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종합전형 지속 위해 글자 수·내용 제한 등 없애야”
"교내 수상 기재 금지 등은 학생부종합을 절름발이로 만드는 것"
서울대-시도 교육청 전국 5개 권역 순회 ‘샤 교육포럼’서 교사들 목소리 높여
“영화표 싸게 팔면 불법이 되죠? 핸드폰 싸게 팔아도 불법이고요. 양심을 걸고 (학생부 내용을) 잘 써주고 싶은 아이들이 있어도 자세히 정성을 다해 쓰면 이는 부당한 것이 됩니다. (교육 당국이) 공정보다는 평등을 교사와 학생부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대학들이 학생부종합전형을 주로 활용해 학교생활을 중시한다고 하는데, 학생부(학교생활기록부) 글자 수 제한 규정이 있는 한 그게 가능할까요?”
“현 학생부에는 글자 수와 입력 내용 등 제한사항이 너무 많습니다. 이는 기록에 있어 질적 기재가 아닌 실적 위주 나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의 학교생활 전반을 통합적으로 평가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은 2016학년도 수시모집에서 6만7231명(27.9%)을 선발한 입학 전형이다. 학생부교과(13만8054명)보다 선발인원은 적지만 수도권 대학 기준 가장 많은 인원을 선발하는 중심축이다. 교육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학생부종합전형 확대 방침을 펴는 만큼 대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8일 오후 1시 경기여고 강당에 학생부종합전형의 현재를 진단하고 지속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공교육 관계자들이 모였다. '학생부종합전형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 아래 권오현 서울대 입학본부장과 입학사정관, 서울·인천·강원·경기 교육청 관계자들과 전국 각지의 고교 교사들이 학생부종합과 고교 교육활동 개선점에 대해 발제하고 토론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교육 현장 관계자들이 주로 제기한 문제점은 ‘학생부를 주로 활용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되는 것에 비해 교사들이 기재하는 학생부 내용에는 형식 등의 제한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평등 아닌 ‘공정’한 대입 돼야… “학생부 기재 금지사항으론 학생부종합 흔들려”학생부종합전형의 정착과 지속을 위해 교사들은 “학생부 작성 시 제한을 없애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글자 수나 입력 내용 등 기재 방법에 대한 제약이 많아 학교생활에 대한 충실도룰 지금의 학생부에선 가늠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이 주로 활용하는 학생부에서 학생 개개인의 특이사항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변별력이 낮아질 뿐 아니라 이는 교사의 자율권 약화도 가져올 수 있다.
안성환 대진고 교사는 “학생부에서 학생의 내실 있는 학교생활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란은 ‘특기사항’이다. 그런데 그 란은 500자로 제한이 돼 있다”며 “한 교사가 열정적으로 자수를 채우면 다른 교사는 그 아이의 다른 활동에 대한 기록은 적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육부가 불공정한 경쟁 요소를 배제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기재 금지사항’을 남발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에 맞춰 학생부 세부적 요소들에는 변화를 주지 못했다는 게 사견”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5 개정 교육과정과 함께 학생부 기재 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안 교사는 “학생부 작성에 대한 지침과 규제는 ‘공정’이라는 개념보다는 ‘평등’이라는 개념에 더 가깝다. 이는 교사 자율권 약화와 함께 단조로운 기재 내용을 불러올 것”이라며 “무의미한 양적 기술이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없음은 이미 학교현장에서도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과 맞물려 평가방법의 개선을 이뤄내려면 학생부 기재 금지 사항을 없애는 등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선용 광성고 교사는 “학생부종합은 교사의 열정으로 완성되는 전형이다. 글자 수 제한 등을 두는 현 학생부 기재 규정으로 학교생활을 중시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의 존재 의의가 성립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학생부종합전형은 학교생활을 기본으로 학생의 삶의 과정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현행은 학생의 삶 일부를 외면하도록 하는 요소가 많다. 외부 수상 내역 등을 학생부에 적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교육 규제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교내 수상 경력까지 규제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학생부 자수 제한 및 분량 제한은 교육의 본질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고교 현장 관계자들과 학생부종합전형 개선 방안 등 논의
1부 발제자로 나선 권오현 서울대 입학본부장이 우선 강조한 내용은 “학교 교육이 성취도와 행복의 조화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 '선발' 위주의 대입 선발 기조는 교육적 '연계' 차원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했다. 선발적 기능의 틀에서 벗어나 학교 교육으로 준비를 잘 해 온 학생에게 대학이 꿈을 이어갈 기회를 제공하는 '계발적 기능'이 자연스런 흐름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권 본부장은 이를 위해 도입된 제도가 바로 학생부종합전형이라고 보고 있다. 그간 "학생부종합전형은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수행한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대학에서도 이어가며 자신의 꿈을 지속적으로 계발할 수 있도록 돕는 연계교육의 고리"라고 강조해 온 권 본부장의 견해가 이날 포럼에서도 드러났다.
