타고라스의 정리 문제를 풀었던 기억이다. 3학년 때에는 기하학 수업을 듣기 위해 지역에 있는 중학교를 오갔다. 가끔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내게 100만 곱하기 100만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다. 내가 답을 내놓으면 아이들이 매우 좋아했다.
영재 교육을 옹호하는 많은 사람들은 나 같은 영재를 보고 마치 놀이터의 아이들처럼 기뻐한다. 마치 우리가 일종의 천연자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화석연료를 낭비하듯 영재를 낭비할 위험이 있는 것처럼 여긴다. 일부 교육자들은 영재들을 “이례적 인적 자원”이라고 칭하며 우리가 세계 경제의 경쟁력을 견인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데이비드 루빈스키 밴더빌트대학교 심리학교수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영재들은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낼 사람들”이라며 “정신분열증, 암, 테러리즘에 대항해 싸우고, 우리 경제를 이끌 특허와 과학적 혁신을 만들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또 “평범하게 성장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학교에서는 그런 영재들이 많은 기회를 누리지 못한다”고 루빈스키는 덧붙였다.
어렸을 때 이런 말을 들으면 꽤나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영재들에게 쏟는 관심이 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 같다.
Luci Gutiérrez
루빈스키와 그의 공동저자인 카밀라 벤보우는 밴더빌트에서 ‘수학 영재 연구(Study of Mathematically Precocious Youth)’를 이끌었다. 비범한 아이들의 인생을 추적하는 가장 야심찬 연구였다.
이 연구는 1983년부터 13세 이전에 SAT 수리영역에서 700점 이상, 언어영역에서 630점 이상을 받은 학생들 수백 명을 추적했다. 그 정도 나이에서는 1만 명 중 1명만이 얻을 수 있는 점수다. 이제 40대 초반이 된 이 학생들은 수십 년간 자신의 지적, 직업적 발달에 대해 정기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 약 44%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전체 인구 중에서는 2%만이 박사 학위를 딴다.). 이들의 중간 소득은 8만 달러였다. 해당 연령대 미국인들의 평균 소득의 2배다. 하버드 교수도 2명 있다. 이 아이들은 밝은 불꽃을 내다가 빨리 꺼지는 것이 아니라 강한 불씨로 시작해 계속 유지한다.
나는 이 학생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이 연구가 사회과학에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그중 한 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12살 때 SAT 수리영역에서 800점 만점을 받고 언어영역에서는 680점을 받으면서 평생 동안 위 연구에 참가했다. 마치 저 시험 점수가 그래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나는 현재 종신교수로 수학을 가르치고 있고 소설가이자 논픽션 작가이기도 하다. 위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성공 사례 중 하나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재능은 숫자가 아니다. 어떤 아이가 10살 때 어휘를 몇 개 알고 있는지 세어봄으로써 이 아이가 미래에 위대한 소설가가 될 수 있을지 추정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리만의 가설을 증명하는 것이 SAT 수리영역에서 10만 점을 받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듯, 수학과 과학에서 재능을 숫자로 치환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과학에 대한 관점과 과학자들에게 요구되는 것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실망스러울 정도로 형편없다는 의미다.
영재 예찬은 오늘날 심리학자들이 ‘투지’라고 부르길 좋아하는 근면함과 생산적인 집요함의 가치를 과소평가한다. 그것 없이는 다른 모든 장점들이 무의미한 프로젝트에 낭비될 것처럼 여겨지는 창의성, 시각, 취향 등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중학교에서 미래의 위대한 과학자를 골라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루빈스키 교수가 어른이 된 영재들에 대해 작성한 보고서에는 ‘성인이 된 영재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제목이 달려 있지 않다. ‘누가 최고로 올라서는가?’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13살 때 SAT에서 엄청난 고득점을 기록한 우리들은 박사 학위를 취득할 확률이 평균적인 미국인들보다 20배 더 높다. 중요한 과학적 진전을 이뤄낼 가능성도 넉넉잡아 100배 더 높다고 치자. 우리는 미국 인구 중 1만 분의1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든 과학적 발전 중 99%는 영재 클럽에 일찌감치 진입하지 못한 다른 아이들이 만들어 낸다는 말이 된다. 즉, 우리 천재들이 모든 수수께끼를 풀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영재들은 크게 성공한다. 하지만 크게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영재가 아니었다.
이는 영재들 자신에게 혹독한 가르침일 수 있다. 자기 옆에 있는 수학 천재가 최고이고 정말 중요한 인물이라고 믿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나와 내 영재 동지들은 매우 잘 해왔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전 세계의 수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영재가 아니었고,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상을 타지도 못했고, 명문 대학의 최우수 학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상황이 이렇다는 것을 13살 때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창피하다. 변명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계속해서 최고라고 말해주면 정말 자기가 최고인 줄 믿게 된다.
수학을 가르칠 때 가장 고통스러운 일 중 하나는 내 학생들이 천재 예찬 문화에 상처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다. 이 문화는 학생들에게 수학을 잘하지 못하면 수학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특출난 소수만이 진정으로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과목을 이런 식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나는 단 한 번도 어떤 학생이 “나는 ‘햄릿’이 좋아. 하지만 AP 영어를 들을 자격이 없어. 내 앞줄에 앉은 애는 희곡의 절반을 외우고 있는 데다가 7살 때 셰익스피어를 읽기 시작했단 말이야!”라고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농구선수들은 다른 선수들이 자기보다 더 뛰어나다는 이유만으로 농구를 그만두지 않는다. 하지만 매년 유망한 젊은 수학자들이 자기 시야에 보이는 누군가가 “더 앞서있다”는 이유만으로 수학을 그만둔다.
수학자를 잃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수학자가 되지 않을 수학 전공생이 더 필요하다. 수학을 전공한 의사들, 수학을 전공한 고등학교 교사들, 수학을 전공한 CEO들, 수학을 전공한 상원의원들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수학이 영재들에게만 가치있다는 선입견을 버리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수학의 발전은 태어날 때 결정되는 0.01%가 이끈다는 미신이 있다. 이들이 나머지 인류가 따라야 할 길을 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수학은 공동의 사업이다. 각각의 발전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의 거대한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산출물이다. 우리가 그 구조물에 마지막 돌을 얹는 사람에게만 특별한 명예를 수여하더라도 말이다. 마크 트웨인이 말했듯 “전보를 발명하는 데에는 1,000명이 필요하지만 마지막 사람만이 그 공을 인정받고 나머지는 모두 잊혀진다.”
젊은 수학자들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필즈상을 수상한 테리 타오 UCLA 교수는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직관, 문헌, 약간의 행운이 따른 근면함의 결과로 자연스럽고도 점증적으로 전진해 가는 오늘날의 수학 연구는, 소수의 ‘천재’들만이 신비로운 영감에 의해 발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내 학생 시절의 낭만적 이미지보다 훨씬 더 만족스럽다.”
테리 타오와 그 같은 영재들을 천재라고 부르는 게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뤄낸 것이 천재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좀더 정확하다. 천재적인 것은 하나의 현상이지 특정 종류의 인간이 아니다.
엘렌버그 박사는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최근 펭귄 프레스가 발간한 ‘틀리지 않는 법: 수학적 사고의 힘’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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