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수능 국어의 지문은 일반 교양서적의 글에 비해 고도로 압축적이기 때문이다. 1600자 내외의 짧은 글 속에 시험 평가에 필요한 여러 정보를 정확하게 담아야 하기 때문에, 수능 국어의 지문은 일반 교양서적에서 볼 수 없는 수준의 긴밀한 구조로 이뤄져 있다. 부연 설명, 풍부한 예시, 가독성이 좋은 문체 등 저자의 다채로운 기교를 통해 독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일반 교양서적과는 글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수능 국어의 지문은 불친절하고 무미건조하다. 평가에 필요한 정보만 짧은 글의 적재적소에 적량만 배치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해서 재미가 없다. 그러니 일반 교양서적을 많이 읽은 학생일수록 수능 국어의 지문에 재미를 붙이기 쉽지 않다.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딱딱하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학습을 게을리하게 되거나 학습을 하더라도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이 책을 많이 읽은 학생들이 수능 국어에 실패하는 한 가지 이유가 아닌가 싶다.
수능 국어의 지문은 일반 교양서적의 글과 비교하면 고도로 압축돼 있다. 따라서 이러한 차이를 익히고, 교양서의 지문이 수능에 나온다면 어떻게 나올지 등을 고려해 책을 읽는다면 도움이 된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도서관에서 학생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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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일반 교양서적에는 항상 저자의 어떤 ‘주장’이 담겨 있다. 저자가 아무리 객관성과 보편성을 지향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주관성이 깃들 수밖에 없다. 아직 10대인 학생들이 그런 저자들의 주장에 담긴 ‘주관성’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특히 책을 많이 읽은 학생들은 특정 저자들의 주장에 흠뻑 빠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니, 특정 저자들의 주장에 흠뻑 빠져들기 때문에 교양서적을 많이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점이 수능 국어시험에는 일종의 ‘독’이 된다. 어째서 그럴까.
수능 국어에서는 아무리 위대한 석학의 주장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보편적 진리’로 상정하지 않는다. 언제나 어떤 특정 학자나 사상가의 이름이 언급되고, ‘모모(某某)에 따르면 이러저러하다.’라는 식으로 지문의 내용이 구성된다.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독해이다. 특정 주장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괄호 안에 묶어두고, 누가 어떤 주장을 어떤 논리에 따라 펼쳤는지만 정확하게 읽어내야 한다.
그렇다면 수능 국어를 잘 치르기 위해서는 교양서적을 멀리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독’의 요소를 잘 제어할 수 있다면 당연히 도움이 된다. 동서양의 고전에 담긴 중요한 개념들, 위대한 사상가나 학자들의 이름들에 익숙해 있으면 아무래도 수능 지문을 읽을 때도 이물감을 덜 느낄 수 있다.
이쯤에서 실제 사례를 들어 보자. 칸트는 철학 전공자들도 읽기를 버거워하는 철학자로 악명이 높다. 칸트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보다 더 철저하게 철학적 사고를 전개한 철학자는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만큼 그의 철학은 난해하다. 이런 칸트의 철학이 2015학년도 수능 예술영역에 나온 적이 있다. 그의 유명한 3대 비판서 중 하나인 ‘판단력 비판’의 내용을 고교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축약한 것이 지문으로 제시됐다. 학생들이 꽤 당황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이 지문에 딸린 네 문항 중 어휘 문항을 뺀 세 문항의 오답률이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문항이나 선지가 비교적 선명하게 제시됐는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오답률이 높았던 것은 그만큼 학생들이 지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당시 응시자들 중에는 칸트 철학을 일반 교양서로 접한 학생도 있고 ‘윤리와 사상’ 교과서에서 읽은 게 다인 학생도 있었을 것이다. 과연 어느 쪽 학생이 더 유리했을까? 단적으로 말하기 힘들다. 일반 교양서로 칸트를 접한 학생의 경우라 해도, 그런 유의 책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대개 칸트 철학을 가볍게 요약한 내용에 불과하다 보니 별 도움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지문의 내용 역시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깊이 있게 다룬 것은 아니다. 하지만 ‘취미 판단’의 문제를 꽤 전문적인 지점까지 파고들어가 아주 냉정한 문체로 그 핵심 골격만을 진술하고 있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일반 교양서의 ‘친절한’ 스타일에 익숙한 학생들은 낯설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일반 교양서 저자마다 칸트 철학을 요약하는 관점이 다를 수 있는데, 어느 특정 저자의 ‘주관적’인 관점에 익숙해 있는 학생들이라면 지문과 선지를 상호 연관짓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보통 칸트 하면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종합한 철학자로 이해되고, ‘윤리와 사상’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서술돼 있다. 당연히 이성을 무척 강조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대개의 일반 교양서도 이러한 점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해당 지문은 칸트의 그런 면보다 다른 면을 부각하고 있다. ‘객관적 타당성’을 정초하는 것이 이성의 미덕이자 한계임을 밝히는 동시에 그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미적 감수성’이라는 것을 서술하고 있다. 이 점을 면밀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근대 이성주의와 계몽주의의 완성자로 간주되는 칸트의 철학을 가볍게 요약한 내용만 숙지하고 있으면 정답 선지를 올바로 선택하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교양서 독서를 아주 멀리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능 국어의 지문이 일반 교양서의 글과 어떻게 다른지 수차례의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몸에 익힐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일반 교양서를 읽을 때도 책의 내용이 수능 지문에 실릴 때는 어떤 식으로 압축될지 상상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고도로 압축적인 수능 지문을 읽을 때 필요한 것이 고도의 집중력이듯, 일반 교양서의 다소 느슨한 문장을 읽을 때도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그 내용이 어떻게 압축될지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균형 감각이다. 수능 국어에 교양은 필요하되,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수능 국어라는 특수한 시험제도에 익숙해지는 학습이 병행돼야 한다. 아니, 고득점을 올리는 데는 교양서적을 읽는 것보다 학습에 집중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고교 시절이라는 짧은 기간에 동서양의 교양을 섭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평가원 기출문제나 다양한 모의고사에 나온 지문들의 어떤 내용에 흥미가 생기면 그 내용을 다룬 책들을 따로 찾아서 읽어보는 것은 분명히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좀 더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교양서적 독서에 너무 빠져들지는 말자. 다시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은 균형 감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균형감각은 수능 시험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복잡다단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도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언제나 명심해야 하는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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