권 본부장은 대입이 협력적 연계 지점이 되려면 중등과 대학에서 인재상을 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리더’와 ‘역량’, ‘준비도’로 의미를 함축했다. 인재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능력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잘 관리할 내적 근력이나 구성원들과의 공동 가치를 실현한 소통 역량을 함께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역량 평가를 위해 기존의 성취도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학생 개개인이 진로를 달성하기 위해 계발해 온 자질과 합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준비도’를 제시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성공 여부는 준비도이든 다른 명칭이든 기존의 성취도를 대신한 평가지표를 설정하고 그를 타당성과 정당성 차원에서 국민의 공감을 얻을 만큼 체계화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학생부종합전형 정착을 위해 내세운 점은 학생부 기록의 내실화와 교사들의 평가 역량·책임감 강화, 학생 역량과 기록 간 연관성의 표준화 등이다. 여기에 해당 자료를 전문적으로 읽어내는 입학사정관의 역량, 이러한 방식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 등이 더해진다면 가장 바람직한 입학 전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학생부종합전형 모델의 다양화와 성취평가제에 따른 학생부 기록의 보완,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에 따른 공통과목-선택과목 간 평가 가중치 부여 등도 학생부종합의 정착 방안으로 제시했다. 성취평가제의 경우 학생부종합전형 정착의 외적 변수로도 꼽았는데, 아직은 고교 학생부 기록이 성취 등급뿐 아니라 석차 9등급, 원점수, 평균 등을 함께 제시하는 형태지만 앞으로 성취등급만으로 기재가 제한된다면 학생부 기록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성취 등급이 구체적으로 어떤 자질과 수준을 나타내는지 해석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 △교과마다 성취한 역량을 자세히 나누고 수업에 대한 상세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 △학생부 세부특기사항 부분을 개인별로 변별력 있게 작성해 정성평가의 근거자료 역할을 하게 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현장의 대부분 교육 관계자들은 서울대의 이러한 견해에 동의했지만 다소 쓴소리도 이어졌다. 경기도 소재의 한 고교 교사는 "서울대 입학생 비중이 특목·자사고에 치중돼 있는데 학생부종합전형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특목·자사고에 비해 일반고는 학생부에 열정적으로 쓸 내용이 부족하다"고 질문했고 이에 권 본부장은 "학교 유형에 따라 입학생 비중 차이가 난다, 특정고 비중이 높다는 의문에 대해서는 뭐라 뚜렷한 답을 내놓기가 어렵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서울대는 내부적으로 설정된 원칙에 따라 학생을 평가한다. 학교 평가가 아닌 학생 평가다. 이러한 입시 방향의 큰 틀 아래 단 한번도 '정책 입시'를 행한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며 "짜여진 시스템 하에 학생을 평가하고 그 속에서 맞춰진 퍼즐로 결과가 나온다. 올해의 경우 일반고 출신 입학생 비중이 지난해와 동일한 50.6% 더라"라며 "소수점 숫자까지 똑같아서 놀랐다. (학교 측이) 조정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전혀 그러한 접근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수능에 대한 관점에서도 이견을 보였다. 송선용 광성고 교사는 교육 당국의 지나친 규제를 지적하며 "대입 제도의 평가권이 교육 당사자들에 의한 방향으로 옮겨져야 한다"며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에 의한 평가권인 수능의 자격고사화는 필연적이다. 수능이 강화되면 학생부종합전형은 흔들린다"고 말했다.
“보완의 필요성이 있지만 현재의 존재 방식으로도 수능은 큰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수능 준비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쌓은 실력이 반드시 있게 돼 있다. 자격고사화가 된다면 수능의 마지막 평가 기능도 사라져 고교 성취평가에 이어 대입에서도 성취 수준을 평가하게 될텐데 이건 바람직한 입시의 방향이 아니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한편 그는 학생들이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해 비교과에 매달리는 점을 경계하며 "교과와 비교과가 연동되는 수업과 활동을 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학생부가 현 대입 제도 아래 너무 흔들린다. 학생부종합이라도 비교과에 치중하면 전형이 흔들리게 된다"며 "교과와 비교과가 연동되는 수업과 활동을 축적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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