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정말로 시험 공포증을 갖고 있어서 시험에서 제 실력을 발휘 못 하는 학생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이런 경우가 아니다. 집에 와서 다시 풀어봤다는 전제에 오류가 있다. 처음 본 문제인가, 두 번째 접한 문제인가에 따라 읽고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달라진다. '평가', 즉 시험은 단순히 '안다'와 '모른다'를 구분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정해진 시간 내에 주어진 문제를 다 풀어내는가'도 평가기준의 하나다. 제시간에 못 푸는 문제는 '제대로 안다'고 정의할 수 없다. 누구는 며칠 동안 한 문제를 풀고, 누구는 한 시간에 여러 문제를 푼다면 공정한 평가방식이 아니다.
또 집에 와서 문제를 풀 때는 5개 선지 중 몇 가지를 '배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험을 볼 때 1~5번까지의 선지 중에 현장에서 하나를 선택했다고 하자. 아예 답을 몰라서 아무것이나 골랐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정답처럼 보이는 두세 가지 중 고민 끝에 하나를 고르게 마련이다. 출제자들이 문제를 낼 때 매력적인 오답을 설계해 놓기 때문이다. 집에서 문제를 다시 풀 때는 이러한 선지를 배제할 수 있다. 잘못 골랐던 매력적인 오답을 제쳐놓고 남은 선지 사이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당연히 처음 풀 때보다 훨씬 수월하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풀고 정답률이 높아지면, 대부분 학생은 '아는 문제인데 시험장에서 못 풀었다'고 착각한다.
학생 중에 공부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자기가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게 쉽지 않을 뿐이다. 공부는 그냥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정확히 알고 나서' 제대로 된 방법으로 열심히 해야 한다. '시험 문제를 집에 와서 다시 풀어보니 잘 풀리더라'고 생각했다면, 그 문제를 모르는 것이다. '내 평소 실력은 훨씬 좋다'고 너그럽게 생각할 게 아니라 더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한 번에 못 맞힌 문제는 모른다고 생각하고 다시 개념부터 쌓기를 추천한다. 미련 없이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라. 지금 재수를 결정한 수험생이 있다면, '집에서 다시 풀어보니 잘 맞히더라'를 자기 실력의 기준으로 삼지 말길 바란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공부할 각오를 해야 한다. 필자도 재수하기로 마음먹을 당시 자신과 약속을 하나 했다. '처음부터 다시 하리라.' 그 약속이 그동안 잘못된 공부를 부수고 기초부터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어려워도 이것이 성공의 왕도(王道)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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